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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화 Jul 31. 2024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보는 것은 좋아요, 하지만...

앤 그리핀, 모리스 씨의 눈부신 일생

모리스 씨.


인사를 건네야 할까요. 인사를 건네는 게 예의에 맞는 일인 걸 알지만 제가 인사를 하기에 적절한 타이밍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다지 안녕하지 못하신 것을 알고 있기도 하고요.

어떤 순간에 이르면 삶은 도무지 견딜 수 없는 것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저도 간접적으로는 알고 있으니까요. 바에 앉아 술 한잔을 앞에 놓고 물끄러미 시선을 허공에 둔 채, 누군가를 떠올리고 있을 뒷모습을 생각하면 조금 슬퍼집니다.


“난 여기 기억하러 왔어. 지금까지 겪었고 다신 겪지 않을 모든 일을.” -38쪽


라고 당신은 레인스퍼드 하우스 호텔 바에 앉아 혼잣말을 하셨죠. 삶에서 당신이  되살리고 싶었던 이들과 어쩌면 지워버리고 싶었을 일들이 혼재되어 있는 기억들이 열리는 순간, 저는 이 편지의 수신인인 당신의 아들 케빈 해니건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페이지를 넘기며 모리스 씨, 당신이 하나씩 추억에서 불러 올리는 이름들을 살펴봤어요.


당신이 유년 시절부터 노인이 된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궤적들에 찍혔던 문장 부호와 같은 사람들을 하나씩 호출하여 지나간 삶을 반추하는 동안 한 사람의 독자로서, 동시에 당신의 하나뿐인 아들의 입장에서 부모의 삶을 추체험하는 기묘한 이중적 독서를 한 셈이었지요. 제3자의 입장에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지나갈 수 있었던 어떤 대목이, 아들로서는 뭔가가 울컥 받히는 느낌으로 덮쳐오기도 했습니다.


가장 처음으로 등장했던 토니, 당신의 형이 의기소침해져 있는 당신을 우렁차게 격려하는 장면에서 특히 그랬죠.


“왜 그래, 덩치. 우리 같이 해결하자, 알겠지? 너랑 나랑 둘이서 말이야. 너랑 나랑 같이 세상에 맞서는 거야, 응?” -50쪽


토니는 매일매일 내 옆에서 같이 걸으며 나에게 용기를 주려고 애썼다. 부모님은 나를 달래서 학교에 보내는 것을 이미 오래전에 포기했지만 토니는 내가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 끊임없이 말해 주었어. 그 시절에는 그런 사람이 아무도 없었단다. 용기를 주고 응원해주는 사람 말이야. 정해진 길을 가라고 윽박지르기만 했지. 하지만 토니가 해준 말 덕분에 나는 매일 학교에 가서 그 암흑을 견딜 수 있었다. -51쪽


당신의 아들은 당신이 난독증을 겪고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당신은 결코 말해주지 않았죠. 기자로서 훌륭하게 커리어를 쌓고 있는 아들에게, 당연한 듯 네가 이번에 쓴 기사 잘 읽었다, 라고 말할 수 없었던 심경이 어떤 것인지를 되뇌어 보면 목이 꺼끌해집니다. 아무튼 그것은 지금 할 이야기는 아니니까 조금 미루어 두죠.


여하간, 학교에서도 결국 포기했던 모리스 해니건이라는 어린 영혼을 단단하게 지탱해 주었던 당신 형의 한결같은 태도와 믿음은 삶을 이렇게 엿보고 어쩌면 잊을지도 모를 지나가는 익명의 독자마저 감동하게 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던 형은 당신에게는 곁불 같은 존재였을 겁니다. 그러니 기침을 막는데 썼던 그 손수건으로 고기 한 점을 싸두었던 것을 몰래 주었을 때에도,


내가 토니의 얼룩덜룩한 손수건에 놓인 그 고기를 먹는 모습을 봤으면 아일랜드의 모든 의사가 심장마비를 일으켰을 거다. 하지만 그 한 점은 정말 천국의 맛 같았어. 찌부러지고 차갑게 식었지만 정말 맛있었지. -73쪽


와 같이 행동한 것도 지극히 당연합니다.


