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쌀알 권지연 Oct 05. 2022

케케묵은 편지 더미 앞에서 너를 생각해

열다섯을 쓰다듬어

 잘 버려야 잘 산다는데, 버리는 게 미숙한 인생을 살고 있다. 해를 넘길 때마다 한 해 동안 썼던 수첩, 소책자, 마음을 전한 포스트잇 등을 들고 고민한다. 버릴까 말까. 옆자리 이 선생이 고민도 망설임도 없이 물건들을 쓰레기통에 넣는 소리가 통쾌하다. 그의 단호한 결의가 존경스럽다.    


 버리지 못하는 것 중에서도 제일 못 버리는 것이 편지다. 아이들이 꼬물꼬물 붙이고 간 포스트잇 같은 것도 버릴까 말까를 고민하다가 일단 싸들고 온다. 며칠 전 집안을 정리하다가 ‘편지’라고 적힌 상자를 꺼내 들었다. 뚜껑을 열자 종이먼지 폴폴 날리며 케케묵은 편지들이 쌓여있다. 낡은 것 중에서도 낡은 것들이다.      


 집적 만든 카드나 편지지가 눈에 띈다. 꽃잎을 말려 종이에 붙이고 그 위를 노란 셀로판지로 덮어서 만든 카드의 빈티지함이 힙하다. 꽃잎이 그 안에서 30년 세월을 견디고 있다. 초등학교 4-5학년 때쯤 내 친구 선영이가 보내준 카드이다. 자세히 보니 그맘때 편지들이 많다. 내용은 주로 없다는 게 특징이다. 마지막은 대부분 이런 식이다.

답장은 안 해도 돼. 하지만 답장을 해주면 더더욱 좋겠지. 할 말이 없구나. 그만 줄인다. 연필을 놓을게.


 답장을 해야 하는 걸까. 말아야 하는 걸까.      


 또 많이 등장하는 말은 “그땐 미안했어. 앞으로 사이좋게 지내자.”이다. 허구한 날 싸우고 삐지고 사과하고 그랬나 보다. 애들은 싸우면서 큰다는 게 맞구나 싶다. 지지고 볶으면서 타인을 인식하고, 이해하고, 맞춰가는 날것의 과정이 편지 안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열다섯 소녀 O의 상담 요청이 잦다. 보는 이들이 없을 때 조용하고 재바르게 “선생님 상담 요청이요”라고 말한다. 첩보물 속 비밀 요원 같다. 그럼 나도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답한다. “오케이” 상담 장소도 반에서 최대한 먼 곳으로 한다. O는 엉뚱함이 매력인 소녀이다. 무작정 순수한 영혼이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이 친구들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일이 종종 있는데, O는 무려 우등생을 유지하며 친구들의 사랑과 지지를 듬뿍 받는다.     


 그런데 최근 소녀 O는 조금 우울하다. O가 ‘친구’때문에 고민하고 있다. 대부분의 소녀들에게는 ‘친구병’이 찾아온다. 친구가 좋아서 미칠 지경인 병이다. 친구 얼굴만 봐도 끅끅끅 웃음이 난다. 나 역시 친구병에 걸린 중고등학교 시절엔 심각할 일이 하나도 없었다. 고민이나 걱정이 올라오고 있을 때 친구가 나타나면 금세 아무 생각이 없어진다. 진짜 진짜로 낙엽 굴러가는 걸 보고 자지러진다.      


 그다음 단계가 ‘답답병’이다. ‘그 친구가 도저히 이해가 안 돼요’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로 시작하는 말로 답답함을 호소한다. 이 단계를 거치지 않는 소녀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소녀들이 앓고 지나가는 병이다. 이때는 급격히 말수가 줄어든다거나, 우울해진다거나, 성적이 떨어진다. 주로 느끼는 감정은 배신감, 실망감, 불안함이다.     

