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한하운, 전라도길·데모

'나'가 '남'이, '남'이 '나'가 될 수 있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요

by 난란

문학의 쓸모는 무엇일까요? 이 질문은 문학성이라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과는 조금 다릅니다. 문학만이 지니는 특징, 시의 특징을 과학적으로 규명했던 야콥슨의 노력을 상기해 봅시다. 문학의 기능을 밝히는 것과 그래서 그것이 어떤 효과나 가치가 있는지를 드러내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특히 모든 것이 돈으로 환산되는 자본주의 세계에서는 더욱 그러하고요.



시는 독자에게 다가가 독자를 변화시키지만 그것은 일단 눈에 보이지 않고, 독자마다 변화의 정도나 양태는 다를 수밖에 없으니 이를 숫자로 증명하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문학이란 쓸모가 없다고 말할 수도 없죠. 그렇게 문학의 쓸모에 대한 논의는 문학성에 대한 논의와 유사성을 띱니다. 그것을 믿는 사람도 믿지 않는 사람도 증명하고 싶어한다는 점에서 말이지요.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문학이 정말 사람의 마음을 바꾸고,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요? 그건 그저 문학 애호가들의 바람에 불과할까요? 그렇다면 읽고 쓰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이런 생각이 깊어질 때쯤에는 이 시를 생각하곤 합니다. 한하운의 시를 말이죠. 자, 한하운에 대해 알아 봅시다.


한하운은 필명입니다. 본명은 한태영으로, 1919년 태어나 1975년 소천했습니다. 함경남도 함주 출신이었던 한하운은 1936년, 열일곱에 한센병 진단을 받습니다. 이후 1939년 동경 세이케이고등학교를 수료한 후 1943년 북경대학 농학원을 졸업한 후 1944년부터 함경남도 도청 축산과에 근무하게 됩니다. 그러나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1945년 한센병이 악화되어 그만두고 1948년 월남하여 유랑 생활을 이어가게 됩니다.


여기서 생각해볼 것은 한하운의 출신지와 배경입니다. 한센병을 앓았지만 학업을 지속하고 유학까지 다녀올 수 있었던 것은 상대적으로 고향에서 안정적인 삶을 살았다는 것을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그런 고향을 떠나 월남했다는 것은 한센병자라는 낙인과 불안정한 기반으로 살아가야 하는, 낙차가 큰 삶을 살았다고 생각해볼 수 있지요.


한센병으로 인해 떠돌던 한하운은 1949년 『신천지』에 「전라도길」외 12편의 시를 발표합니다. 한하운의 시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곧 『한하운시초』가 발간되며 1955년에는 『보리피리』, 1956년에는 『한하운전집』이 발간됩니다. 이름을 날린 한하운은 한센병 2세들을 위한 보육원을 설립하기 시작하는데요, 1952년에는 신명보육원, 1953년에는 동진원, 1958년에는 청운보육원을 설립합니다. 일 년 후 1959년에는 한센병 완치 판정을 받고, 1960년에는 출판사 무하문화사를 만듭니다.


1973년에는 한하운의 시 「보리피리」를 새긴 시비가 소록도에 건립됩니다. 소록도는 전라남도 고흥군에 위치한 섬입니다. 1916년 조선총독부는 「나환자수용에 관한 건」에 의해 소록도에 소록도자혜의원을 설립하면서 한센병자들을 강제로 격리하기 시작했고, 한센병자들은 소록도로 들어가야 했습니다.


물론 이전에도 한센병자는 존재했고, 손발이 문드러지는 병이라는 의미로 문둥,병, 하늘이 내린 형벌이라는 뜻의 천형병이라는 이름으로 차별받기는 했지만 세균이나 전염 같은 인식이 부재했기 때문에 국가 차원에서의 추방이나 격리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한센병자는 위생과 치안을 위협하는 존재이자 배제되어야 할 혐오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 한센병자들의 상황을 더 알고 싶으시다면 「식민지기 한센병 환자를 둘러싼 죽음과 생존」을 읽어 보시는 것도 추천합니다.


"문둥병자가 아이 잡아먹는다", "문둥병자 사천 명이 담양과 강경을 습격한다더라"와 같은 유언비어가 퍼지면서 한센병자들은 점점 더 고립되었고,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가족에 의해 살해당하기도 했습니다. 한센병을 앓지 않은 자식이 부모가 한센병자임을 비관하여 죽음을 택하기도 했고요. 이러한 상황을 고려할 때, 한센병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끔찍했는지는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바탕으로 한하운의 시를 읽어 봅시다.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 삼거리를 지나도
쑤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쩔룸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꼬락이 또 한 개 없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꼬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 먼 길 전라도길

한하운, 전라도길 -소록도 가는 길에


「전라도길」의 부제는 '소록도 가는 길에' 입니다. 한센병자인 화자가 소록도로 가는 중 겪는 소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며, 그들이 어째서 "숨막히는 더위" 아래서 "천리 먼 길 소록도길"을 걸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 수 있을 겁니다. 이들은 한센병이 발병했다는 이유로 고향에서도 쫓겨나 함께하던 가족들로부터 떨어져 먼 길을 떠나야 합니다. 한센병으로 인해 기피당하고 일을 할 수 없으니 떠돌아야 하고, 떠도니 치안을 어지럽힌다고 기피당합니다. 악순환의 반복이지요.


