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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화 Oct 16. 2024

이야기를 경험하는 장소

R. J. 팔라시오, 원더

안녕, ‘평범한 보통의 마음을 가진’ 어기.


너는 이렇게 말했지.


나는 내가 평범한 열 살 소년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물론, 나는 평범한 일들을 한다. 나는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자전거를 탄다. 야구를 한다. 엑스박스도 있다. 그런 것들은 나를 평범한 아이로 만들어 준다. 그렇다. 나는 평범하다고 느낀다. 마음속으로는. 그렇지만 평범한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다른 평범한 아이들이 꺄악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게 만들지 않는다. 어딜 가나 뚫어지게 쳐다보는 시선을 받지도 않는다.

만일 요술 램프를 찾아서 한 가지 소원을 빌 기회가 생긴다면,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평범한 얼굴을 갖게 해 달라고 빌겠다. 길거리에서 나를 보자마자 얼굴을 휙 돌려 버리는 사람들이 없게 해 달라고. 내 생각은 이렇다. 내가 평범하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 아무도 나를 평범하게 보지 않기 때문이다. -10쪽


하지만 너는 지극히 평범해. 딱 그 나이대의 아이들이 타인의 시선에 민감한 만큼 민감하고, 호의를 얻고 싶어 하지. 네가 말하는 평범이 그런 내면의 보편성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건 알지만, 어기. 그것도 어찌 보면 사물의 단면만을 보고 평가하는 ‘극히 보통의’ 아이다운 행동이거든.


친한 친구 중 한 사람이 그러더라. 너무 마음이 아파서 네 이야기를 읽을 수가 없대. 몇 번이고 읽으려고 노력했는데 도저히 볼 수가 없다고 했었지. 그때의 나는 조금 어리둥절했었어.


유달리 감정이입을 잘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알고, 지금의 나는 예전만큼 책 속 주인공들의 고난이나 고통에 힘겨워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지만, 못 읽을 정도로 힘든가? 그런데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어. 누군가에게는 이야기의 세계가 생경한 육지를 탐험하는 것과 같지만, 또 어떤 사람에게는 깊이를 모르는 물에 발을 담가보는 것과 같을지도 모르겠다고. 그러니까 내게는 그저 와본 적 없는 새로운 곳의 땅을 디디며 산책하는 것과 같았던 경험이, 그 친구에게는 살짝만 담가도 충분히 잠길 줄 알았던 물에 순식간에 훅 잠겨드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 아니었을까 싶었던 거지.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니 같은 책을 읽었더라도 소설적 경험이라 부를 만한 것이 과연 같은 효과를 낼 수 있을까 하는 데까지 궁금증이 미치는 거야.


궁극적으로는 그래서, 이야기를 읽는 것이 인간이 인간에 대한 연민을 조금이라도 키우는 데 과연 도움이 될까 하는 엄청나게 과격하고 심원한 질문이 떠오르더라.


나는 의사들이 말하는 방식을 좋아한다. 과학의 어감이 좋다. 이해되지 않는 말로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설명하는 방식이 마음에 든다. -177쪽


너의 말을 잠깐 빌릴게.


나는 작가들이 말하는 방식을 좋아해. 문학이 선사하는 것이 좋아. 누구나 두루 이해할 수 있는 보통의 감정을 극적으로 다루어 사람이란 결국 모두 비슷한 존재임을 드러내는 방식이 마음에 들어.


그런 의미에서 너와 너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들어낸 작가를 좋아해. 평범하지 않은 소재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통의 이야기를 써냈으니까. 전혀 어렵지 않은 문장으로. 너도 알겠지만, 그건 정말 어려운 일이거든.


세상엔 특별한 이유가 없는 악의란 게 존재해. 아마 아이들이 세상에 적응해 나가면서 배우기가 가장 어려운 것이, 수용하기 괴로운 것이 그게 아닐까 싶어. 나 역시도 겪어본 뒤에야 알게 됐거든. 굳이 애써 이해할 필요가 없지만, 그래도 분명히 존재하는 어떤 것- 그러니까 아까 말한 악의 같은 것-을 인정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고통스러운 과정이라는 걸. 그런 과정을 거쳐가며 작고 여린 마음을 가졌던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간다는 걸 겪으면서야 깨달았고, 그러면서 생각했던 것 같아. 어른이란 참 부조리한 존재라고.


네가 겪었던 일들을 생각해. 아마도 다른 아이들은 겪지 않았을 일들도 네겐 많이도 벌어졌겠지. 아무렴 365일이 할로윈이어서, 모두가 가면을 쓰고 등교했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소망이 일반적이기야 하겠어. 하지만, 네 누나의 남자친구가 생각했듯,


우리는 태어날 때 표를 구입한다. 좋은 표를 살지, 나쁜 표를 살지는 모두 무작위로 지정된다. 운에 맡길 뿐이다. (...) 그때 문득 기분 좋은 생각이 떠올라 마음을 위로해 준다. 아니야, 아니야. 완전히 무작위는 아니야. (...) 우주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방법으로 우주의 가장 연약한 창조물들을 보살펴 준다. 맹목적으로 크나큰 사랑을 베푸는 너의 부모님. 평범한 사람이 된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는 누나. 너의 일로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하는 걸걸한 목소리의 그 녀석. (...) 우주는 결국 모든 것을 공평하게 만들어 준다. 우주는 자신의 모든 새를 저버리지 않는다. -319쪽


당장은 전혀 와닿지 않겠지만, 정말로 그래. 세상은 정말로 그래. 그러니 어기, 네가 세상을 친절하게 대하기로 결심한 건 정말 잘한 거야. 브라운 선생님도 말씀하셨잖아,


만약 옳음과 친절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친절을 택하라. -86쪽  


라고.


너의 우주가 너를 저버리지 않았음을 현실로 느끼는 너를 볼 수 있어서 좋았어. 누군가는 그럴지도 몰라, 결국 이야기는 행복회로일 뿐이라고. 근데, 그러면 안 되는 걸까? 정말로 너무너무 괴로운 현실이라면, 잠시라도 그렇게 행복감을 느끼는 것도 썩 나쁘지는 않잖아. 안 그래? 역시 그렇다고 생각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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