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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닝피치 Oct 14. 2022

육아전쟁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느낀 지극히 개인적인 변화

아이가 태어나고 조리원에서 산후 마사지를 받을 때 일이다. 산후 마사지사는 내 몸을 구석구석 주무르며 이야기했다. 

“ 초산 맘들은 여기가 천국인지 몰라~ 둘째 맘들은 모두 아는데 말이야. 그래서 초산 맘들은 얼른 나가고 싶어 하는데 나가면 전쟁이야. “ 

“ 에이, 그래도 전 조리원이 너무 답답해요. 집에 가서 남편이랑 아기 보는 게 더 편할 것 같은데요.”  

호기롭게 말하던 그날의 내가 언제 있었냐는 듯 집에 돌아온 난 육아전쟁에 지친 패잔병이 되어 있었다. 조리원 마사지사의 말은 사실이었다. 


아기는 부모에게 본인의 생존을 위해 강제적으로 고난을 준다. 잠을 충분히 못 자게 하고,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게 하고, 쉬고 싶을 때 움직이게 하고, 화장실도 마음대로 가지 못하게 한다. 즉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를 완벽히 박탈당한다고 볼 수 있다. 거기다 조그마한 몸으로 울음소리는 어찌나 우렁찬지 나 같은 담 작은 엄마는 심장이 벌렁벌렁 되기 일쑤였다. 이렇게 계속되는 육체적, 정신적 공격에 버텨낼 자가 얼마나 있을까 싶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하지 않는가. 어느덧 나는 혹독한 육아 전쟁에 길들여졌고, 동시에 병사로서 아주 가끔이지만 소소한 공격까지 해 볼 여력이 생겼다. 


나의 경우 아이가 잠에 예민하여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 외치며 책과 육아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참고해 여러 시도를 했지만 이상과 현실은 역시나 달랐다. 보통 육아에 이상신호가 켜지면 아래 과정이 반복되었다.



<어려움 - 시도- 기대 - 실패 - 실망 - 재도전 or 보류>



예를 들면 아이가 잠을 깊게 못 잔다. (어려움) - 수면 교육을 한다 (시도) - 아이가 전보다 길게 잘 것이다 (기대) - 그러나 아이가 전보다 더 울거나 변함이 없다. (실패) - 아이에게 화가 난다 (실망) - 마음을 추스르고 다른 방법을 찾아본다 (재도전) or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보류) 이 순서대로 무한 반복이었다. 육아문제의 해결 과정이 일상생활에서의 문제 해결 과정과 비슷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작은 차이는 있다. 먼저 아기는 말이 전혀 통하지 않기에 우리가 전적으로 맞춰줘야 한다는 점이었고, 현실 세계에서는 포기라는 옵션이 있지만 육아 세계에서의 중도 포기는 아이의 생존에 직결되기에 이 굴레는 지속된다는 점이었다. 결국 아이가 내 곁에 있는 한 이 문제에서 완벽히 벗어나긴 힘들 것이고, 우린 각자 어려운 문제를 견디며 꽤 오랫동안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육아는 힘들기만 한 걸까? 이 힘듦 속에서 나의 내면에 어떤 변화가 생기지 않았을까? 




먼저 떠오른 생각은 나와 타인이 다름을 인정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점이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나는 아이가 다른 세계에서 온 존재라는 전제를 했다. 만약 우리가 외국인과 결혼했다면 그 사람의 문화, 성격, 언어, 생활 방식 등 많은 부분이 다를 것이고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도 생길 것이다. ‘왜 저렇게 행동하는 거야?’ 비난하기보다 서로 다른 사람이란 걸 인정하고 받아 들어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 아이와 엄마의 관계도 별반 다르지 않다.  10달 동안 뱃속에 품고 있긴 했지만, 아기는 현실 세계에 이제 막 첫 발을 내디뎠으며 얼굴을 마주 보는 것조차 처음이기 때문이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목청이 떠나가라 울거나 생존에 관련된 일들뿐이다. 새로운 세계에 처음으로 온 아기에게 30년 넘는 시간 동안 이 시계에 살고 있는 내가 ‘이 정돈 이해하겠지?’ 하는 기대는 너무 큰 욕심이 아닐까 생각했다. 육아는 너무 힘들었지만 아이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니 자연스럽게 울거나 떼를 써도 ‘그럴 수도 있지’라며 넘어가는 일이 많아졌다. 


두 번째, 육아는 우리에게 수많은 실패 경험을 안겨준다. 성인이 되고 난 후, 우리가 자주 실패를 겪을 일이 있을까? 나 같은 경우 사회생활을 하면서 실패나 거절이 두려워 스스로를 안전하다고 믿는 범위 내에서만 활동하는 게 편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육아를 하면서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예상치 못한 변수가 빈번히 발생했고, 세지 못할 정도의 실패와 거절도 계속 반복되었다. 아이가 울거나 떼를 쓰는 하루를 보내고 나면 상황이 지치고 답답했는데 그럴 때마다  대뇌이던 말이 있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 상황을 온전히 컨트롤할 수 없음을 인정하면서 마음 내려놓기 연습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생겼다. 마음을 내려놓았을 뿐인데 오히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의 감정도 무뎌졌고, 감정에 앞섰던 지난날에 비해 ’ 거절할 수도 있지. 다음번에 다시 시도해 보자.’ 등으로 가볍게 대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자세는 육아뿐 아니라 부부 관계 , 친구 관계에서도 더 나은 결과를 가져왔다. 마치 내 마음속 유일한 1차선 도로가 육아로 인하여  2-3차선 도로로 늘어난 것처럼 말이다. 


세 번째, 힘든 시간이 지나간 뒤 성장을 지켜보는 기쁨이 얼마나 값진 일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옛 선조들의 ‘비 온 뒤 땅이 굳는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와 비슷한 이야기다. 실제로 생애 초기 (약 두 돌까지) 아이가 급성장하는 시기를 원더 윅스라고 부르는데 이 시기에 아이는 끊임없이 떼를 쓰고 고집을 부린다. 당연히 부모도 사람인지라 계속해서 떼쓰는 아이가 점점 버거워진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원더 윅스 기간이 일시적이라는 점이다. 더 이상 못 버티겠다 싶을 때 즈음 마법을 부린 것처럼 아이는 전보다 온순해진 모습으로 고분고분 말을 듣고 있다. 심지어 전에 할 수 없었던 일들을 부모에게 자랑스럽게 보여주기도 하는데, 그 순간 아이의 성장을 함께 지켜보는 감동이란 나의 삶에 대단한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처음 “엄마 ”라고 부른 순간, 첫 발자국을 뗀 순간, “엄마, 아빠. 사랑해요.”라고 말해준 많은 순간들이 모여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고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육아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요즘같이 저 출산 시대에 아이 키우기 힘들다는 이야기는 찾아보기 참 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산을 한 후 깨달은 점은 연약하고 조그마한 존재가 나의 삶에 큰 선물을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아이를 키우는 일은 단순히 힘든 시련으로만 머무르는 게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더 발전하고 나아질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도 육아로 힘들어하는 모든 부모들에게 응원의 마음을 보내며 지극히 개인적인 나의 글로부터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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