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브랜드부스터 켄 Jun 20. 2020

회사 뒤에 숨는 리더

리더가 아닌 회사가 판단한다면 그 리더가 굳이 필요할까? 

※ 이 글에는 영화 <변호인> 일부를 발췌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출처: 변호인


영화 <변호인>의 최고 명장면은 변호사 송우석(송강호)과 공안 책임자 차동영(곽도원)의 재판장에서 대립하는 장면이다. 송우석 변호사는 차동영에게 학생들을 고문한 사실을 인정히라고 몰아세우고 학생들을 공산주의자로 단정 지었던 차동영은 군부 정권의 논리로 이에 맞선다. 아래는 두 사람의 대화 일부다.


(상략)
송우석: 증인, 피의자가 국보법에 해당하는지 안하는지 누가 어떻게 판단합니까?
차동영: 공안 형사만 13년째 입니다. 눈깔 돌리는 것만 봐도 국보법 사건인지 아닌지 알지, 그걸 모릅니까?
(중략)
송우석: 학생과 시민 몇 명이 모여서 책 읽고 토론하는게 국보법에 해당하는지 안하는지 증인은 도대체 뭘 보고 어떻게 판단했습니까? 판단근거가 뭡니까?
차동영: 내가 판단하는 게 아니라 국가가 판단합니다.
송우석: (눈을 크게 뜨며) 국가? 증인이 말하는 국가란 대체 뭡니까?
차동영: (잠시 상대방을 응시하다가) 변호사라는 사람이 국가가 뭔지도 몰라?!
송우석: (결의에 찬 표정으로) 압니다, 너무 잘 알지요.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입니다! 그런데 증인이야말로! 그 국가를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이! 국가 보안 문제라고! 탄압하고 짓밟았잖소!


증인이 말하는 국가란!
이 나라 정권을 강제로 찬탈한, 일부 군인들,
그 사람들 아니야?!



사상범의 진위를 판단하는 경찰이 결국 국가 뒤에 숨게 되는 과정이 재미있다. 차동영은 처음에는 간첩을 판단하는 기준이 본인의 직감이라고 했는데 나중에는 판단의 책임을 국가로 돌린다. 이 말은 사실상 자신이 국가 뒤에 숨어서 권력을 휘둘렀다는 자백이나 다름없다.


차동영의 변론은 사회 내부에 깊숙히 자리잡은 책임 회피의 방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희안하게도 인간은 '내가 하고 싶어서'라고 이야기하기를 꺼려하고 항상 핑계를 찾는다. 이런 방식은 자신의 책임은 최소화하고 정당성은 극대화할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동서고금에 걸쳐 애용되었다. 친구부터 시작해서 애인, 부모님, 가족, 학교, 회사, 국가 등 인용하는 대상이 크고 추상적일수록 핑계도 깊이를 더한다. 


이 방식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만화 속 주인공은 항상 정의를 핑계대며 악당들을 때려잡는다. 정작 악당이 정의로울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은 항상 국민의 뜻을 인용한다. 정작 뉴스를 보는 국민은 어리둥절하다. 이성계는 하늘의 뜻에 따라 폭군을 폐하고 백성에 뜻에 따라 왕위에 올랐다. 하늘과 백성은 그러라고 한 적 없다. 전부 '내'가 원하는 것이지만 주어는 '내'가 아니다. 추상적인 존재 뒤에 숨는 셈이다. 


이건 회사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에요.
다시 하세요.


직장도 마찬가지다. 자주 인용되는 핑계거리는 '회사'다. 나는 그 놈의 회사를 본 적이 없다. 회사가 원한다고? 애당초 회사가 원할 수 있나? 도재체 누구를 이야기하는 것인가? 그럼 수정한 기획서는 '회사'라는 분에게 가서 보고하면 되나? 이럴거면 왜 리더가 보고를 받는지 궁금하다. 그냥 '회사'에게 가면 가장 효율적이지 않을까? 그런데 그 '회사'라는 분은 어디가서 만날 수 있을까?