「전라도길」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메시지도 명확하고, 시어도 어렵지 않지요. 오히려 "쑤세미", "쩔룸거리며", "발꼬락", "지까다비"와 같은 일상어로 구성되어 있지요. "지까다비"는 일본어 ちかたび로, 발굽처럼 갈라진 작업화를 뜻합니다. 일상 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이 시는 조금 더 현실성과 일상성을 획득합니다. 삶에서 다가올 법한 누군가의 목소리를 통해 배제된 이들의 상황을 진솔하게 이야기하고 있지요.


한센병자를 화자로 삼은 이 시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 깊이 탄식하거나 고통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습니다.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를 절름거리며 걷는 사람들, 발가락이 두 개가 없어 절름거리는 사람들, 버드나무 아래서 숨을 돌릴 즈음 신발 안에서 야속하게 떨어지는 발가락 한 개, 이제 남은 두 개 발가락으로 절름거리며 가야 하는 비참함, 와중에도 서로 만나면 반갑다는 말. 이 시는 감정을 갈무리함으로써 오히려 그 뒤에 숨겨진 고통이 더욱 짙게 배어 나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시를 읽고 난 후 아이들을 잡아 먹고 간을 빼 먹고, 마을을 습격한다는 괴물 같은 문둥이에 대한 인식은 여전할까요? 아니오, 조금이라도 달라졌을 겁니다. 외롭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동류를 향해 미소를 보일 수 있는 사람의 목소리가 닿았기 때문이지요. 한하운의 시는 낙인찍힌 삶의 고통을 사회적 측면에서도 보여주었습니다.


뛰어 들고 싶어라
뛰어 들고 싶어라.

풍덩실 저 강물 속으로
물구비 파도 소리와 함께
만세 소리와 함께 흐르고 싶어라.

물구비 제일 앞서 핏빛 깃발이 간다
뒤에 뒤를 줄대어
목쉰 조선사람들이 간다.

모두들 성한 사람들 저이끼리만
쌀을 달라! 자유를 달라!는
아우성 소리 바다소리.

아 바다소리와 함께 부서지고 싶어라
죽고 싶어라 죽고 싶어라
문둥이는 서서 울고 데모는 가고.

한하운, 데모


이 시는 1946년 함흥학생데모사건을 배경으로 합니다. 한하운은 데모 현장 근처에 있다가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습니다. "~싶어라"가 반복되는 것은 화자의 욕망이 좌절됨을 나타냅니다. 화자는 무엇을 그리도 원하는 것일까요? 1연에서는 "뛰어 들고" 싶다고 이야기합니다. 어디로요? 이에 대한 답은 2연에서 구체화되는데, "저 강물 속으로/물구비 파도 소리와 함께/만세 소리와 함께 흐르고 싶어라"고 말합니다.


작은 물줄기가 모여 강이 되고, 강은 바다로 흐릅니다. 그것은 자연의 이치이지요. 3행의 "강물"이 4행의 "파도 소리"와 엮이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강물과 바다는 은유입니다. 무엇의 은유일까요? "만세 소리"를 통해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만세를 부르는 '사람들'을 나타내는 것이지요. 화자는 사람들 사이에 섞이고 싶어 합니다. 물방울이 강에 섞여 강이 되듯, 바다로 흘러 바다가 되듯, '사람'이 되고픈 것이 화자의 욕망입니다.


그러나 3연을 읽어 봅시다. 화자는 "물구비 제일 앞서"부터 "목쉰 조선사람들이 간다"는 모습을 조망하고 있습니다. 데모 현장을 전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화자가 데모 행렬에 섞이지 않은 채 거리를 두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화자는 어째서 함께 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4연에서 화자는 "모두들 성한 사람들 저이끼리만" 흘러간다고 말합니다. 그 말인즉슨 화자는 "성한 사람"아 아니라는 것이겠지요. "성한 사람들"은 모여들어 "바다소리"를 냅니다.


