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은 지나온 거리에 가득했다. 앞으로 걸어갈 곳엔 그 무엇도 찍혀있지 않았다. 그러니 모르는 것이 당연했고, 그 알 수 없음에 주눅 드는 것은 부끄러울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광활함에 멈칫했고, 압도당한 채 뒷걸음질 쳤다. 그대로 이미 밟혀진 길을 향해 다시 또 걸었다. 이토록 힘없이 밀려나버린 것은 지나온 시간들을 바로 잡지 않았기 때문이었을까 생각하며, 외로이 걸어갔다.
뒤돌아버린 마음이 닿는 걸음은 맞춰지지 않았다. 걸음걸음이 움푹 패어도 선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쥐어짜는 듯이 답답해도 차라리 숨어버리는 것이 더 편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언젠가 꼭, 저 아무것도 없는 곳에 닿게 될지라도 그 시기를 조금이라도 밀어내고 싶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어디까지 걸었을까. 점점 옅어지는 발자국을 따라서 여전히 더 깊은 발자국을 찍었다. 어쩌면 이 길이 진정 내가 갈 길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느려지는 걸음을 재촉했다.
이미 지나온 것들을 마주했다. 다신 돌아오지 않을 것들에 스스로 돌아갔다. 다시 한번 느껴지는 그것들의 무자비함에 움츠러들었다.
그러나 사라지지 않고 그 자리에 있을지언정 지나간 것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곳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외로이 만들고 있던 그 발자국들은 나를 끌어당기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발판이 되어 더 멀리 그리고 더 자유로이 나아가라며 나를 끌어주는 것이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