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이야기

나의 이상하고 당연한 사랑, 아빠

by 언젠가

아빠는 땡보다.

아빠는 절대로 화살을 본인에게 쏘지 않는다.

아빠는 그래서 행복한 삶을 사셨다. 아빠는 인생의 중요한 결정의 순간엔 가족의 복지보다는 아빠의 니드가 일 순위로 고려되었다. 아빠가 최우선되는 선택은 대부분 아무것도 하지 않는것. 본인뿐 아니라 자식도 부인도 돈과 에너지가 드는 그 무엇도 하지않는거. 그게 제일 중요했다. 그래도 돌아보면 아빠의 니드가 일 순위로 되었던 모든 결정은 나쁘지 않은 결말을 맺었다. 그 과정에서 엄마의 무한한 희생과 순종이 있었겠지만 삼 남매도 아빠도 무탈하고 편안하게 살아왔다.


나는 이제 어른이다. 왜 내가 떠내려가는 것을 보고도 바로 바다로 뛰어들지 않았어? 왜 그때 파도를 헤치고 영웅처럼 달려와 나를 건져내지 않았어 아빠하고 소리 지를 아이는 없다.

아빠에겐 내가 중요한 존재가 아니였다, 나는 구조받지 못했다 하는 체념과 상처로 얼룩져 무의식 저 깊은 곳에 애써 지웠던 아픔이 사실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 기억이 왜곡되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제는

나는 있는 그대로 아빠라는 사람을 바라볼 수 있다. 아빠에게 버림 받았다고 여겨서 상처입은 기억을 애써 외면해 버리고 지워버린 12살의 소녀가 아니다. 기억을 떠올리고 돌아보고 직면하여 그것을 마침내 극복해 낼 수 있는 40대의 성인이다.


이젠 아빠의 자식이 아닌 사람대 사람으로 아빠를 관찰할 수 있다.

우리 아빠는 자신의 안위와 행복이 일 순위인 사람이다. 그 사람은 파도를 헤치기 전에 준비운동부터 하고자 한다. 영웅이 되려고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

자식보다 자신을 더 우선순위에 두는 사람. 자식의 입장에서는 안타깝지만 나는 이제 아빠의 자식이라기보다는 독립된 성인이다. 아빠가 자식보다 자신을 더 위하고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더라도 어쩔 수 없다. 나는 이제 그렇더라도 아빠를 이해할 수 있고 아빠 같은 사람도 있다는 걸 인정하며 그 관계에서 아쉬움과 아픔이 있었더라도 극복할 수 있다.

어쩌겠는가? 나에게 살과 피와 생명을 준 사람. 나를 키워내고 나를 존재하게 해 준 부모.

둥지를 떠나 독립해서 삶을 꾸려보니 산다는 게 너무나 쓰고 힘들었다.

산다는게 너무 어려운 것이구나 라는 깨달음을 얻어보니 자식을 그렇게 둥지에서 키워 보듬어 주었 다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알게 되었다.

그런 부모에게 왜 나를 더 사랑해 주지 않았어 왜 나를 우선순위에 두지 않았어라고 소리치기엔 나는 너무 많은 걸 알고 있다. 세상은 그런게 아니다. 관계란 그렇게 정의 할 수 없다. 정리되고 끊어지지 않는 감정들 혹은 구체화 할 수 없는 느낌만으로 상처 받기엔 이젠 너무 단단하다.


아빠의 가장 큰 트로피는 엄마다. 아빠가 아빠의 일 순위에 자기 자신을 놓고 살아갈 수 있게 평생을 자신을 이 순위에 두고 살아오셨기 때문이다.


엄마는 가장 친밀하고 격의 없는 딸에게 그런 사람의 배우자로 사는 생의 어려움과 불행을 토로하곤 했는데 나는 수많은 시간을 들어주고 고민해 주고 분노하고 그럼 엄마 이혼할래? 같은 씨도 안 먹히는 소리를 내뱉기도 했지만 늘 엄마의 결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맞춰줘야지 어떡하냐 네 아빠 불쌍한 사람이다. 였다.


