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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장동 May 09. 2020

[단편] 주인님을 찾습니다 - 4

아파트 동 대표 체험기


 한편, 작년부터 아파트 부동산 상가의 분위기가 뒤숭숭했다.

 그동안 800세대 단지에 3개 부동산 업소가 서로 오순도순 적당히 나누어 먹으면서 살아왔다. 그런데, 갑자기 단지 안쪽으로 입지가 좋았던 치킨집이 이사를 가더니 그 자리에 새로 부동산업소가 들어와 영업을 공격으로 하는 것이었다.

 젊고 예쁜 여사장이 지나가는 주민들에게 인사하면서 적극적으로 손님을 끌어들이기 시작하자, 그동안은 오는 손님이나 받으면서 수동적인 영업 방식을 고수하던 연로하신 기존 3개 업체 사장들이 바짝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분들에게 무언가 새로운 영업방식이 절실했다.   

 그 계기는 아파트 공사 중에서 가장 많은 예산이 소요되는 도장 공사(아파트 외벽 색칠 및 방수防水공사) 입찰 안건이 제공했다.

 관리소장은 몇 개월 전부터 도장 공사에 심혈을 기울여 오던 터였다.

 소장이 공사 건을 설명할 때에는, 평상시와 달리 긴장한 채 손까지 미세하게 떨면서 계속 헛기침을 하는 모습을 보면 그분이 얼마나 도장 공사에 정성을 들이고 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상기 도장 공사는 마지막 공사 경과시점으로 기산하여 무려 7년이 경과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더 이상 공사를 미룰 경우 아파트 안전에 상당한 위험이 노출될 가능성이 있고, 또 우리 아파트가 낡고 어두운 이미지로 비치는 등 부정적인 영향이 많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따라서 부득이 총 소요비용 약 4억여 원을 들여 공사를 집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

 “이의 있습니다.
 갑자기 하늘 중개사 사장이 관리소장의 말 허리를 자르면서 손을 든다.

 “1동 주민들을 대표해서 그리고 주민으로서 제가 한 말씀드리겠습니다. 소요 비용이 4억을 넘는 엄청난 돈이 집행되는데, 꼭 지금 시점에 공사를 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7년이 경과되었다고 반드시 공사를 해야 하는 이유가 뭐죠? 안전에 어떤 문제점이 있다는 거죠? 이해가 안 됩니다.


아, 네.. 그것은 아파트 외벽이 오래되면 도색된 것이 벗겨지고 그로 인해 방수 기능이 약해져 침수浸水 가능성, 쉽게 말씀드리자면, 아파트 천장에 물이 새어 들어 올 가능성 등 심각한 문제점이 발생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해서...

그는 황급히 답변을 이어갔으나,

 “그럼, 진짜 방수가 문제 된다면 균열(틈새)이 발생할 곳에만 별도 공사를 하고 공사 주기를 7년이 아닌 10년으로 늘리면 주민들 부담이 아주 많이 절감될 것 같은데요.

 미관상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낡은 게 뭐가 문제죠?

 강남 아파트들 보세요, 강남 아파트. 재건축을 강조하려고 일부러 벽에 땜질하면서 도장 공사 미뤄서 ‘우리 아파트 곧 재건축 들어갑니다!’라고 홍보하는 거 아닙니까?
 

 우리 아파트도 이제 35년이 넘었는데 그 정도면 재건축 아파트 축에 충분히 들 수 있습니다. 굳이 재건축 대상 아파트라고 입 아프게 떠들 필요도 없어요. 딱 외벽만 보면 알 수 있는데, 뭘.


 하늘 부동산 사장은 중년 여성 치고는 키가 상당히 크고 무엇보다도 어깨가 떡 벌어져 상대방으로 하여금 ‘포스’를 느끼게 하는 타입이다.

 거기다, 목소리까지 괄괄해 아무리 산전수전 다 겪은 능구렁이 관리소장이라도 감당하기에 어쩐지 힘겨워 보인다. 

 “도.... 도장 공사를 안 하게 되면 아파트 안정상에 치명적인 결함을 가져 올 수도 있는 사안이라서 이번에는 반드시....

 소장은 갑자기 안절부절 못 하고 얼굴이 벌게져서 추가 설명을 시도했으나,

 “저는 이 도장 공사를 이해할 수가 없어요. 아파트 안전에 치명적인 문제점이 발생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전까지, 난 1동 주민을 대표해서 이 도장 공사 반대입니다, 절대 반대.”  
    



 P로서는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지난 1년 동안 동 대표 회의에 참석해서 안건에 대해 단 한마디도 가타부타 말이 없던 1동 대표가 갑자기 논리적으로 속사포처럼 도장 공사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공사 진행 중단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동 대표 회장은 관리소장에게 추가로 보완자료를 준비하라고 지시하고는 서둘러 안건 심사를 마무리하면서

 “오늘은 날도 더운데 시원한 맥주라도 한 잔 하러 갑시다. 회장인 내가 한 번 쏘겠습니다.”

 라며, 평소와 어울리지 않게 호탕한 웃음으로 회의를 종료시켰다.   
  

 다음날부터, 아파트에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소문 요점은 이러했다.

 하늘 부동산 사장이자 1동 대표는 단지 내 또 다른 부동산이 들어서고 경쟁이 점점 심해지면서 매출이 급격히 빠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를 만회할 목적으로 입주민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영업하는 방식을 구상하고는, 관리소장에게 필요한 아파트 입주자 휴대폰 연락처를 요구했다.

