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보다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갈
내게 그럴 용기가 아직, 있다
지난 글에서 어떤 다큐에서 보여준 바다에 대한 이야기를 아주 짧게 했었다. 바다의 가장 깊은 곳보다 더 깊은 곳이 있다며 들어가더니 나를 두렵고 무서운 기분이 들게 했다고. 하여 누군가를 아주 깊이 사랑하거나 혹은 바다보다 더 깊은 일을 경험한 사람들은 일상을 평범하게 살아낼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4월의 마지막 주를 보내는데 그 깊고도 깊은 바다가 계속 떠올랐고 엉뚱한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
엉뚱한 생각 1. 배우라는 직업
어떤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있자면 배우가 되고 싶을 때가 있다. 배우라는 직업은 살면서 여러 명 혹은 수십 명의 인물들로 살아볼 기회를 갖게 된다. 그런데 배우가 연기해내는 여러 인물들은 결국 그 배우, 단 한 명이 펼쳐 보이는 것이다. 배우로 살아보지 않았지만 한 사람이 다양한 인물들의 삶을 살아본다는 것이 바다보다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일이라 생각되었다. 어떨까? 무섭고 두렵고 외롭지 않을까? 그 배우는 다시 진짜 자신의 일상을 이어나가기 위해 수면 위로 올라와야 한다. 올라와서 고르지 못했던 호흡에서 평범한 숨을 내쉬어야 한다. 배우의 인생을 두고 보자면 본인 스스로가 깊어지고 농익어 더 좋은 연기를 펼쳐낼 테다. 다만 그 깊은 곳을 다녀와 지친 몸과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데에 또 다른 에너지가 필요할 것이다.
엉뚱한 생각 2. 사랑을 할 때에 사랑을 더 많이 주는 쪽에 선 사람
어떤 관계의 사랑이든 늘 더 많이 주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 친구의 우정을 보았을 때, 상대방을 좀 더 좋아하는 쪽이 있어 그 우정이 점점 두터워진다. 연인관계에서도 늘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이 있고,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은 대부분 두말할 나위 없다. 사랑을 할 때 사랑을 더 많이 주는 쪽에 선 사람은 바다보다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일을 해낸다. 늘 사랑을 받기만 했던 사람은 알 수 없는 어떤 심연을 그 반대에 서 있는 사람은 안다. 그 사람을 사랑해서 화산이 끊임없이 폭발하고 커다란 바위와 부서진 잔해들이 뒤섞여 물속을 돌아다니는 그곳으로 스스로 들어가고야 마는 어떤 용기와 인내가 있다. 그래서 사랑을 하고 나면 어떤 이는 더 단단해지고 깊어지고 외면이 변하기도 한다.
누구나 자신의 인생에서 한 번쯤은 그 깊고 깊은 곳으로 내려간다. 스스로 내려가 보길 자처할 수도, 혹은 어쩔 수 없이 내려가게 될지도 모른다. 나의 경우엔 내 의지로 수영해서 깊이깊이 들어갔다. 그리고 이렇게 다시 올라와서 일상을 살아간다. 바다보다 더 깊은 곳에서 나의 애썼던 시간들이 소중하다. 어땔 때엔 그 시간들이 나를 살게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시간이 걸렸지만 다행히도 잘 올라왔다는 것에, 그래서 아주 조금 넓어지고 아주 조금 깊어졌다는 것에 감사하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을 4월 마지막 주에 깨달았다. 다시 한번 더 바다보다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갈 용기가, 에너지가 내게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을. 한 아이의 엄마로서, 그리고 그저 나로서 이런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만으로도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할 중요한 계기가 되어주리라. 아직도 엉뚱한 생각을 잘하고 상상하기를 멈추지 않는 나를 확인했다는 것에 작은 기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