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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니를 늦게 뽑으면 생기는 일

by BM Mar 24. 2025

시골에서 자란 나는 어릴 적에 이를 뽑아야 할 때면 항상 할머니가 실을 칭칭 감고 당겨서 뽑았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물론 그것들은 다 유치였기 때문에 그것 때문에 치과를 가야 할 이유는 없었다. 당시 나뿐만 아니라 그때를 살았던 내 세대들은 모두가 다 경험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러고 나서 영구치가 생기고 나서도 내 기억으로는 한 번도 엄마나 아버지 손을 잡고 치과를 가본 적은 없었던 기억이 난다. 치과를 갈 일이 없었거나 아니면 두 분 다 자식들의 그 부분에 신경을 안 썼거나 둘 중에 하나 아니었을까 감히 상상해 본다.


내 기억으로 제대로 된 치과를 간 것은 대학교에 들어가서였다. 당시 나는 서울에서 하숙을 하고 있었고 인천에 막내 고모가 살고 있었다. 가끔 주말에 고모네 놀러 가곤 했다. 당시 고모는 거의 부모님처럼 나를 챙겨 주셨던 참 고마운 분이었다. 어느 날에 어금니에 통증이 있어서 고모한테 전화를 했더니 토요일에 같이 치과를 가자고 했다. 그때가 아마도 처음으로 치과를 갔었던 것 같다.


어금니가 썩어서 갔는데 치과 의사 선생님이 사랑니가 자라서 빼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위아래로 4개가 있다고 하면서 한꺼번에 뺄 수는 없고 나눠서 빼야 한다고 했다. 그냥 놔두면 나중에 문제 생길 수 있다고 미리 겁을 주면서 꼭 해야 한다고 권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하기로 했다. 그런데 무슨 이유였는지는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사랑니 하나를 안 뺐다.


그 이후로 한 참의 시간이 지났고 하나 남은 사랑니를 까먹고 살았다. 그러다가 호주 와서 정기 점검으로 치과를 갔다가 의사 선생님이 사랑니 하나가 아직도 있는 것은 아시죠?라고 했다. 그때야 비로소 그 기억이 떠 올랐다. 마자 내가 아직도 사랑니 하나가 있지. 당시 의사 선생님은 엑스레이를 보시더니 사랑니의 위치가 누워 있어서 호주의 스페셜 닥터를 통해 뽑아야 할 것 같다면서 추천을 해 주셨다.


호주는 스페셜 리스트 의사들이 따로 있다. 이들은 한국으로 치면 "전문의"라고 하는 의사들로서 수술을 할 수 있는 분들이다. 치과 스페셜 리스트를 만나서 사랑니를 상담받아 보니 견적이 어마 어마하게 나왔다. 더군다나 위치 때문에 큰 수술이라고 하면서 나를 엄청 긴장시키게 만들었다. 생각해 보겠다고만 말하고 다시 집에 와서는 나중에 한국 방문을 하면 그때 다시 점검을 해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 뒤로 별 문제가 없어서 내버려 둔 것이 화근이 됐다.


최근에 드디어 사랑니가 문제를 일으켰다. 바로 옆에 있는 어금니를 공격해서 그 어금니까지 발치를 해야 할 지경이 되었다. 다음 주 수요일에 어금니랑 사랑니를 결국 다 빼기로 예약했다. 치과에서 돌아오는 길에 아내는 우리 부모님을 원망했다. 원래 사랑니는 부모님이 어릴 적에 다 빼줘야 하는데 그걸 못해서 이렇게 나이 들어서 자식을 고생시킨다고 말이다. 틀린 말은 아니라서 오는 내내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플랫폼 개발을 하다 보면 사랑니 같은 것이 있다. 지금 당장 급하지 않다는 이유로 미루고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 나중에 그것이 크게 이슈화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전문용어로는 "Technical Debts" 즉 기술 부채라고 흔히들 부른다. 단어 그대로 직역해 보면 기술적인 빚이다. 우리가 재무적인 측면에서 보면 빚은 언제 가는 갚아야 하는 채무이다. 사정상 지금 당장 갚을 수는 없어도 결국에는 갚아야 한다. 그리고 나중에 갚을수록 이자로 내야 하는 부담이 더 늘어나는 것이 빚의 기본 법칙이다.


프로젝트에서 이런 'Technical Debts" 이 많이 생기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 지금은 이런 조그마하고 중요하지 않는 것에 시간을 쓸 여력이 없어요

- 다음 주까지 출시를 해야 하는데 지금 중요한 것도 산떠미처럼 많아요

- 문서작성보다 일단 코딩이 더 중요하니까 그것부터 빨리 하시죠

- 미래에 필요할 수도 있는 것보다는 지금 바로 필요한 것을 위해 설계를 먼저 합시다

- 일단 고객한테 보이는 부분에 집중하고 유지 보수에 필요한 것은 나중에 생각하시죠


그러나 이런 식으로 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처음부터 일찍 점검하고 고려하지 않고 만들어서 출시한 플랫폼은 꼭 나중에 그 대가를 치렀다.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


나도 플랫폼 기획자가 되기 전에 개발자였기에 위에서 나열한 이유들에 대해서 충분히 납득을 하는 편이다. 제안된 리소스에 출시 날짜는 정해져 있는 절박한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것들을 평소에 시간 날 때마다 조금씩 조금씩 그 빚을 청산해 나가는 개발자들이 있다. 그런 개발자들이야 말로 정말 프로라고 불린다.


아키텍트(architect, 플랫폼 설계자) 중에서 거의 두 부류가 있다. 빠르게 설계를 정의하지만 그것이 유연하지 못하고 확장성을 고려하지 않아서 나중에 다시 재설계를 해야 하는 아키텍트가 있는 반면에 어떤 사람은 설계에 시간을 남들보다 좀 더 많이 걸리지만 결국에 추후 고객의 요구 사항이 변경될 경우 유연하게 대처가 가능한 설계를 하는 사람이 있다. 당연히 후자가 더 좋은 방향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실상 플랫폼 기획이 끝나고 개발을 시작하면 늘 시간에 쫓긴다. 배포 일정은 항상 따박따박 다가오고 개발팀은 많은 스트레스를 받곤 한다. 신기한 것은 아무리 쉽고 간단한 플랫폼이라고 해도 이런 문제는 늘 발생한다.


 



우리 회사 개발팀을 보면 이런 기술적인 부채 (Technical Debts)를 처음부터 인정하고 시작한다. 그리고 아예 이 부분에 대한 개발 견적을 따로 예상하며 프로젝트 시작 전체 미팅에서 공식적으로 이런 부분을 인식시키고 시작한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 이런 부분에 대한 이슈가 생기면 특별한 책임 추궁이 없다.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것들이 무슨 소용이 있나 싶다. 결국에는 해야 할 일을 잠시 뒤로 미루는 것인 것이고 다 알고 있으면서도 나중에 할 것이라는 공식적인 핑계일 뿐이다.


마치 사랑니를 일찍 빼야만 한다는 것을 다 알지만 지금 당장 문제가 안 생기면 그냥 내버려 두다가 나중에 후회하고 생각보다 더 많은 비용이 든다. 마찬가지로 기술적 부채는 나중에 할 것이 아니라 그것이 예측 가능하다면 처음부터 고려되어야 한다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이다.


다음 주 어금니와 사랑니를 빼고 나면 3-4일 정도는 통증이 온다고들 한다. 하지만 나는 불평할 수 없다. 모든 것이 나의 잘못이기에 말이다. 진작에 했어야 할 일을 미룬 대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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