 하지만 개인신용정보법 위반 가능성을 우려한 소장이 그 요구를 거절했다는 것이다. 이에, 그녀는 혼자 숫돌에 칼날을 갈면서 때를 기다렸다. 그러다 마침 관리소장이 오매불망하던 도장 공사를 물고 늘어져 복수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어느덧 한 달이 지나 동 대표 회의는 어김없이 정시에 개최되었다. 회장의 개회 선언, 관리소장의 주요 사업 진행 보고, 이어서 개별 안건 심사가 시작되었다.

 소장은 지난번 아파트 외벽 도장 공사의 필요성, 절차, 소요비용, 예상 효과를 토씨와 문맥만 살짝 변경한 채 다시 설명했다.

 지난달 회의에서 길길이 뛰며 반대했던 하늘 부동산 사장이자 1동 대표는 이번에는 더 이상 공사를 미룰 경우 아파트 안전에 상당한 위험이 따를 것 같아 1동 주민의 의견을 모아 공사 진행에 동의하겠다고 선언했다.

 참석자 대부분 고개를 끄덕였다.

 P는 어이가 없었다.

 1동 대표가 자기 입장을 갑자기 180도 확 바꾼 것 치고는 너무도 설명이 궁색했고, 게다가 툭하면 1동 주민을 대표하여, 1동 주민 의견이라며 1동 주민을 끌어들이는 행태가 마치,

 ‘국민을 대표하여, 국민의 이름으로’라며 툭하면 자기들 입맛에 맞춰 국민을 팔아 대는 정치인

 ‘시민의 요구, 시민의 이름으로’라는 식으로 걸핏하면 시민을 물고 들어가서는 자기들 멋대로 정치적 편향성을 드러내는 시민 없는 시민단체들과 별반 다를 게 없기 때문이었다.
        

 한편, 동 대표 간에 암묵적인 동의가 이루어졌다고 판단한 능구렁이 소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장마가 오기 전에 시급히 공사를 끝내야 한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그리고는, 공사업체 대상으로 제안서를 발송하여 견적서를 받았고 밀봉된 봉투에 각 업체의 공사 견적금액이 기재되어 있으며, 소요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최저가를 써낸 업체를 선정하기로 했다는 점을 설명했다. 

 잠시 후에는, 관리소 직원들이 투명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라며 촬영용 카메라를 회의실 앞뒤로 두 대나 설치하면서 부산을 떨더니 전 과정이 영상 녹화되는 상태에서 밀봉된 봉투를 하나하나 개봉했다. 

 최종 확인 결과 총 7개 업체가 입찰에 응하고 5개 업체는 가격을 터무니없이 높게 써내 일치감치 탈락됐다. 나머지 2개 업체 중 기가 막히게도 공사 예산금액에 딱 2백만 원 낮은 금액을 기재한 A업체가 선정되었다. 

 P는 A업체가 앞 단지 아파트 도장 공사도 수주했었다는 사실을 그 자리에서는 알 수 없었다. 

 모두들 낮은 가격에 업체가 선정되어 우리 아파트로서는 엄청난 비용이 절감되었다며 큰 다행이라고 입을 모았다. 

 회의 종료 후, 문을 나서는데 뒤에서 회장과 하늘 부동산 사장이 관리소장에게 

 “축하드립니다. 축해 드려요” 

 하며 덕담을 건네고 입이 귀에 걸린 능구렁이 소장 또한 

 “감사합니다. 모두 여러분들 덕분입니다.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하면서 연신 허리를 굽혔다. 



“뭐가 좀 이상합니다. 아파트 도장 공사에 업체가 선정됐는데 관리소장에게 축하할 일이 뭐죠? 이 은혜 잊지 않겠다는 건 또 뭔가요? 그리고 지난달 회의에서 그렇게 반대하시던 1동 대표님은 태도가 돌변했는데 아무런 설명도 없고....”

  P는 회의가 끝난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옆 2동 대표와 잠깐 나무벤치에서 담배를 피우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젊은 양반, 가만히 계시고 모른 척하세요. 나서봐야 다 자기만 손해입니다. 조용히 묻어가는 게 상책이고 좋은 게 좋은 거죠, 뭐...”

 2동 대표는 지긋한 연세에 이사 오기 전 아파트에서도 동 대표를 한 번, 우리 아파트에서는 두 번째 연임 중이었다. 그는 담배를 두 개나 연이어 피시더니 땅바닥에 공초를 비벼 끄면서 P과장을 보고 빙그레 웃으며

 “갑시다. 밤도 깊었는데, 오늘 밤은 별도 참 밝다...”
면서 일어섰다.

 P는 2동 대표를 볼 때마다, 소설 동물농장의 ‘벤자민’이 연상되었다.

 동물농장의 모든 흥망성쇠를 몸소 겪으면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산 역사이지만, 그 어떤 사건에도 흥분하지도 나서지도 않고, 그저 ‘당나귀는 오래 산다네.’라는 알다가도 모를 한마디 외에는 어떠한 말도 하지 않으며, 극심한 혼란기에 이런저런 이유로 동물농장에서 짐승들이 사라져 갈 때에도 살아남은 늙은 당나귀 벤자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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