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배진 Feb 19. 2022

그 요가 동작은 안된다고요?

요가 병아리의 성장 기록

"와 저분 봤어? 막 바닥으로 떨어졌어!"


그 주는 유난히 시간이 없었다. 지난 연말과 연초에 일어난 회사에서의 일련의 사건들을 보고 겪으며 이직을 결심했기 때문이다. 매일 밤 'next step'에 대한 고민과 '리서치'를 위한 시간을 확보해야 했다. 그렇다고 회사일도 허술하게 할 수는 없었다. 나는 올해 초부터 대표님 직속의 1인 부서인 '상품 기획'부서에 배속되었다. 거의 매일 대표님과 미팅을 하고 지난 미팅 때 생겨난 업무에 대한 보고를 해야 했기 때문에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대표님이 내리는 일과, '신제품 론칭'을 위해 자발적으로 해 나가야 하는 일을 동시에 치르느라 매일같이 진이 빠졌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7:20분에 시작하는 아침 요가 수업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바득바득 요가를 가겠다고 생각하는 나 자신이 왠지 웃기게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이런 상황에도 요가 가는 너, 정말 칭찬한다.'하고 셀프 칭찬을 하며 나를 북돋웠다.

아침 요가원 가는 길

새벽 5시 20분에 일어나 6시 10분까지 출근 준비를 하고 회사 근처에 있는 요가원에 가서 7시 20분 요가를 들었다. 이른 시각에 하는 요가는 오랜만이라 괜히 긴장이 되었는데, 선생님이 히터를 틀어 공기를 데워주시고 천천히 몸을 푸는 동작으로 나아가니 천천히 마음도 편안해졌다. 그렇게 시작된 요가는 제법 힘든 동작들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날의 하이라이트는 드롭백이었다. 나는 전굴이 잘 안 되고 후굴은 잘 되는 편인데, 잘 된다고 해봤자 이제 요가 1년 차의 서툰 요기이기 때문에 쳐다만 봐도 '헉'소리나는 동작이 참 많았다. 그날 했던 '드롭백'도 사실 아직은 쉽게 시도하지 못하는 어려운 동작이었다.


다양한 후굴 자세들을 시도하며 등과 허리를 반복적으로 풀고 늘려준 뒤 선생님이 지나가는 말처럼 가볍게 '박고래님, 드롭백 한 번 해보시죠.' 하셨다. 언젠가 선생님과 1:1로 수업을 할 때 선생님이 도와주셔서 한 두 번 해보기는 했으나... 이렇게 가볍게 시도할 일은 아니었는데 그날은 선생님이 마법의 주문(?)을 한 것 같았다. 나도 그 주문을 받자마자, '까짓것 해보지 뭐'하고 생각하며 혼자 드롭백을 시도한 것이다.


천골에 가지런히 양 손바닥을 받치고, 허벅지에 힘을 준 뒤 등 뒤의 날개뼈를 가운데로 모으며 최대한 등 근육을 쓰며 머리를 반대 방향으로 천천히 넘겼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머리를 넘기고, 머리가 뒤로 90도 정도 넘어갔다 느껴질 때 양손을 합장해서 턱-코-이마를 스쳐 하늘 위로 쭉 뻗은 뒤 손을 과감히 바닥으로 향하게 했다. 그리고 툭 하고 떨어지는 느낌과 동시에 두 손이 바닥에 닿으며 몸이 아치 형태를 그렸다.

그때였다. 그날 아침 처음 만나 '안녕하세요!'하고 활기차게 인사했던 한 여자분이 옆에서 내 동작을 보시다가 함께 수련하는 남편분에게 들떠서 외치셨다.


"와 저분 봤어? 막 바닥으로 떨어졌어!"


내가 드롭백 하는 모습이 신기했던 모양이었다. "아, 저걸 어떻게 하지? 나는 진짜 못하겠는데!" 하시는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다누라사나를 거쳐, 선생니의 도움으로 #컴업 까지 성공하고 아기자세로 돌아와 잠시의 휴식 시간을 맞았다.


수업이 끝난 뒤 아까 그 여자분이 다시 "와, 대단하세요! 그걸 어떻게 한 거지? 나는 무서워서 못하겠는데"하며 혼잣말과 질문을 섞어 이야기를 하시는 것을 보며 문득 '아 내가 누군가에게 잘한다-고 느껴질 만큼 동작을 해낼 수 있게 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아직도 나는 내가 햇병아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잘 알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그 아침의 장면이 내 머릿속에 남은 이유는 나 역시나 '저 자세는 절대로 안될 거야.' 하고 누군가가 멋진 동작을 해 내는 것을 보며 감탄과 동시에 좌절(?)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아... 저걸 어떻게 해?' 했던 기억이 있고, 드롭백을 시도하기 위해 처음 고개를 넘기고, 손을 턱 쪽으로 뻗었을 때는 숨넘어갈 뻔했다! 싶었던 적도 많았다. 그런 내가 생각보다 수월히 드롭백을 해냈으니 '하면 정말 된다'는 레퍼런스가 생긴 것이다.


앞으로도 꾸준한 수련을 통해 '된다'는 경험을 하나 둘 하다 보면, 언젠가는 원하는 경지의 동작들을 해 내는 요가인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들었다. 또 하나의 배움은 '저게 될까? 과연 내가 저걸 할 수 있을까?'하고 지레 겁먹거나, 해보지도 않았으면서 포기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포기하지 않고, 될 것이라는 사실을 그저 믿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다 보면 '되는 날'이 정말 오니까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완벽하지 않아도 자세를 풀어내지 마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