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끌어안지 못해도 좋다. 일단 해보는 사람이 되자. 작은 용기가 열어주는 다양한 세상을 누리자. 어설프고 자잘한 시작이 넘치는 인생을 살자.
- 2020.9.28 블로그에 쓴 글
"광현씨, 이거 한 번 지원해보는 거 어때?"
2019년 여름, 사내 칼럼니스트를 뽑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전 그룹사 직원들을 대상으로 도움이 될 정보나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글을 쓰는 활동이었다. 모집 메일을 받고 살짝 관심이 가던 참이었는데, 팀장님이 먼저 옆구리를 찔러주셔서 못 이기는 척 지원했다.
회사에서 재무 담당자로 일하고 있다. 여태껏 해 본 글쓰기라곤 회사에서 쓰는 메일과 가끔 SNS에 끄적이는 일상 글 정도가 전부였다. 워낙 쫄보라 평소에 그런 일이 잘 없는데, 이번엔 왠지 그냥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기당 한 편의 글을 기고하는 활동을 2년 동안 했다. 주로 라이프스타일, 직장생활이 주제였다.
담당부서에 칼럼을 보내면 그룹 내 수십 개 회사의 직원들이 보는 홈페이지 메인화면에 걸렸다. 기본 수천 명, 많게는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내 글을 읽었다. 그때는 그 숫자가 얼마나 큰 건지 알지 못했다.
적지 않은 댓글과 라이크가 달렸다. 일면식 없는 사람들로부터 좋은 글을 써줘서 고맙다는 연락을 받기도 했다. 보통의 인생을 살고 있는 나의 경험과 생각도 누군가에게 영감과 감동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때 처음 알았다.
결론적으로 칼럼니스트 활동을 하기로 한 건 인생에서 가장 잘 한 선택 중 하나가 되었다. 몰랐던 재능을 발견했고, 내 생각을 녹여낸 글로 다른 사람들과 교감하는 일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알았다. 서른이 넘어서야 처음 해본 일이었지만, 앞으로는 평생 글을 쓰면서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우아한형제들의 CBO인 마케터 장인성 님의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이 분은 각종 마라톤 대회에 참가할 정도로 러닝 마니아인데, 원래는 땀 흘리는 걸 정말 싫어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우연히 달리기에 재미를 붙이게 되면서 '하니까 되네? 나도 할 수 있네?'라는 생각을 갖게 됐고, 그 계기로 인생이 정말 많이 바뀌었다고 했다.
'해보는 사람'이 되는 게 진짜 멋진 일인 것 같아요. 그게 제 인생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되는 사람으로 바꿨던 것 같아요.
나에게는 글쓰기가 그랬다. 때가 되면 돌아오는 비슷한 일들을 매년 반복하면서, 점점 회사 밖에서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글쓰기는 그런 나도 여전히 무언가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분명하게 말해주었다.
나 역시 '해보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칼럼니스트 활동이 끝난 뒤에는 브런치 작가에 지원했다. 별안간 조직문화 스터디를 해보겠다며 새벽을 깨워 혼자 책을 읽으며 글을 썼고, 그때 쓴 글들이 계기가 되어서 몇몇 커뮤니티와 미디어의 필진으로 활동할 기회를 얻었다.
내 스스로 글쓰기를 나의 '일'로 정의했고, 그만큼 시간을 투자했다. 주변 사람들도 나를 글 쓰는 사람으로 인식해주기 시작했다. 그동안 막연하게 찾아 헤매던 '직업'이라는 실타래의 한쪽 끝을 기어이 손에 쥐게 된 듯한 기분이었다.
월급쟁이 생활도 벌써 9년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나는 그렇게 나의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