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지 않게, 제육볶음
기나긴 연휴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선이 씨 진이 양 준이 군 안녕. 엄마는 벌써 낡고 지쳤어.
밥하고 치우는 일에 덧붙여 명절 추가 노동까지 감당하고 있는 엄마들에게도 연휴기간과 동일한 기간의 쉼을 달라. 아니 사실은 하루만 온전히 쉬게 해 줘도 눈물이 앞을 가릴지도.
여하간 정말이지 이만한 애증의 상대도 드물 것 같다. 한없이 밉고도 다정한 그 이름 밥상.
오늘은 조금 간단하게 가볼까. 왜냐면 너무 지치니까.
간단하지만 항상 맛있는 메뉴. 안타깝게도 돼지고기를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선이는 이 음식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소한 안타까움이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파나 양파 건더기를 건져 밥에 얹어 먹곤 하니까. 그러면서 항상 해주는 말이 조금 슬프게 들리긴 해. 이렇게 어설프게 맛만 봐도 이게 엄마의 장기인 걸 알겠는데, 내가 돼지고기를 싫어하는 게 참 아쉬워… 하는 그 말.
그러고 보면 자라면서 입맛이 여러 번 바뀐다는 말은 참 맞는 것 같아. 어릴 때 좋아하던 음식을 거들떠도 안 보게 되고, 반대로 손도 안 댔던 음식이 최애 메뉴가 되는 일은 곧잘 발생하니까.
엄마만 해도 어릴 때 새우만 보면 입가에 고인 침을 어쩔 줄 몰라했던 어린이가, 지금은 새우 냄새만 맡아도 올라오는 속을 진정하기 위해 물을 찾아야 하는 지경이 됐잖아(그 때문에 아빠가 엄마한테서 새우를 못 얻어먹어서 매우 유감스러워하는 것 같더라).
엄마도 가리는 음식이 있는 주제가 할 말은 아니지만 진짜 음식은 뭐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게 최고인 것 같아.
옛날 얘기를 하나 하자면, 외할머니도 입이 짧으신 편이라, 엄마는 열두 살이 될 때까지 탕수육을 못 먹어봤어. 그러다 열두 살에 같은 반 친구네 집에 숙제를 하러 갔던가 뭘 하러 갔던가는 기억이 안 나는데, 그 친구 어머니가 일본 분이셨거든.
당시로서는 아주 드문 국제커플이었지. 하지만 우리말을 아주 잘하셨는데, 점심으로 짜장면과 탕수육을 시켜주셨어. 처음 보는 음식에 약간 거부감을 느끼고 젓가락을 댈까 말까 고민하는데 그분이 그러시는 거야. 이게 얼마나 맛있는 음식인데 안 먹냐고. 안 먹어보면 후회할 거라고. 근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드는 거야. 외국인이 맛있다고 할 정도면 진짜 맛있는 게 아닐까? 그 궁금증은 지금까지도 선명한 맛의 기억으로 응답을 받았지.
그 경험이 나름 충격적이었던가 봐. 여전히 또렷하게 기억나는 걸 보면.
너희가 아주 어렸을 때, 자꾸 엄마가 좋아하는 식재료로 밥을 챙겨 먹이면서 그 기억을 몇 번 떠올린 적이 있었어. 엄마의 입맛이 너희가 경험할 수 있는 맛의 세계를 제한하게 되면 어떡하지, 하는 그런 두려움이 있었지.
그래서 의식적으로 노력을 했음에도 맛의 호불호가 강하게 생겨나는 걸 보면 그건 어쩌면 조금 불가항력적인 취향의 영역에 속해 있는 것이 아닐까 싶고. 선이가 제육볶음을 못 먹는 것 때문에 참 서설이 길어졌다.
그럼 엄마가 수세월에 걸쳐 실패만 하다 터득하게 된 제육볶음 비결이랄지 레시피랄지를 가르쳐 줄게.
정말이지 너무 허무할 정도여서 좀 속이 쓰리달까. 중요한 건 간장과 고춧가루(조금 많이 넉넉하게!)를 주재료로 쓰는 것. 이거거든. 식당에서 먹으면 나는 그 바짝 맵싸한 맛은 고추장이 아니라 고춧가루로 내는 거야.
그리고 포인트 하나 더. 단맛을 무엇으로 내느냐가 아주 중요한데 엄마에게 딱 하나를 고르라면 사과조청이야. 그치만 이건 대중적인 재료는 아니니까, 조금 시선을 돌려서 두 가지를 얘기해 줄게. 무난한 선택은 조청 아니면 설탕이겠지.
설탕을 넣을 때의 장점과 단점을 알려주자면, 설탕을 넣었을 때는 설탕이 열에 녹으면서 생기는 바삭한 탄맛(캐러멜화됐다고 하는 건데, 달고나 효과라고 하는 게 이해가 빠를려나)이 생겨. 장점…이라고 해야 하는지는 살짝 애매한데 그 옅은 탄맛이 매운맛과 어우러지면서 자극적인 맛이 생기거든. 그런데 단점은, 설탕을 이렇게 ‘바싹하게’ 볶아야 하는 고기 양념에 넣었을 때 불 조절을 잘못하면(그리고 불고기처럼 물기가 많이 생기는 재료를 넣은 게 아닐 때) 탄맛의 세기가 강해진다는 거지. 제육볶음에서 탄맛이 돈다, 그럼 필시 이 이유 때문일 공산이 커.
무난한 선택은 조청이긴 해. 일단 액상이기 때문에 양념 자체를 한번 크게 감싸서 무난한 조화를 이끌어내거든. 대신에 자극적인 맛을 좋아한다면 어딘가 살짝 밍숭맹숭하다, 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하지만 아주 무난한 조합이고 웬만해선 실패하기 힘든 조합이기도 하지.
다시 정리하자면 양조간장에 다진 마늘은 당연히 베이스로 들어가고, 거기에 간장의 1.5배 분량의 고춧가루와 조청(단 것은 항상 본래 짠맛을 담당하는 재료보다 적게), 그리고 참기름. 채소는 잡다하게 많이 넣기보다 깔끔하게 양파와 대파로만 맞춰주는 게 좋아.
설탕을 넣었다면 중불 정도로, 조청을 선택했다면 불을 조금 박력 있게 올려줘도 좋아. 얼마나 많은 양을 버무려뒀을지는 몰라도 10분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재료가 많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라서 정말 딱 30분이면 다 되는 요리야. 하지만 포만감도 만족감도 상상 이상으로 클걸.
몇 첩 반상까지 차려먹지 않아도 좋아.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렇게 느긋하지만은 않으니까. 그래도 내 손으로 음식 하나 마련해서 한 끼니 채울 수 있는 마음의 여유는 항상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삶을 살게 되기를 항상 바라고 있어. 그럼, 오늘도 맛있는 한 끼 잘 차려먹길 바라.
덧. 진이랑 준이 찾아주지 않았다고 서운해 말길. 너희는 눈을 빛내면서 알아서 달려들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