"바다소리"는 무엇인가요? "쌀을 달라! 자유를 달라!는/아우성 소리"를 뜻합니다. 쌀과 자유는 물질과 정신을 나타냅니다. 인간으로서 보장받아야 할 최소한의 것들을 "성한 사람들"은 하나되어 요구하고 있습니다. 성난 파도처럼 밀어닥치는 이들의 힘은 바위를 부수는 강력한 "바다소리"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바다는 움직여 파도를 만듭니다. 파도는 강력하지만 이내 부서집니다. 그러나 뭐 어떤가요. 땅을 덮고 단단한 바위를 부수는걸요. 화자도 바다가 되고 싶습니다. 파도가 되어 앞길을 가로막는 저 벽을 부술 수 있다면 물거품처럼 사라져도 좋을 겁니다. "바다소리와 함께 부서지고 싶어라"는 이러한 화자의 마음을 드러내고 있지요. 그리고 그 다음 행에서 화자는 "죽고 싶어라"라고 말합니다. 두 번씩이나 말이죠.


뛰어들고 싶고, 하나가 되고 싶고, 함께 흐르고 싶고, 함께 부서지고 싶다고 말합니다. 화자가 "죽고 싶"다고 말하는 것은 "바다소리와 함께 부서지고 싶어라"는 말과 같습니다. 죽어도 "사람"으로, "사람들"과 함께 죽고 싶다는 것은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말과 다르지 않지요. 화자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사람"이 되어 "사람"으로서 권리를 요구하고, "사람"으로서 싸우다 "사람"과 같이 죽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시의 마지막 행은 이렇게 마무리됩니다. "문둥이는 서서 울고 데모는 가고." "문둥이"에게는 "사람"으로서 싸울 권리조차 부여되지 않습니다. 삶과 사회, 정치에서 밀려난 "문둥이"에게는 죽을 기회조차 없는 것이지요. 극도로 소외된 존재인 "문둥이"가 느끼는 비애는 살아도 살지 못한 존재가 느끼는 고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웃지 못할 사실은, 이 시로 인해 한하운이 존재하지 않는 작가, 유령 작가 취급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는 시 「데모」가 1953년 「행렬」로 제목을 바꾸어야 했던 이유와 연관됩니다. 3연에서 나타나는 "핏빛 깃발"은 공산주의를 뜻하며, 한하운韓何雲이라는 이름도 '한국이 어찌하여 뜬구름이 되었는가'라는 의미이며, 한하운이란 실제 존재하는 사람이 아닌 남한을 흔들기 위한 좌익의 농간으로 문화 빨치산, 선동 시인이라는 주장을 편 것이지요. 한국전쟁 이후 공산주의와 자유주의의 진영 갈등이 극에 달하며 반대 진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축출하려던 광기의 시기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한하운은 이러한 상황을 전면적으로 돌파합니다. 1953년 10월 15일 서울신문 편집국의 문을 두드린 한하운은 자신이 실존 인물임을 밝힙니다. 기자의 질문에 대해 답한 한하운은 앉은 자리에서 한 편의 시를 쓰는데, 그 시가 바로 「보리피리」입니다. 한하운이 돌아간 후 기자들은 몰려들어 시가 좋다고 칭찬하면서도 그가 만진 펜에 레프라(나병) 균이 붙었다고 소란을 피웠습니다. 만지면 자신도 한센병이 걸릴 것이라고 두려워하며 원고지로 펜을 돌돌 말아 던지고 나서야 상황은 일단락됩니다. 그리고 10월 17일 "하운 서울에 오다, '레프라 왕자' 환자수용을 지휘"라는 3단 제목으로 한하운이 실존 인물이라는 것과 「보리피리」를 싣게 되지요.


'레프라 왕자'라는 별명처럼 한하운의 명성은 높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시가 훌륭한 까닭은 한센병자의 고통을 드러내고 이를 전달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한센병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변화시켰다는 데에 있습니다. 한센병자에 대한, 병에 대한 혐오는 복합적으로 작동합니다.


병은 죽음의 전조로서 공포를 불러일으킵니다. 병, 피, 배설물, 상처 등은 인간이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며 동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상기시키죠. 이러한 두려움을 회피하기 위하여 선택하는 것이 바로 혐오입니다. 동물성과 유한성에 대한 두려움과 역겨움을 느끼게 하는 이들에게 혐오감을 드러냄으로써 그들을 배제하고 주변화하며, 이를 통해 혐오스러운 '저들'과 그렇지 않은 '나', '우리'를 구분합니다. 혐오스러움은 전염되기 때문에 가까이 해서는 안 되거나 없애 버려야 한다는 생각도 이러한 태도에서 비롯됩니다.


혐오는 기본적으로 이원적 사고를 기반으로 작동합니다. 주체/타자, 나/남, 친구/적, 건강인/한센인이라는 이원적 사고는 쌍방의 교류를 막으며, 타자에 대한 부정을 기반으로 움직입니다. 신체 부위가 문드러지는 한센병은 그 원인과 치료법을 알지 못해 천형天刑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이는 한센병 환자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배제하려는 사고에서 비롯됩니다.


