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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릴리 Sep 21. 2024

잠기지 않는 수도꼭지

멈추지 않는 불안

  불안은 마치 잠기지 않는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수돗물 같다. 그러면 수도꼭지를 고치거나,  계속 흐르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면 되지 않은가. 그렇다 그런데, 그게 마음처럼 잘 되지 않는다.


  마트에 장을 보러 간다. 입구에 쓰레기통이 있다. 그럼 혹시 내가 흘리지도 않았을 내 물건이 그 안에 들어있는지 몇 초정도 살펴본다. 살펴보는 동안에 내 물건이 떨어지지는 않았는지 주변을 다시 둘러본다. CCTV 말고는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보는 사람이 없을 것 같다.


  마트에서 장을 보는 동안에 수없이 내 가방, 주머니 속을 뒤져서 물건이 있는지 확인한다. 사실 물건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아예 가방 안에 물건을 미리 넣어두고, 자크를 잠가버리지만, 그래서 내 바지주머니와 점퍼 주머니에는 물건이 없지만 그래도 떨어져 잃어버릴 물건이 있는지 확인 또 확인한다.


  마트에서 장을 보면서도 내가 지나온 길의 바닥을 수시로 뒤돌아 본다. 내가 떨어뜨린 물건이 없는지 확인한다.


  계산을 하는 동안에는 초집중을 한다.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된다. 카드는 잘 꼽았는지, 잘 회수했는지, 영수증은 꼭 받아서 수량이 잘못 스캔된 것은 없는지 확인한다. 캐셔가 살짝 짜증스러워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눈치가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캐셔의 눈치가 보이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 수도 있다. 실제로 영수증을 대충 툭 던져 놓거나 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카드기에 내 카드가 꼽혀있지는 않은지, 계산 후 봉투에 담지 않은 물건이 남아있는지 빠른 속도로 휙 스캔하고 나서야 자리를 떠난다.


  이상하거나 수상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모습이어야 하고, 캐셔는 내게 그럼 잠깐의 여유를 주지 않는 게 보통이다. 바로 뒷사람 계산을 시작해 물건이 넘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빨리 자리를 비켜줘야 한다.


  나의 불안이 흐르는 수도꼭지는 잠기지 않는다. 굉장히 에너지가 많이 소모된다. 하지만 멈출 수가 없다. 다음으로 나의 아침부터의 일상 모습은 이렇다.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뜨며, 양압기를 벗는다. 양압기 코드는 바로 빼지 않는다. 수면을 기록한 데이터가 날아갈 수도 있기 때문에 조금 나중에 뽑기로 한다.


  아침밥을 먹고, 씻으러 간다. 양치와 세수부터 한다. 양치는 점심때 보통 외근으로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아침저녁에 꼼꼼하게 오랜 시간 하는 편이다.


  치실까지 써가며, 깨끗하게 머리를 감는다. 세수는 보통의 사람처럼 하는 것 같다. 정 찝찝할 때는 두 번 정도 하기도 하는데 보통은 한번 정도하고 다음으로 넘어간다. 남들은 보통 세수까지만 하고, 머리는 하루 한 번만 감기도 한다는데, 나는 지성두피라 그런 것도 있고, 세수를 하고 나면 앞머리까지 묻어있는 세안제를 또 닦아내야 해서, 그러느니 차라리 머리를 감는 게 나아서 머리까지 감는다.


  머리를 감다 보면 여기저기 물이 튀겨서 가볍게 샤워까지 해버린다. 그다음 수건으로 머리부터 몸의 물기를 꼼꼼하게 닦아낸다. 머리가 짧은 편이라 드라이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욕실 밖으로 나온 다음 여러 가지 약들을 챙겨 먹는다. 귀찮지만 로션과 선크림도 바른다. 차키를 챙기고, 목걸이 명찰, 손목시계를 찬다. 안경도 물로 한번 씻은 다음 꼼꼼하게 닦는다. 옷을 입을 때는 상의나 하의에 어디 실밥 터진 곳이 없는지 살펴보면서, 그리고 소매, 바지통에 뭐가 끼어들어있는지 살피면서 입는다. 그리고 상의 같은 경우, 머리카락이 붙어있을 수 있기 때문에 털어내면서 입는다.