 

 O는 “걔가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로 말문을 연다. 학기 초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과 사이가 멀어졌다.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과정이었을지도 모른다. O와 친구들은 성향이 조금 다르다. O의 친구들은 그야말로 깨방정들이다. 학급 일에 열성적이고, 목소리 크고, 잘 웃고, 흥이 넘친다. O도 열정적이긴 하나 그녀들의 에너지를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다. 활동 반경이 다르다. 학기 초 급격하게 친해졌으나 곧 서로의 차이를 알게 되면서, 함께 있을 때 즐거움보다 불편함이 더 커지게 되었다.      


 학기 초에 이미 친한 집단들이 형성되었다. O는 지금 친한 친구들과 함께하자니 마음이 불편하고, 다른 친구들의 무리에 들자니 자존심이 상한다. 혼란스럽다. 선택을 해야 하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소녀들에게 ‘친구’는 거대한 세계이다. 친구라는 눈앞의 문제는 뭣보다 중대하여 어깨를 짓누른다. 문제 자체에 매몰되지 말고, 한 발짝 뒤에서 들여다보면 좋겠다고 말하지만, O에게 그것은 인생은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추상적인 조언이다.      


 우리 반에는 알콩달콩 오붓하게 지내는 또 다른 소녀들의 무리가 있다. O가 그 소녀들과 함께 있는 그림이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그건 O도 알고 있는 듯하지만 “그 친구들이 저를 반겨줄까요”라며 망설인다. 라떼는 같은 반이면 다 친구였다. 조금 더 친한 친구가 있을 뿐, 어제는 이 친구들이랑 놀고, 오늘은 저 친구들과 놀아도 아무렇지 않았다. 요즘은 좀 다르다. 반에서 자연스럽게 무리가 형성되고, 무리 안에 있을 때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낀다. 여린 감수성의 소유자들에게 무리를 이탈하여 옮기는 건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O가 용기를 내어 낯선 친구들의 세계에 문을 두드렸을 때, 친구들은 반겨주었다. 소녀들의 환대가 눈물겹다. 알콩달콩 오붓하지만 약간 심심하게 지내던 소녀들의 세계에, O의 엉뚱함과 당당함이 더해지면서 그녀들의 세계가 꽤 재미있어졌다. 그리고 생각지 못한 시너지를 창출하기 시작했다. 소녀 O는 공부(원래 잘했는데 더 올랐다)로, P와 J는 미술로, S는 글쓰기에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놀라웠다. 우정, 친구 관계가 성취동기와도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하였다.     


 종종 친구 사이의 어려움으로 전학을 가는 아이들도 보았다. 안타까운 일이다. 서로 갈등을 극복하면 완벽한 문제 해결이 되겠지만, O의 경우와 같이 자신의 자리를 잘 찾아가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결국은 ‘나는 행복하게 살고 있는가’의 문제이다. 적당히 맞춰주며 살아가는 게 편하다면 그래도 된다. 그러나 '더 이상은 한계다'라고 생각될 때는 다른 세계도 둘러볼 필요가 있다. 내 가치를 존중해 주고, 환대해주는 더 따뜻한 세계도 있다.         


 친구가 내 세계를 마구 뒤흔들고 있다고 생각될 때, 그래서 불안할 때, 스스로 불안을 눈치챘을 때, 너무 당황하지 않아도 된다. 키르케고르는 불안이란 자유의 현기증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불안이 깊으면 깊을수록 인간은 위대하다고도 했으며, 불안은 가능성을 내포하고, 가능성에 의해 길러지는 사람은 비로소 그의 무한성에 따라 성장한다고 했다. 어려운 말 같으나 어려워 말라. 갑자기 멀게 느끼지도 말라. 쉽게 말해 ‘성장통’이다. 지지고 볶았던 내 낡은 ‘편지들의 기록’ 같은 것이다.


좌) 이름을 '누구누구'로 적어서 누가 보낸지 알 수 없는, 내용이 있는데 없는 편지        

우) 30년 세월을 견디고 있는 꽃잎 카드

이전 09화 돌멩이가 속삭일 때 너를 생각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