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이야기

나의 이상한 사랑, 아빠

by 언젠가

인간의 무의식의 가장 큰 기능은 보호의 기능이 아닐까?

너무나 두렵고 힘들고 무서운 기억을 지워버리는 것

해리.

고마운 방어기제.


열두세 살 때 나는 가족여행을 갔다가 파도에 휩쓸린 적이 있다. 서해안에 우리 가족이 늘 가던 해수욕장이 있다. 낙조가 아주 아름다운 곳. 그곳에서 열두 살의 나는 파도에 둥둥 떠있다 발이 닿지 않는 걸 알고 공포에 질려 울며 속절없이 파도에 쓸려가고 있었다. 멀리 모래사장에 서있던 아빠가 보였다. 아빠는 쓸려가는 나를 봤을까?

아빠는 바다로 무작정 뛰어들어 선뜻 다가오지 않고 찬찬히 가슴에 물을 끼얹고 계셨다. 준비운동처럼 스트레칭을 하는 것도 같았다.


아빠 뭐 해 나를 구하러 얼른 뛰어들어 나 여깄어! 얼른 이리 와서 나를 구해줘!

찰나의 순간이지만 자식을 구하러 바로 바다로 뛰어들지 않는 아빠의 얼굴, 어떤 망설임과 두려움이 느껴진다고 생각이 들었던 것도 같다. 아빠의 얼굴이 무슨 연극의 한 장면처럼 슬로 모션 같이 지나갔다. 나는 백사장에서 조금 떨어진 갯바위까지 떠내려갔는데 그곳에서 낚시를 하던 횟집사장님이 건져주셨다고 한다.



이 기억은 그런데 한참 동안 내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나는 내가 물에 빠졌던 그 열두세 살 때 여름을 기억에서 지웠다. 물에 빠졌던 것은 기억하지만 자세한 상황은 모두 잊었다. 어쩌면 아빠의 얼굴에 스치던 망설임의 모습을 지우고 싶고 나를 보호하고 싶어서? 어쩌면 그 기억조차 굉장히 왜곡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그때 내가 둥둥 쓸려내려갔다는 거 말고는 모든 기억이 불확실하다. 아마도 백사장에서 꽤 먼 거리였으므로 누군가의 시선이나 표정을 읽는 것도 불가능했을 거다. 아빠가 나를 구하려고 뛰어들려는 순간 횟집사장님이 나를 먼저 건져냈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불확실한 기억은 나만 아는 기억이라 여겨서 내가 지워버리면 사실이 아닌 것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될 수 있다고 믿고 무의식의 뒤에 숨어버렸다.


해리됐던 기억이 의식으로 떠오른 건 둘째를 출산하고 엄마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을 때였다.

경산부의 출산은 쉽게 빨리 진행된다는데 나는 둘째를 낳을 때 첫째 때보다 더 진행이 더디고 힘들었던 난산이었다.

산실에 들어간 지 만 삼일이 돼서야 아기가 나오자

산실에서 72시간 몸을 틀던 산모 본인뿐만 아니라 기다리던 엄마도 초주검이 되셨다.

아기를 낳고 겨우 면회가 됐을 때 엄마는 아파서 잠 못 드는 딸에게 진통제를 놔달라고 간호사에게 부탁하다가 뜬금없이 나에게 시선을 돌려서

너를 구해준 횟집 사장님을 수소문해서 찾아서 그분에게 봉투를 드리며 감사를 표하라고 했다.

산실에 들어가 나오지 못하고 신음하는 자식을 기다리며 애간장이 녹아들던 엄마는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었고 우리 딸이 이렇게 고통을 당할 만큼 잘못한 일이 없었는데, 늘 감사하고 기도하며 착실히 살아왔는데 하고 기억을 더듬다가 자식을 건져준 은인에게 충분히 보답 안 했던 게 생각났나 보다.


엄마는 엄마답게 현상을 현상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원인을 찾고 이유를 찾으려 하고 결국은 내가 무엇을 잘못했나? 아니면 원래 팔자가 이런 건가? 하며 또 운명론적인 체념을 했을지도 모른다. 엄마의 생각은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으로 소이다로 귀결된다. 그 사고방식이 엄마와 중요한 관계를 맺는 사람에게는 편리하지만 엄마 자신의 일생을 얼마나 힘들게 했는지 엄마만 모른다. 특히 엄마를 너무 사랑하는 딸에게 그런 사고와 생활방식은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고 나 역시 결국 엄마를 너무나 사랑하지만 완전히 감정적인 독립과 분리를 하겠다고 결심하기 전까지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으로 소이다로 살아왔다.


그러다 어느순간, 나의 인생에서 나를 중심에 두지 않고 나를 하인으로 두는 순종, 잘못의 원인을 나에게 돌려 내가 나에게 화살을 쏘는 삶은 내 삶을 절대 개선시키지도 않고 그렇게 산다고 해서 내가 성인의 반열에 오를 것도 아니므로 버려 버리기로 했다. 그걸 버리자 나는 진정 행복해졌다.


엄마는 내가 난산으로 고통받고 있는 동안 많은 생각을 했겠지.

