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덩구 Oct 11. 2021

당신이 요가했으면 좋겠다

나도 왜 하는진 잘 모르겠지만

요가를 왜 하냐고 물으면 딱히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예전엔 스트레스를 낮추는 데 도움이 된다거나, 몸이 이뻐진다며 설명하곤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겨우 둘러댄 말이 아니었나 싶다. 분명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이쁜 몸을 만들기 위해, 요가원으로 드나든 건 아니었으니까. 그렇다고 내가 왜 요가를 하는지 나만의 대답을 찾은 건 아니라서, 요즘엔 '그냥'해요 '좋아서'해요 라는 식으로 내빼는 편이다. 오히려 그게 정확하기도 하고.


사실 남들은 내가 요가를 왜 하는지 관심이 없다. 퇴근하고 헬스장에 간다고 왜 헬스를 하냐고 물어보진 않잖나. 요가를 향한 물음은 관심보다는 특이함을 향한 일종의 성의랄까. 뭐 내가 주로 만나는 집단에선 요가가 일상적인 취미로 자리잡기엔 나름의 이색적인 면모를 갖고 있나 보다 정도로 받아들인다. 최근엔 요가를 한다고 했을 때 상대방 반응이 차라리 생각거리다. 대답은 보통 여자들 많겠다. 사람들 이쁘냐. 너 거기 가는 저의가 무어냐 등등인데, 계집들이나 하는 애송이 운동이라는 얘기도 들어보았다. 아마 레깅스 입고 쫙쫙 늘리는 무엇쯤으로 여겨지는 지점이 저쪽 세상 어딘가엔 있는 듯하다.


같이 흉보자고 이런 이야길 하는  아니고,  딱하지 않냐며 연민을 사려는 것도 아니다. (닌가 그건  있다) 다만 요가를 하면 할수록, 내가 느끼는 바를 당신에게 설득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사실을 새삼 지각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안에 나만 이해하는 고집스러운 공간을 짓는다고나 할까. 고집불통 거친 목수를 하나 키워서 훌륭한 오두막을  맘속에 공들여 쌓아 놓고는 당신이 이곳에 들어오든 말든 나는 상관하지 않는다는 문패를 걸어 놓는 것이다. 분명 요가의 어느 구석이 좋아서 계속하겠으나 그것의 정체는 나부터가 알아갈 일이고 당신에게 설명할  없다.


그렇게 내 오두막을 하나 씩 올리고 숨을 돌릴 때가 되면 제 가슴에 고집불통 공간을 키우는 다른 사람들에게 눈이 가기도 한다. 남의 오두막에 동요되는 원리는 참 직관적이어서 뭐라 설명하기가 어렵다. 저 집의 건축 비결은 무얼까 하는 호기심이나 갈증이라고 해야겠다. 어쩌면 나도 고집스러운 척 나만의 공간을 지어놓고는 알아줄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상하게 그런 이들을 만날 때마다 내 안의 목수는 잠시 평정심을 잃고 어리광을 부리게 된다. 어떻게 지었어? 여기 엄청 좋네? 여기도 들어와 볼래? 너도 요가를 해보는 게 어때? 요가를 해보라니까. 내가 요가를 하면서 얼마나 좋았냐면 말이지. 내 비결을 너에게 전하고 싶다.


결국 논리적이고 보편적으로 많은 이들이 요가를 좋아하게 설득할 수단은 내게 아무것도 없다. 내가 왜 요가를 하는지 뻔뻔하게 공언할만한 법칙을 찾지 못했고 그런 게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단지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누가 뭐라든 개의치 않을 내 오두막 하나는 아주 느리게 짓고 있다는 사실이다. 매트에 철퍼덕 누웠다가 앉았다가 부들부들 섰다가 뻗쳤다가 수십 번의 잡생각이 숨으로 돌아올 즈음에 오두막에 기둥 하나 보태는 것이다. 그러다 가끔 딱 한마디 씩만 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요가했으면 좋겠다고.














        



작가의 이전글 백석, 달맞이길, 서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