시름시름 앓던 아들이, 결국 죽음이 코앞에 닥친 날 일을 쉬게 해 달라고 어머니가 일하던 가문에 간곡히 부탁했음에도 고작 그 댁 아들의 친구 가족이 놀러 오니 타르트를 만들어주어야 한다고, 꼭 직접 만들어야 한다고 강경하게 말했던 주인댁에 당신이 강렬한 증오를 품었다고 해서 공감하지 못할 사람은 없지 않을까요. 하지만 그들의 자손들에게까지 미움을 거두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글쎄요. 이해는 해도, 공감은 하지 못하는 사람도 더러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이해는 합니다. 당신이 그곳에서 직접적으로 당했던 모욕이나 폭행은 개인적 차원에서 용서할 수 있다 치더라도, 부모가 자식의 마지막마저 지키지 못하게끔 만들었던 것은 쉽게 용서받을 수 있는 종류의 허물이나 과오라고 보기에는 선을 넘은 것은 틀림없으니까요. 그러니까 당신이 그 집 아들이 실수로 잃어버린 금화를 돌려주지 않으려 한 것도 이해해요. 그 금화로 인해 그 집안이 어떤 일을 겪게 되는지는 차치하고서라도요.

그러나 당신은 결국 세 번째 추억의 대상이 되는 아내의 동생 이야기를 하며 자신의 지난 과오를 똑바로 바라보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일종의 정신병을 앓고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되는 당신의 처제, 노린은 가식을 모르므로 천진난만할 정도로 잔인하게 당신이 저지르고도 외면해 왔던 과거를 직시하게 만듭니다.


삶은 공평한 것인지, 첫 번째 아이를 잔인하게 빼앗아간 뒤 새로운 아이를 안겨주었죠. 그 아이, 책을 읽어가는 내내 내가 되어보기도 했던 바로 그 케빈이요. 당신의 아내이자 케빈의 엄마인 세이디가 이렇게 말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케빈은 케빈을 사랑하니? (...) 네가 이 귀여운 아이를 사랑하고 항상 다정하게 대하고 항상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케빈은 온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 될 거거든. (...) 그렇게 해줄래? 엄마를 위해서 케빈을 사랑해줄래?” -214쪽


저는 여기에 이르러 울고 말았습니다. 저는 이렇게 하지 못했지만, 세이디는 케빈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가르쳐 주었더군요. 당신의 아들은 세상에서 가장 대단한 사람은 되지 못할지라도, 언제 어디서라도 행복을 찾을 줄 아는 사람이 되었을 겁니다. 장담해요.


당신은 어떤 부분에서는 성마르고 옹졸한 사람일지도 모르지만, 그만큼 좋은 사람입니다. 누구나 좋은 부분과 나쁜 부분을 동시에 끌어안고 살고 있는 것처럼요. 하지만 그런 당신도 결코 극복하지 못했고, 극복하지 못할 거라 속단한 것이 있었으니 세이디의 죽음이었지요. 네, 사실 제가 이렇게 말하는 건 어불성설일지도 몰라요.


상실- 그 의사가 그것에 대해 뭘 알겠냐? 세상에, 테일러는 이제 겨우 기저귀를 뗐어. 그가 겪은 상실에 가장 가까운 경험은 아마 동정을 잃은 거겠지, 그럴 나이는 됐나 모르겠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기 전까지는 아무도, 정말 아무도 상실을 몰라. 뼈에 달라붙고 손톱 밑으로 파고드는 마음 깊이 우러나는 사랑은 긴 세월에 걸쳐 다져진 흙처럼 꿈쩍도 안 한다. 그런데 그 사랑이 사라지면……누가 억지로 뜯어간 것 같아. 아물지 않은 상처를 드러낸 채 빌어먹을 고급 카펫에 피를 뚝뚝 흘리며 서 있는 거야. 반은 살아 있고 반은 죽은 채로, 한 발을 무덤에 넣은 채로 말이다. -264쪽


왜냐하면 말씀하셨듯 저는 운이 좋아서 아직 그런 ‘직접적’ 상실을 겪지는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다른 종류의 죽음이라면, 저도 가까운 이들을 몇 번 떠나보냈습니다. 어이없을 정도로 황당한 이유로요. 그래서 감히 말을 얹겠어요. 저도 편지 굉장히 좋아하긴 하는데, 어떤 순간엔 편지보다는 대화가 더 좋아요. 아셨죠? 지금 당장 전화기를 드세요. 상실은 당신만이 느낄 수 있는 게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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