엄마는 내 골반이 협골반이라 분만 전에 의사가 자연분만을 결정했지만 사실을 제왕절개를 해야 하는 골반이었다는 사실이나,

하필 내 주치의가 퇴근하고 나를 진료해 본 적 없이 그저 차트로만 나를 아는 응급 당직의가 있을 때 분만이 진행돼서 주치의라면 바로 결정했을 옥시토신 주사 시기를 놓쳤다는 객관적인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딸이 산실에서 신음하는 동안 초조히 기다리던 엄마는 그저 엄마가 살아온 길을 더듬어보고 엄마가 잘못한 일들을 찾아내서 한점 부끄럼 없이, 이웃에게 착하고 순하고 남편에게 순종적이고 부지런한, 흠잡을 것 없는 삶을 돌아보다 찾아낸 것이 그때 그거. 그래 그때 내가 그 횟집 사장님께 봉투를 안건내서 우리 애가 고통을 받는가 보다!하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그때 나역시 애써 잊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엄마에게 엄마도 알고 있어? 하고 물어봤다. 꿈속인지 기억의 왜곡인지 애써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그 기억.

아빠가 떠내려가는 딸을 구하러 바로 뛰어들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었어?

그 순간 내 화와 원망의 원인이 된 아빠보다 엄마에게 더 미웠던건 나 역시 더 밀착된 그리고 더 만만한 상대에게 해결못한 감정을 투사해서 그런것이겠지.

나를 구해준 횟집사장님께 감사를 전하며 우리 휴가가 끝나가 전에 그 횟집에 찾아가 회 한사라 팔아주고 성의를 표시하겠다 했지만 자식을 구해준 보답도 제대로 하지 않으셨나 보다. 아빠가 횟집사장님의 손을 잡으며 오늘저녁 회 한사라 사러 들르겠다고 인사하시고는 그냥 그걸로 우리는 여행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때 친했던 두 세 가족이 같이 여행을 다니곤 했기에 아마 우리 일행이 그 횟집에서 식사를 했으면 심심찮은 매출을 올려줄 수 있었을 건데 내 기억에도 그해 여름 횟집을 방문했던 기억이 없다.


아마도 엄마는 은인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었고 일행 모두를 몰고 가서 횟집에서 시원하게 저녁식사라도 한번 대접하든지 봉투라도 드리고 싶었지만 아빠가 만류하셨을 거다. 돌아보니 아빠가 엄마를 만류했을때 추정되는 이유는, 일행을 다 데리고 딸을 건져준 은인이 운영하는 횟집에가서 매출을 올려주려면 아빠가 전부 계산을 하는게 예의인데 아마도 그때 우리집 상황에선 그런 예의를 차리는게 꽤 부담스럽고 힘들었을 거라는것이다. 아빠는 땡보니까.

물론 이것도 돌아본 나의 추정일 뿐, 왜 아빠가 그 횟집에 안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빠의 주장을 꺽지 못하는 엄마는 그냥 또 체념하고 아빠 뜻대로 하자고 따랐을 것이지만 그 기억은 남에게 빚지고는 못 사는 엄마에게는 어쩌면 굉장히 면구한 기억으로 남았을 거다.

그래서 엄마는 72시간 분만을 마치고 아직도 정신이 해롱거리는 딸에게 뜬금없이 횟집 사장님을 찾아내 봉투를 드려라 너희들은 인터넷으로 사람도 찾고 하지 않느냐 너 컴퓨터 잘하니까 너의 은인에게 감사해야 니 인생도 잘 풀릴 거다 하는 말을 했다.


그때 나는 출산 후 호르몬 때문이었는지 평소와 다르게 격렬하게 화가 났다.

자식이 떠내려가는 걸 보고도 허둥지둥 뛰어들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했던 아빠. 은인에게 후의를 표하겠다고 약속하고 그냥 돌아섰던 아빠. 그런 사람을 용서해 버리고 그저 또 그저 체념한 채로 살아가다가 딸의 고통을 마주하자 그런 기억 역시 내 탓이다 하며 불쑥 경고도 없이 떠올리게 해서 기진맥진해 있는 딸을 뒤 흔들어 버린 엄마. 내 화의 대상은 그 누구에게 랄것 없이 향해졌다.


그러나 나는 또 엄마의 딸이니 나 역시 현상을 보면 내 탓이오 내 탓이오 하고 이 혼란과 고통은 내 탓이오니 내가 떠 앉고 가겠소 그대들은 평안하시오 하며 엄마와 같은 선택을 해버렸다. 남에게 화살을 쏘는 짓 따위는 절대 하지 않고 그저 스스로 참아내는 것.


엄마가 그게 그렇게 마음에 걸렸다면 한번 노력해 볼게 하고. 차라리 그때 엄마에게 화를 냈으면 이 풀리지 않은 먹먹함들이 해소되었을까? 아니면 여전히 논리적으로 내 감정을 설명하기 어려운 상대이자 나보다 더 약하고 더 슬프고 더 불쌍한 엄마에게 그저 지금처럼 입다물고 참고 살아가야 하는가?

하지만 그때 이후로 나는 당연히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야 하는 존재란 처음부터 아무도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그냥 나 자신 만을 사랑해야겠단 결심도 그때부터 굳어졌다. 그 결심은 훗날 아주 큰 위력을 발휘해서 내가 큰 위험에 처했을때 침착히 그 위험을 헤쳐나갈 힘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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