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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화 Aug 13. 2024

같이 가실래요?

5. 솔직해져도 괜찮아요(7)

***


“저, 선생님.”


수업이 끝나자마자 일이 있다며 바쁘게 빠져나간 두 사람을 배웅하고 남은 윤소은이 머뭇거리다 최현욱을 불렀다. 


“네.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문득 이 비슷한 상황이 전에도 있었던 것을 떠올린 최현욱이 씩 웃으며 덧붙였다.


“혹시 지난번에 데려가신 코기 친구를 만들어주시려는 거면, 저야 환영이긴 한데 어쩐지 그건 아닐 것 같고요.”

“그건 아니고요…”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하고 있던 윤소은은 최현욱의 답잖은 너스레에 그만 픽 웃어버리고 말았다. 덕분에 수업 내내 마음에 담아두고 있던 말은 훨씬 쉽게 나왔다.


“저, 지금 병원 가보려고 하는데 혹시 같이 가시려나 싶어서 여쭤보려고요.”

“병원요? 아, 혹시.”


윤소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지랖 같기도 해서 고민을 좀 했는데…아무래도 한 번 가서 물어보고 싶어지네요. 혹시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을 수도 있고요.”


설령 그런 일이 있더라도 쉽사리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혹시라도 없으면 어쩌나 염려가 되더라는 말까지는 하지 않았다. 윤소은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금세 공감한 것처럼 최현욱이 열성적으로 말했다.


“그렇겠네요. 미처 생각을 못했어요. 근데 혹시라도 벌써 퇴원하셨으면요?”

“사실 이미 확인해 봤어요.”

“진우씨가 연락이 돼요?”


윤소은이 네, 하고 짧게 대답하더니 생각난 것처럼 뒤늦게 부연했다.


“오늘 병문안 잠깐 가겠다고 했거든요.”

“그러셨구나. 그럼 같이 가시죠.” 


병원으로 향하는 내내 윤소은은 말이 없었다. 무엇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다지 좋지 않은 기억이라도 있는 것인지 인상을 쓴 채 입술을 꼭 붙이고 있는 것이 어떻게 봐도 가벼운 대화를 나눌 만한 분위기로 보이지 않아 최현욱도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이진우에게 미리 병실 호수를 알아둔 것인지 윤소은은 마치 환자 가족처럼 자연스럽게 최현욱을 병실로 안내했다. 


“진우 씨.”


침대 옆에 바짝 붙어 앉아 앙상한 노인의 입에 죽을 떠 넣고 있던 이진우가 벌떡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교수님! 어, 선생님도…”

“안녕하세요, 할머님.” 


이진우의 인사를 눈웃음으로 받은 윤소은이 자그마한 노인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노인의 눈가에 어렸던 호기심이 잔주름을 타고 내려가 입가에서 잔잔한 미소로 맺혔다.


“안녕들 하시오. 바쁘신 분들이 노인네 아프다고 멀리까지 다 와주고. 내 미안해서 어쩐다.”

“아니에요, 겸사겸사 근처에 일이 있어서 온 거예요. 얼른 쾌차하셔야죠.”


비슷한 연배임에도 말문이 막혀 적절한 인사말을 건네지 못하고 있던 최현욱에 비해 윤소은은 낯선 노인과도 능숙하게 대화를 이어 갔다. 구석으로 조금 물러나 있던 이진우가 머쓱해하며 물었다.


“두 분 뭐 좀 드실래요? 사 오신 주스, 이거라도…”

“아니요, 괜찮아요.”

“그래두요.”

“정말 괜찮아요.”


윤소은이 손사래를 치며 이진우를 끌어다 앉혔다. 노인의 얼굴은 오랜 세월 누적된 삶의 고단함으로 인해 꺼주했으나 진실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 특유의 평온과 고요가 배어 있어 보는 사람에게 편안한 기분이 들게 했다. 


“우리 손자한테 얼핏 이야기는 들었는데. 두 분 다 선생님이시라지.”


이진우가 옆에서 볼멘 표정으로 선생님 아니고 교수님인데, 라고 중얼거리는 모습을 본 윤소은은 가까스로 터지려는 웃음을 참았다. 최현욱이 예에, 하고 대답하는 동안 노인은 뿌듯하게 말했다.


“그래도 내가 얘를 그럭저럭 키우긴 한 모양이오, 지 할미 아프다고 훌륭한 일 하시는 분들이 이렇게 찾아와도 주고, 덕분에 내 어깨가 다 으쓱하지 뭐요.” 

“그럭저럭 정도가 아니에요, 할머님. 진우 씨 아주 착하고 견실해요. 뭘 해도 얼마나 열심히 하는데요. 아는 분들이 다들 칭찬하세요. 너무 성실하고 매사 긍정적이라고요.”

“정말입니다.”


달변가가 된 듯 능청스레 이진우의 칭찬을 이어가는 윤소은 곁에서 겨우 그럴싸하게 맞장구 한 번 친 최현욱은 몹시 객쩍어졌다. 늘 차분하고 제 할 말만 똑 부러지게 하던 윤소은이 이렇게까지 나서서 과장스러울 정도로 누군가의 칭찬을 늘어놓는 모습이 신선했다. 그 자신이 부모가 되어본 적도, 누군가를 양육해 본 적도 없었지만 아이가 바르게 잘 컸다는 칭찬을 듣는 부모의 기분이 어떨지 순식간에 공감할 수 있을 정도였다. 아, 그제야 최현욱이 뒤늦게 감탄했다. 그저 예의상 한두 마디하고 끝내도 될 칭찬을 왜 저렇게 말을 바꾸어 가며 늘어지도록 거듭하는지 알 것 같아서였다. 아닌 게 아니라 과한 칭찬의 당사자가 된 이진우는 무안해서 어쩔 줄을 몰라했지만 노인의 얼굴은 발그레하게 홍조까지 도는 것이 그 어떤 자양강장제보다도 효과가 좋아 보였다.

그들은 그러고도 십여 분을 더 이런저런 잡담을 나눈 뒤에야 일어섰다. 이미 일어나 있는 이진우를 다그치며 노인이 신신당부를 남겼다.


“1층까지 꼭 내려갔다 와라. 거 엘레베타 앞에서 고개만 까딱거리고 오는 게 예의가 아니다.”

“네에.”


실컷 어린애 취급을 받은 것에 조금 빈정이 상했는지 이진우치고는 상당히 삐딱한 대답이었다. 윤소은과 최현욱은 잠시 시선을 마주쳤다가 다시 터지려는 웃음을 막느라 황급히 서로 다른 곳을 쳐다보아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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