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이야기

엄마, 나의 우주였던 존재

by 언젠가

젊은 시절의 엄마는 늘 바빴다. 엄만 부지런했다.

아직 어린 동생이 엄마에게 딸려있어 본격적으로 일을 할 수 없던 유년기 어린 시절의 내 기억에는 엄마는 늘 아기를 보면서도 손에는 봉투 붙이기 같은 부업거리가 들려 있었다. 밤에는 코바늘 뜨기를 해서 자식들의 겨울 털조끼를 뜨거나 이불을 직접 떠줬다. 엄마가 장미 문양을 넣어서 떴던 갈색 털에 빨간 장미가 있던 울 블랭킷은 내 애착이불이었다. 그때 찍은 사진을 보면 나는 어디서나 그걸 두르고 있었다. 우리가 유치원을 비롯하여 기관에 다니기 시작할 때는 본격적으로 가게를 시작하셨다.


맞벌이를 하면서도 아빠와 우리 삼 남매의 세끼를 직접 해먹이셨다. 파나 상추 같은 채소들은 마당 뒤편의 한 뼘의 땅에서 직접 키워서 따먹였다. 우리의 학창 시절에는 아홉 개의 도시락을 쌌다. 우리의 소풍날에는 새벽같이 일어나서 김밥을 스무 줄씩 말고 시장에서 통닭구이를 주문했다 찾아왔다. 빠릿빠릿한 엄마 닮아 빠릿빠릿한 언니나 나는 학창 시절에 반장을 도맡아 하곤 해서 엄마는 선생님들 도시락도 챙겨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멀리 김포에서 서울로 통학하던 아이들 이였지만 서울아이들보다 더 공부 잘하고 반장을 하는 아이들이라는 게 엄마의 자부심이라 엄마는 선생님의 도시락은 무리해서라도 으드드하게 들려 보내주고 싶어 하셨다.




내가 살아보니 엄마는 어떻게 그렇게 살았어할 만큼 엄마는 초인적인 힘으로 부지런하고 살뜰하게 우리를 키워냈다.

학교에서 동시에 공개수업을 하면 언니의 교실에 갔다가 동생에게 가야 하는 걸 나는 이해했다. 언니는 나보다 더 중요한 정보를 얻어야 하는 학년이 더 높은 수험생이었고 나보다 어린 동생은 어려서 손이 많이 가는 입장이기 때문에 엄마에게 나의 수업까지 들여다보며 내 발표하는 모습까지 보라고 요구할 수 없었다. 늘 바쁘게 동동 거리는 엄마에게 나까지 투정을 부려서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한 번도 엄마에게 무언가를 요구해 본 적이 없다.

초등학교 5학년때 나는 전교 부회장으로 당선되었는데 엄마에게 소식을 전하자 엄마는 약간 걱정되는 표정으로 어떡하지? 하고 대답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엄마에게 학교에 와서 부회장 엄마로서 해야 하는 의전과 의례를 요구하지 않았다. 어린 나도 알았던 것이다. 엄마는 자식의 학교에 트위드 투피스를 입고 나타나 한껏 치맛바람을 일으킬 시간도 돈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내야 했던 사람였다.

그런 건 팔자 좋은 여편네들이 하릴없이 하는 것이라며 비웃던 사람였다. 엄마는 그런 아줌마들을 경멸했다. 그리고 아무리 너희들이 학교에 와서 큰소리쳐봐라 내 자식이 더 똑똑하지 하며 만족하셨다. 지금은 안다. 엄마는 진주목걸이를 하고 트위드를 입고 자식의 학교에 나가 치마를 휘두를 수 있는 사람이었고 누구보다 그걸 원했지만 그렇게 살 수 없었기에 그저 그렇게 비웃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엄마에게 와달라고 징징 울었던 건 유치원에서 딸기밭을 갈 때였다. 그때 유치원 소풍은 엄마들이 동반했는데 엄마는 갈 수 없다 했다. 나는 다른 친구들은 엄마가 오는데 나만 엄마가 없다면 나도 딸기밭 안 간다고 울었다. 결국 혼쭐이 나고 등짝도 몇 대 맞고 혼자 딸기밭을 가긴 했지만 그날 찍은 사진을 보면 나는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제일 오른쪽 꽃무늬 원피스가 유년기의 나. 모두 웃는데 내 표정은 침울하다.


엄마를 너무 사랑하지만 한 번도 충분하고 넘치게 받아보지 못해서 늘 엄마가 그리웠던 유년기 시절. 바쁜 엄마를 충분하고 온전하게 독차지할 수 없던 시절. 엄마는 항상 나에게 힘 한번 안 들게 하는 착한 딸이라고 했는데 나는 두 살 때 엄마를 동생에게 물려준 이후부터 엄마품이 그리웠지만 한 번도 엄마에게 투정을 부릴 수 없었다.

나는 그저 빨리 철들고 착하고 좋은 딸이 돼서 엄마의 짐을 나누고 싶었다. 엄마는 어떻게 그렇게 살았을까? 지금 두 아이를 키우는 나는 그때 엄마를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하지만 소풍때도 참관수업때도 엄마는 오지않는걸 알지만 끝까지 혹시나 하고 복도창문을 두리번 거리던 그때의 나를 떠올리면 아직도 아리고 아프다. 반장을 해도 전교부회장을 해도 칭찬한번 못받았다. 오히려 학교에가서 회장 학부모 노릇하지 못하니 니가 더 알아서 잘해야 한다며 바쁜데 귀찮은 짐하나 늘었다는 티를 숨기지 않은 엄마를 그래도 사랑하며 조그마한 애정을 갈구했던 그때의 나를 생각하면 더욱 눈물난다.


엄마는 지친 하루의 마무리로 다음날 필요한 대파를 따와서 다듬어 썰어 냉장고에 넣는 작업을 했는데 그 작업을 마치고 나면 식탁에 앉아서 숙제를 하거나 엄마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내 뺨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때 엄마의 손에서 희미하게 나는 대파의 냄새가 나는 좋았다. 엄마에게서 풍기는 생활의 냄새를 나는 그 어떤 향수보다 좋아했다.


이렇게 애틋하던 엄마와 멀어지게 된 건 엄마가 탐탁하지 않아 하는 결혼을 하고 다른 도시로 이사하고 난 이후부터다. 아니 사실은 그 이전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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