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전, 예비사위였던 남편이 이미자 콘서트를 예약했었다. 워커힐 호텔 디너콘서트 금요일밤 7시표. 나름 어렵게 비싸게 예약해서 남편과 나는 금요일 반차를 내고 출근했던 강남에서 다시 부리나케 김포로 달려가 부모님을 태워 모시고 광진구의 호텔까지 모시고 갔다가, 디너 콘서트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모시고 오자는 계획을 세웠다. 나와 남편은 부모님의 그 시간을 위해 두달전 콘서트 티켓 오픈되자마자 거금을 들여 예매를 하고 하루에 서울의 남쪽 끝에서 경기도의 북쪽 끝까지 총 여섯 시간을 운전했다. 아빠는 자식이 기획한 이미자의 노래와 워커힐의 디너에 만족하셨을까? 아니 아니. 아빠는 매우 불만족하셨다. 아빠는 어둡고 조용하고 한적한 언제나와 똑같은 김포에서의 금요일 저녁시간을 보내는게 좋으셨다. 엄마가 해주는 저녁을 드시고 조용히 티비를 보다가 잠드시는 저녁.
아빠는 금요일 저녁 서울의 복잡한 도로를 참을 수 없고, 복잡하고 번쩍거리고 콧대높은 워커힐이 싫으신 분이셨다. 나에게 다시는 이런거 하지 말라하셨다. 엄마는, 늘 소녀같고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어하셨고 모험을 떠나보고 싶었던 분이지만 외출을 싫어하시던 아빠,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하시던 아빠 ,그 어느 관광명소를 모시고 가도 그 어느 산해진미를 보셔도 그냥 내 집에서 엄마가 해주는 밥이 제일 좋으신 아빠를 잘 알고 계시기에 그렇게 좋아하던 이미자가 내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맛있는 워커힐 스테이크가 서빙되는 디너 타임동안 지나치게 팬시하고 지나치게 사람이 많은 곳에 왔다고 심기가 불편해 화를 내던 아빠의 눈치를 보느라 하나도 즐기지 못하셨다. 그날 엄마는 아빠 눈치만 보며 전전긍긍하시다 결국 잔뜩 체하셔서 녹초가 되버리셨다.
아무리 좋은 동백아가씨도 내 마음이 편해야 한다. 김포가 아니면 그 어느곳을 가도 불편해 하시는 아빠와 함께 하면 엄마는 마치 돌 전의 아기를 데리고 괌에 가보려고 비행기를 탄 초보 부모들 처럼 안절 부절하셨다.
그럴땐 괌이 아무리 좋아도 갓난아기를 데리고는 여행을 하는게 아니다 라는 조언을 받아 들여야지 별 방법이 있나? 그래서 엄마는 평생 아빠가 변하시기를 기다렸지만 아빠는 변하시지 않았다. 결국 괌에 가는건 엄마의 팔자가 아니다. 괌을 포기해야지 그 비행기에 있는 모든 승객들까지 불편하게 하면서 살 수는 없지 않은가?
나는 재밌고 즐겁고 새로운 것을 보면 엄마가 생각나서 모시고 싶다. 하지만 엄마는 그런곳에 아빠를 모시지 않고 딸과 함께하면 죄책감이 드는 사람이다. 아빠와 함께해야 엄마가 기쁜데 아빠는 새롭고 즐겁고 재밌는 곳에 가면 늘 불편해 하고 힘들어 하고 결국엔 분통을 터트린다. 아빠는 자신이 잘 알고 콘트롤 할 수 있는 장소나 사람을 벗어나면 힘든 사람이란걸 이제는 안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늘 아빠의 뜻에 따르게 된다. 떠나지 않고 잘 알고 익숙하고 안전한 곳에 머무르는것.
엄마는 사실 김포가 발전하고 신도시가 되던 시점부터 아빠의 농지를 팔아 이런저런 부동산 투자나 상급지 이동 같은 계획을 짜곤 하셨지만 모두 땅 주인이었던 아빠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아빠의 개념은 아직까지도 땅은 사고 파는 게 아니고 쥐고 있다 물려주는 것이다. 우리도 땅을 밑천으로 어떤 시도나 도전을 해서 자식들을 힘들게 통학시키며 주변에서 사는게 아니라 핵심에서 살고 싶다는 엄마의 욕망은 번번히 좌절되었다. 아빠는 농부도 아니셨는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시대의 남부 목화밭 주인처럼 내가 가진 땅을 가지고 그 어떤 시도나 계획을 하는게 못마땅 하신 분이셨다.