내가 어린 시절에는 그런 엄마가 안타깝고 불쌍하고 그래서 아빠를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아빠가 자식들을 우선순위에 두지 않는다는 사실이 문제가 아니고 아빠가 엄마를 불행하게 하는게 문제였다고 여겼다. 돌아보니 그건 아빠의 문제가 아니라 엄마의 문제였다. 나는 아빠의 자식이라 사실 아빠를 원망하려면 아빠는 왜 자식인 나를 자기 자신보다 더 사랑 안 해줘?라는 근원적인 물음을 가지고 원망해야 하는데 엄마는 나에게

아빠는 왜 엄마를 더 사랑 안 해?라고 원망을 하게 만들었다. 아 너무나 엮이고 섞이고 얽힌 관계. 가장 사랑을 줘야하는 존재인 부인에게 사랑을 줄줄 모른 아빠. 문제의 원인을 모르는 엄마. 불행을 선택하고 받아들이는 엄마와 그 불행을 더 약하고 만만한 존재에게 전이시켜 그걸 온전히 흡수한 딸.


그런데 나는 이제 어른이다. 부모님의 관계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다고 느껴지더라도 그건 그분들의 역동이고 그 두 분이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그런 불균형적인 관계지만 그것이 오십 년을 살아온 삶의 방식이고 어쩌면 그것이 엄마만의 사랑일 지도 모른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러므로 엄마의 시선과 관점으로 아빠를 바라보는 것에서 벗어나 아빠를 자식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연습을 부단히 한다. 엄마를 사랑하는 엄마의 딸로 엄마가 살아온 삶을 생각하면 속상하다. 그래서 엄마의 입장으로 아빠를 바라보려 했다. 나도 모르게 엄마가 나에게 씌운 프레임에 맞춰 아빠를 생각하고 바라봤다. 지금 생각하면 그건 엄마의 프레임이지 않은가? 엄마의 격의 없는 딸이기 전에 나는 아빠의 딸이기도 하다. 엄마의 남편이기 전에 나에게 아빠인 존재에게 향하는 끝없는 원망과 갈망을 듣는 나는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엄마는 인정받고 싶어했다. 그래서 평생을 자신을 희생했다. 그런데 진정 스스로를 인정하지 않으셨다. 엄마는 내가 아는 가장 훌륭한 인격을 가지고 가장 따스하고 가장 강인한 사람인데, 엄마만 그걸 몰랐다.


엄마는 왜 아빠한테 당하면서 살아?하며 엄마의 원망을 공고화 하고 엄마 편에 서는 입장에서 벗어나서 객관적인 노력을 하게 된 건 사실 얼마되지 않는다. 어느 순간 엄마 에게는 엄마의 원망과 한의 공고화 보다는 객관적인 관점을 제시하는 게 더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상하게 엄마의 한을 공고화 하기 위해 아빠에게 화를 내면 엄마는 또 자신이 자식을 잘못키웠다며 한탄하고 서운해 한다. 그래서 나는 많은 노력끝에 그냥 두분에게서 일어나는 일은 두분이 알아서 하는 걸로 하자 하고 결심했다.


어느 순간 난 알았다. 엄마는 아빠를 사랑하는구나, 이게 사랑이 아니면 무엇인가? 딸이 떠내려가는데 남편이 당장 바다에 뛰어들지 않는 모습을 보고도 용서하는 것, 타인에게 받은 은혜를 충분히 보상하지 않아서 내내 마음에 걸리게 했지만 또 잊고 살아가는 것, 그런 게 정말 사랑이 아니면 세상에 사랑이 무엇이란 말인가?


기본적으로 아빠는 자신을 우선하는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사랑을 못 받은 건 아니라는 걸 이제는 조금은 안다. 또 엄마는 자기 자신보다 자식이나 남편처럼 본인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는 존재를 더 소중히 여기는 사람인데, 엄마처럼 자기보다 사랑하는 존재를 위해 살아줄 수 있는 사람을 배우자를 만나지 못하고 그저 자신을 가장 중요시 여기는 아빠를 만나 평생을 살았으니 엄마가 겪었을 고통도 안다. 그렇지만 아빠가 엄마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이제는 나도 살아보니 알 수 있다. 아빠는 스스로를 가장 사랑했을 뿐이지 엄마를 사랑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나 자신보다 내가 맺은 의미 있는 타인을 더 우선시하는 성향의 사람이 자신을 가장 우선시 두는 사람을 만나 평생 그 사람의 인정과 사랑을 갈구하는 데서 오는 불균형성이란! 그 불균형을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존재인 친정부모님의 역동에서 발견한 게 안타깝고 아프지만, 그저 남의 인정과 사랑에 더 의미를 두는 사람에게 스스로를 사랑해라, 당신 자신을 일 순위에 두라 라는 조언뿐이 할 수 없다.


