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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장동 May 08. 2020

[단편] 주인님을 찾습니다 - 3

아파트 동 대표 체험기

한편, 동 대표 회의는 매월 말에 개최되어 무수한 안건이 제출, 심의, 의결되었다.  

 하지만 P는 회의가 누적될수록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의구심이 깊어져 갔다. 참석자들은 회의 취지에 맞는 아파트 주민생활과 밀접한 다양한 개선사항, 비용 집행 점검, 민원해결을 중점적으로 다루기보다는 끊임없이 발생하는 크고 작은 ‘공사’와 이해관계에 민감하고 관심 또한 아주 높았다.

 관리소장은 엘리베이터 수리/교체, 단지 내 소독업체 선정, 정화조/물탱크 청소, 어린이 놀이터 시설 교체, 모래흙 소독, CCTV 교체, 조경업체 선정 등 연이은 공사와 계약 필요성 그리고 모든 공사는 빨리 진행되어야 한다는 시급성을 특히 강조했다.

 참관인 자격으로 참석하는 부녀회장은 아파트 내 주말장터 개최, 광고업체 선정은 자기들 영역임을 끊임없이 주지 시켰다.

 반면, 동 대표이자 부동산, 인테리어업소 사장들은 회의에는 아무 관심도 없는 듯 연속으로 불참하거나 참석하더라도 도무지 의견이 없다.

 P는 속으로 ‘저분들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동 대표를 하실까?’ 점점 궁금해질 즈음, 그 이유들이 하나씩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상견례 자리 후 몇 달 동안이나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상가 인테리어 사장이자 5동 대표가 오랜만에 참석하더니, 갑자기 회의 중간에 관리소장에게 따지듯 묻는다. 

 “뭐, 그건 그렇고. 소장님께 뭐하나 물어봅시다. 관리반장은 도대체 뭐 하는 사람입니까? 그 사람 하는 일이 뭐예요?”

 “아.. 예.. 관리반장이요... 그분은 우리 아파트 관리파트를 맡고 있습니다. 경비 파트 외에는 전부 관리파트 일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예를 들면, 배관, 전기...”

 관리소장은 5동 대표의 질문 의도를 몰라 슬슬 눈치를 보면서 기계적인 답변을 한다.

 “아니, 그런 관리파트 일을 하라고 반장이 따로 있다고요? 그럼, 관리소장님은 뭘 하시고요? 그런 건 관리소장님이 다 하시면 되는 거 아닙니까?”

  “그래도, 세세하게는 관리반장이 할 일이 있고, 제가 할 일도 따로 있는지라.. 그렇게 딱..”

 “참 내, 무슨 공무원 조직도 아니고 그거야말로 쓸데없는 옥상옥屋上屋 구조 아닌가요? 이 쥐꼬리 만 한 단지에서 관리소장이 있으면 됐지, 무슨 관리반장이 따로 필요합니까?

 그는 더욱 세차게 밀어붙이기 시작한다.

 “관리반장 월급은 어디 하늘에서 그냥 떨어진다고 합디까?
 그분이 무료봉사로 우리 아파트에 와 있는 거요?
 우리 주민들 피땀에서 나오는 관리비로 월급 주는 거 아닙니까?
 일이 없으면 사람을 줄여야지, 자기돈 아니라고 인건비로 펑펑. 참 어이가 없어가지고..
.”

 5동 대표는 지난 2년 동안 동 대표를 역임하신 분이다. 그런 그가 마치 관리반장 존재를 이번에 처음 알았다는 듯 잉여 인간으로 취급하더니 반장 해고를 요구하고 있다.
     

 일순, 긴장감이 착 감기기 시작한다.

 회장은 눈을 감으며 천장을 바라보고 있다. 관리소장은 아직도 5동 대표 의도를 파악하지 못해 좌불안석이고 나머지 동 대표들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도무지 말이 없다.

 벽에 붙어 있는 시계는 눈치 없이 잠시도 쉬지 않고 재깍재깍 소리를 내며 잘도 돌아가고 있다. 누구도 말이 없고 침묵을 이어가기에는 너무 숨이 막힌다.

 이럴 땐 대개 아마추어부터 못 견디며 손들고 나오기 십상이다. 순진한 P가 엉거주춤하며 일어났다. 

“제가 보기에도 관리소장께서 5동 대표님 질의에 명확히 답변을 못하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현재 관리반장 역할이 애매하거나 중복될 가능성도 있고, 그것이 또 관리비 낭비요소로 연결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분도 한 집안 가장이고 생활인으로 우리 아파트에서 근무하시는 건데, 이런 식으로 하루아침에 해고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보다는, 업무를 조정해서 추가로 일을 더 부담시키거나, 그것도 어려우면 퇴사자 발생 시 충원하지 않고 그분으로 대체하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P는 관리반장이 누구인지도 모르긴 했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주위에서 명퇴로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은 선배들을 너무 많이 보아 온 터라 용기를 내어 대안을 제시했다.

 “그거 참, 좋은 의견이십니다. 아주 좋아요! 역시 젊은 분이 생각하시는 게 틀리네! 그렇게 합시다. 별 다른 의견 없으시면 3동 대표 말씀대로 합시다.”  

 내내 침묵하던 회장은 관리소장에게 업무 일부를 조정하여 보고 하라고 지시했다.

 한편, 관리소장의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주의 깊게 관찰하던 5동 대표는 어느 정도 자기의 소기 목적을 달성했다고 판단했는지, 

 “정 그러시다면, 이번에는 내가 한 발 물러서겠습니다. 그 대신 제가 앞으로 똑똑히 지켜보겠습니다. 관리소 직원들 때문에 우리 아파트 관리비가 줄줄 새는지 아닌지 제대로 감시하겠습니다.”

 라면서 마지막 쐐기를 단단히 박아 놓고 마무리한다. 그러더니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 부득이 자리를 비워야 한다며 양해를 구하고 자리를 떴다. 그리고 몇 달 동안 회의에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그 후, P는 5동 대표 소동 관련 전말을 관리소장을 통해 전해 들었다.

 원인은 5동 대표 소유의 인테리어 가게 물건들이 과도하게 인도를 침해함에 따라, 관리반장이 주민들 민원을 우려하여 ‘조치’를 요구했다. 나중에 소식을 전해 듣고 격분한 그분은 동 대표 회의를 이용해 소동을 일으키며 요구받았던 ‘조치’에 확실한 답을 주었다는 것이다.  

 P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어처구니가 없었다.

 뭐랄까, 막장 드라마에 본인이 조연으로 이용당했다는 느낌!

 하지만, 이 정도는 시작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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