혹시 직장에서 리더의 이런 피드백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혹시 직장에서 구성원에게 이런 피드백을 한 적이 있는가? 전자에게는 위로를 드리고 싶고 후자에게는 비판을 해주고 싶다. 이 피드백은 리더의 비겁함을 드러내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본인이 아니라고 판단한 건데 왜 회사 핑계를 대는가?


다른 글 왜 주관적인 직장인이 더 유능한가?에서 밝혔듯이, 업무에서 가장 우선시되는 건 '주관'이다. 본인만의 주관을 세워야 가치관과 판단력, 비전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남들과 같은 객관은 당신이 언제든 대체될 수 있다는 사실만을 명확히 할 뿐이다.


리더십은 리더와 구성원의 관계다. 이런 맥락에서 자신만의 비전과 스타일을 구성원에게 명확하게 밝힐수록 리더십은 단단해진다. 이와 반대로 리더십 없이 회사 핑계만 반복하는 리더는 나쁜 리더다. 구성원은 보이지도 않고 실체도 없는 회사에 맞춰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면 당연히 생산성이 떨어진다.


오해하지 않았으면 하는 게 회사의 방향을 거스르라는 게 아니다. 회사의 방향은 동서남북처럼 거대하다. 대표이사든, 임원이든, 팀장이든 리더가 필요한 이유는 불확실한 환경 속에서 회사의 방향을 잃지 않고 앞장서서 가는 존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리더는 자신의 주관을 발휘하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좀 당당해졌으면 좋겠다. 주어부터 명확히 하자. '회사'가 아니라 '리더'다. '회사가 원하는'게 아니라 '리더가 원하는'것이다.


팀장은 경영진의 입장을 팀원들에게 설명해 주는 대변인(Spokesperson)과 팀원의 보고를 경영진이 받을 가치가 있는지 판단하는 게이트 키퍼(Gate Keeper)를 겸한다. 많은 팀장이 이를 구분하지 않고 게이트 키퍼 역할에서 대변인의 권한을 사용한다. 팀원 입장에서는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다. 팀원이 보고서를 가져왔을 때 만약 피드백에 경영진의 입장을 넣고 싶다면 구분해서 말해야 한다.


제 판단에 이 방향은 지난번 경영진에서 결정한
사업방향과 어긋나서 반려될 것 같아요.
하지만 같은 마케터의 입장에서는 이 방향이 흥미로워요.
이 부분만 고치면 경영진과 논의해볼 수 있겠는데
어떻게 생각해요?


대표이사나 임원도 회사를 주어로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회사를 주어로 쓰면 듣기에는 자연스러울지 몰라도 책임지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허상을 이야기하는 것과 다름 없다. 


자신의 입장과 타인의 입장을 객관적으로 나누어 명확하게 설명해주는 게 좋은 피드백이다. 주어만 바뀌어도 실무자 입장에서는 상황이 명확해진다. 상황이 명확하면 대응도 분명해진다. 실무자는 피드백을 듣고 다음 행동을 빠르게 선택할 수 있다. 상대의 의중을 파악하는데 쓸데 없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조직의 보이지 않는 비용은 이렇게 절감되는 것이다.


영화 <변호인>을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송우석 변호사가 국가의 실체를 군부로 밝혀내자 차동영은 '입닥쳐! 이 빨갱이 새끼야!'라고 외치며 벌떡 일어난다. 그 외침은 어쩌면 스스로를 의심했을지도 모를 자신의 비윤리적인 행위를 끝까지 정당화 해준 국가가 벌거벗겨진 상황에 대한 필사적인 방어였을지도 모른다. 그의 눈은 젖어 있었다. 국가가 공산주의자를 판단한다며 죄없는 학생들을 고문한 차동영과 다를 게 없다.


기억하자. 회사가 리더를 필요로 하고 연봉을 지급하는 이유는 리더의 판단력까지 필요하기 때문이다. 모든 판단과 의사결정을 보이지도 않는 조직에 미루고 그 뒤에 숨는 건 비겁한 짓이다. 그런 리더는 나쁜 리더이고, 그런 리더는 조직에 있을 필요가 없다.


끝.


이전 02화 부하를 희생양으로 삼는 리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