여기서 생각해볼 것은 적대적인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타자는 배척되고 배제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타자를 배제하는 방식은 낭만화로도 발현되는데, 좋은 부분만을 부각시키면서 인간이 지니는 문제적인 것을 삭제하는 것도 타자화의 일종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살'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나요? 1947년 5월 12일 라이프 매거진의 커버를 장식한 이 사진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투신한 에블린 맥헤일의 시신을 담고 있습니다. 잠든 듯 고요하게 눈을 감고 있는 젊은 여성의 아름다운 모습을 대서특필한 것이지요. 그러나 에블린은 그 누구도 자신의 일부를 보지 않기를 원했고, 자신의 몸을 화장해 없애 주기를 부탁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아름답다고 칭송한다 한들 그것이 타자화에 지나지 않습니다. 타자를 그 자체로 바라보지 않고 마음에 드는 부분에만 주목하여 그것이 전부인 양 다루기 때문이지요.


타자화는 주체중심주의적 관점에서 비롯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경험과 관점을 바탕으로 생각하고 행동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닙니다. 내가 겪은 것, 내가 아는 것, 내가 본 것만을 반복하고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편협함에 가깝습니다. 타자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타자의 입장을 헤아리고 타자의 슬픔과 불행을 동정하고 나아가 공감함으로써 좁은 자신의 세계에서 벗어날 수 있지요. 황지우의 시 「뼈아픈 후회」에서도 말하지 않았나요.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라고 말이죠.



사람은 자신의 육체에 갇혀 있기 때문에 온전히 다른 누군가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문학은 그것을 간접적으로마나 경험하게 해 줍니다. 누스바움은 『혐오와 수치심』에서 동정심의 발생과 남을 돕는 행위 속에는 다른 사람이 겪는 곤경을 서사적으로 재연할 수 있는 능력이 내포되어 있다(102)고 말했습니다. 즉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일에 대해 추체험하는 능력이 없다면 공감도 실천도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문학은 다른 사람의 시선과 목소리, 상황을 접하면서 내가 살아보지 못한 삶을 경험하게 해 줍니다.


공감 지능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올라브 하우게의 시집 『어린 나무의 눈을 털어주다』의 번역가 임선기는 공감이란 친화력이며 친화력은 유사성에 기반한다(90)고 보았습니다. 나와 타인은 다릅니다. 바로 그 다름 속에서 유사성을 포착할 수 있는 능력은 은유와 연결됩니다. 은유는 한 사물을 다른 사물에 빗대어 결합하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서로 다른 대상 사이의 유사한 점을 발견하는 능력을 천재의 징표라고 말했습니다.


한하운의 시는 한센병에 대한 편견을 무너뜨리는 데 일조했습니다. 가까이 가서는 안 될 괴물, 사람을 잡아먹고 폭동을 일으키는 흉물이 아니라 사회적 낙인에 고통스러워하는 환자이자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전달했지요. 나아가 한센병 환자들을 이끌고 정착촌을 만들어 자립할 수 있도록 힘쓰고, 한센인 2세들을 위한 보육시설을 만들고, 온갖 반대를 무릅쓰고 아이들을 부평서초등학교에 입학시켰습니다.


한하운은 『나의 슬픈 반생기』에서 "이런 엄청난 비극 속에서도 나에게 살아야겠다는 용기를 주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문학이었다. 나는 문학을 통해 이 땅을 아름답게 만들고, 인간의 꿈을 이 땅 위에 행복하게 구현시키고 싶었다"라고 말합니다. 스스로를 "사람이 아니올시다"(「나」)라고 말했던 한하운에게 "인간의 꿈"이란 인간이 되고 싶은, 배제당한 한센인의 꿈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허나 그의 시는 한센인이 아닌 독자들에게 한센인 또한 자신과 같은 인간이라는 점을 생각하게 했다는 점에서 더 넓은 "인간의 꿈"의 구현이자 '나'에서 벗어나 '남'을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 "이 땅을 아름답게 만드는" 희망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생각해 봅시다. 내가 타자를 대하는 방식과, 내가 타자화된 순간을 떠올려 봅시다.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집단에게 있어 타자였나요? 나는 언제 중심이었고, 언제 주변이었나요? 각각의 상황에 따라 나의 입장과 행위는 어떻게 변화하였나요? 사람, 한국인, 여자, 남자, 20대, 30대, 40대, 50대, 60대, 학생, 노동자, 선배, 후배, 자식, 동생, 언니, 누나, 형, 출신지, 출신 학교, 재산 등 나를 규정하는 수많은 기준을 생각해 봅시다. 이를 기준으로 사람을 구분하는 것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그것이 옳은지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일요일 연재
이전 16화오라, 달콤한 고통이여: 오세영, 그릇 1·모순의 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