  가방을 들고 방을 나설 준비를 한다. 양압기 코드를 뽑고, 방안 여기저기 널려있는 코드들이 합선될만한 곳이 있는지, 닿아있지는 않은지 잘 살펴본다.


  거실의 가스밸브가 잘 잠겨있는지, 욕실의 샤워기와 세면대 수도꼭지가 잘 잠겨있는지 확인한다. 레버를 두세 번씩 눌러보고, 손을 직접 가져다 대고, 물이 흐르지 않는지 확인도 한다.


  현관문을 나서서 닫고, 문이 잠기는 소리가 들리면 두세 번씩 3세트로 손잡이를 당겨 흔들어보고 잘 잠겼는지 확인한다.


  주차장까지 가는 길에 계속 뒤를 돌아보며, 바닥에 떨어뜨린 물건은 없는지 반복해서 확인한다. 그러다 보면 사람들과 눈이 마주칠 때도 있는데, 괜히 수상한 사람처럼 보일까 봐 다른 쪽으로 가는 척하다가, 그 사람이 자리를 떠나면, 다시 그곳에 가서 떨어진 물건은 없는지 확인한다. 다른 사람이 또 있으면, 또 반복이다.


  불가피하게 차량으로 출퇴근을 하는 상황인데, 대중교통을 이용하더라도 떨어진 물건을 확인하는 일이나, 남이 잡던 손잡이를 잡는 것은 똑같다.


  일단 주차장에 도착하면, 내 차가 온전한 상태인지, 누가 파손시켜 놓고 도망가지는 않았는지를 확인한다. 그리고 차에 탄다. 시동을 걸고 블랙박스 전원케이블을 연결한다. 아는 길이어도 내비게이션을 찍는다. 단속카메라나 내가 실수로 길을 잘 못 갈지도 모르고, 실시간 교통상황을 반영해 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사이드브레이크를 푼다. 여러 번 반복해서 확실히 풀린 것을 확인한다. 양쪽 창문을 내리고 주변에 뭐가 없는지 확인하며, 천천히 출발한다.   


  주행 중에는 돌발 상황들이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천천히 주행하는 편이다. 그렇다고 주변 통행을 방해하는 정도는 아니고, 흐름은 맞추는데, 50킬로 시내도로에서 80~90씩 달리는 사람들 속도는 따라서 맞추지 않는다.


  좌회전과 우회전할 때는 늘 긴장하는데, 특히 우회전할 때 횡단보도 신호가 걸리면 참 늘 갑갑하다. 알아보니 신호 중에 횡단보도 위에 사람이 없는 상태에서만 잠시 정지 후에 주행하면 된다던데, 그 사이를 못 참고 뒤에서 빵빵거리니 늘 식은땀이 난다. 그러다가 뛰어서 급하게 횡단보다를 건너려는 사람이라도 치게 되면 독박 아닌가. 그래도 흐름을 막으면 곤란하니, 우회전 대기 중에는 뒤차 눈치를 항상 보게 된다.


  어두운 밤에 보행신호가 다 끝나지 않았는데 뒤차 때문에 우회전하게 된 경우에는, 갑자기 무슨 소리나 큰 소음이 나면, 분명히 눈앞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음을 확인했어도, 어두운 밤이기도 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이 아무래도 불안해져서, 길을 돌아 다시 그 우회전했던 지점을 지나서 다쳐서 누운 사람이 없는지 확인하고 간다.


  이때 느끼는 불안감은 불안과 누구를 혹시라도 다치게 했을지도 모른다는 원인 모를 죄책감과 결합하여, 큰 공포로 다가오기 때문에, 다시 그 우회전했던 장소에 가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불안의 수도꼭지를 누가 잠가주었으면 좋겠다. 나도 내가 너무 힘이 든다. 불안 없이 살고 싶다.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매사에 불안하게 살았던 걸까. 아마도 어릴 적 어떤 에피소드들이 하나둘씩 쌓여, 지금의 내 불안을 만들었을 것 같다. 찾아내서 내 손으로 직접 그 수도꼭지를 잠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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