이건 나에게도 너무나 중요한 게 나는 엄마와 같은 성향이고 엄마의 가르침을 따른 사람이다. 나는 나보다 남편 자식 부모를 더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고 배웠다. 그리고 그게 정말 사랑이라고 배웠다. 그런데 불행히도 내 남편뿐만 아니라 내 자식, 시부모, 친정 아빠까지 모두 본인을 가장 우선시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내가 더 잘하면 된다. 내가 더 나를 갈아내면 나도 사랑받을 것이다 하며 그들의 사랑을 갈구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이런 이런. 내가 나를 우선순위에 두고 나를 제일 사랑하다 보면 사실 그 누구의 사랑도 갈구할 필요가 없다는 걸. 나를 갈다 갈다 소멸되기 직전에 그 사실을 알았지만 그래도 너무 늦게 않게 알게 되어서 다행이다.


나는 아빠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늘 흐뭇한 미소가 있었다는 걸 기억한다. 결혼 전까지는 친정에서 통학과 통근을 해야 하느라 늘 새벽에 나가고 밤늦게 들어왔지만 나가고 들어올 때 아빠에게 인사하는 걸 잊지 않았다. 내가 다가가면 잘 웃지 않는 아빠의 입꼬리는 항상 올라갔다. 내 첫 번째 경차는 작고 귀여운 빨간색 차였다. 운전 자체가 위험하니까 하지 말라는 사람이었는데 딸에게 차가 필요하다는 걸 이해한 순간 아빠는 그걸 계약해서 끌고 와서 주차장에 주차해 놓으시고 퇴근한 나를 보고 아빠 따라오라고 했다.


주차장에 주차된 그 차를 처음 본 순간 너무 귀엽고 기뻐서 웃는 내 손을 잡고 주차하는 법을 가르쳐주셨다. 주말에는 스펀지에 거품을 내서 빨간색이 반짝반짝 빛나도록 세차해 주셨다. 아빠는 사람이 많은 곳을 싫어하셨다. 의미 있는 이웃이나 가족들의 관혼상제 같은 일에 참석하는 일도 달가워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내가 성인이 되고부터는 어느 순간부터 꼭 참석해야 하는 중요한 결혼식에 엄마가 아닌 나와 참석하셨다. 나와 함께 하면 사람 만나기 싫어서 투덜거리다 결국엔 폭발해서 엄마를 안절부절못하게 하시던 때와는 다르게 기꺼이 오랜만에 보는 일가친척들의 의례적인 인사들을 잘 참아내셨다. 내 팔짱을 끼고 모임에 나가서 오랜만에 본 이웃들이나 일가친척들이 나를 보고 이렇게 예쁘게 잘 컸다며 칭찬하시는 모습을 보고 아빠는 싱글벙글 웃었던 기억이 나는 거 보면 아빠도 은근히 즐기셨던 것 같다.


결혼하고 애들 낳고 혹독한 시집살이 하며 남편 건사하고 사느라 예쁘고 반짝이던 딸이 시드는 걸 보고 안타까워하시며 이 돈은 남편이나 애들한테 쓰지 말고 너 샤넬 사라 하며 봉투를 주시기도 했다. 아빠의 당부를 나는 지키지 못했다. 아빠에게 받은 용돈은 내 샤넬보다 더 긴급한 곳에 쓰이고 말았다. 결국 자신을 가장 우선시하는 아빠가 알면 바보라고 혀를 끌끌 찰지도 모른다.


땡보 아빠. 이제야 나는 아빠를 바로 본다. 이제야 나는 열두세 살의 기억에서 벗어나 현실을 직면한다. 어쩌면 왜곡일지도 모를 아팠지만 이제는 바로 바라볼 수 있던 기억. 그리고 그 모든 걸 극복한다.

그래서 나도 땡보로 살기로 결심한다.

고맙습니다. 아빠.



keyword
이전 03화김포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