엄마가 평생 일을 하시며 우리를 키웠다. 벌이가 많던 적든 우리는 땅에서 나오는 쌀로 밥만 먹고 자랐다. 부모의 아비투스에 따라서 세 자녀도 큰 돈드는일 없이 공교육과정, 장학금, 대학 졸업후 바로 취업루트를 탔고 그냥 자기가 모은돈 모아 결혼도 무난히 해서 아빠의 땅을 팔아서 현금으로 바꿔야 할 일은 없었다.
우리 식구들의 아비투스는 그냥 평범하고 근근하게 그리고 배우자도 나에게 맞는 그만큼씩만. 자신에게 주어진 아비투스를 뛰어넘는 짓 따위를 하는건 죄악이라는 믿음.
김포 토박이자 원주민인 아빠의 친구분들 중에는 신도시 개발 붐을 타고 땅이 수용돼서 거액의 보상금을 받아서 진작부터 자산가의 반열에 오르신 분들도 계시고, 거액의 보상금을 일찍 자녀들에게 나눠줬는데 자녀들이 자신의 능력으로 생을 개척하지 못하고 부모의 보상금만 쓰며 살아 결국 늙은 부모가 늙어가는 자녀를 일으켜 세워야 하는 경험을 가진 분들도 계시고 수용된 토지의 보상금으로 잘 알지 못하는 분야에 투자했다가 실패한 분들도 계신다. 그래서 아빠는 더더욱 쌀이 나오는 땅은 쌀을 파먹게 그대로 두어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계신다. 땅은 팔아서 현금으로 변하는 순간 그 현금은 금방 사라져 버릴 것이라는 두려움과 함께.
평생을 아빠의 신념에 맞춰 근검절약하고 맞벌이하며 삼 남매를 교육시킨 엄마, 학창 시절 내내 더 나은 배움을 위해 두 시간 멀미 나는 버스를 타고 다니며 공부하여 취업 잘되는 과, 좋은 대학을 가서 취업하고, 어려운 공무원 시험, 국가고시에 합격하기도 하고 다들 결혼해서 일가를 이루며, 주변에서 중심으로 향해가는 삶을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 부모에게 기대지 않아도 될 만큼 삶을 개척해 온 우리 삼 남매.
서울이 중심이라면 김포는 주변이라는 생각을 늘 했다. 나는 늘 주변에서 중심을 향해 나가는 인생을 살면서 지쳐버렸다. 중심에 속하고 싶었지만 한번도 속해보지 못했다. 서울시민이 되고자 하는 내 노력은 늘 실패했다. 조용하고 변화를 싫어하고 어둡고 고집스러운 아빠. 마치 아빠와 같은 김포를 벗어나려고 많은 시도를 했지만 어느순간 근원적인 질문이 생겼다.
어디가 중심이고 어디가 주변인 것인가?
뭐가 중심인것인가?
반짝이는 강남의 불빛이 중심인것인가? 어둡고 조용한 김포의 논은 중심이 되면 안되는 것인가?
김포가 서울로 편입된다 들썩이는 지금, 김포 토박이 아빠 땅의 은총을 기대해도 될까?
변화를 싫어하고 거부하며 변화하는 세상을 따라가지 못해 가진걸 잃을까봐 평생 두려워하던 우리아빠는 어쩌면 지금의 개발과 변화의 최대 수해자가 될수도있다.
드디어 김포라는 아비투스에서 벗어나 서울 시민이 될 수 있을까? 사실 이제는 그 자체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중심과 주변, 더 나은 계급, 배경과 전경따위는 이제 살아보니 아무것도 아니다.
내 삶의 행복은 어디론가 나아가는데서 찾는게 아니라는것.
아무데도 가지 않고 어디로도 떠나지 않고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고 자신만의 우주에서 평생 살아온 아빠는 진정으로 행복하고 충만한 노후를 맞고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