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 자리는 이상하리만큼 고요했다. 말이 오가는 대신,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를 다들 고민하는 듯했다. 누군가 먼저 입을 열기를 기다리는 정적이 테이블 위를 감싸며, 조용한 기척만이 그 위를 살짝 스치고 있었다.
창밖으로는 비슷한 속도의 자동차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지나갔고, 그 안쪽으로는 우리 각자의 생각이 소리 없이 부유했다. 그렇게 한참의 침묵 끝에, 그 어른은 수저를 내려놓고 입을 열었다.
“아주 세밀하고 조밀하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게 좋단다.”
예상치 못한 화두에 우리는 하나같이 고개를 들었다. 어쩐지 오래 품어온 태도에서 나온 말 같았다. 마치 누군가를 오랫동안 곁에 두고 바라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처럼. 그는 우리를 한 사람씩 바라보며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그 세심한 언어들 안에 녹아 있는 섬세함을 배워나가는 게 곧 너희 내면의 성장으로 이어지는 거야. 그걸 배우게 되면, 지금까지 힘들어했던 문제들···. 그걸 어떻게 바라보고 풀어가야 할지를 조금씩 알게 될 거다.”
음식을 부지런히 집어 들던 지인은 어느 순간부터 손을 멈추고 있었고, 나는 눈앞의 밥알보다 문장 하나하나가 더 또렷하게 씹혔다. 그것은 조언이라기보다는 삶을 바라보는 방식에 가까웠다. 단번에 받아 적을 수 있는 메시지라기보다 오래 곁에 두고 들여다보아야 하는 종류의 이야기. 시간이 지날수록 의미가 겹겹이 드러나는 말이었다.
“그런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싶지 않은 날엔,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봐. 그 시간만큼은 너에게만 집중하고 마음을 돌아보는 거지.”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내 안을 들여다보게 됐다. 누군가의 복잡한 마음을 이해하려 애쓰는 일은, 결국 내 마음 깊은 곳의 낯선 결을 만나는 일과 닮아 있었다. 설명이 많다는 건, 그만큼 섬세하고 복합적인 감정이라는 뜻일지도 모른다. 잠시, 그런 생각에 머물렀다.
그때, 테이블 끝에 앉은 지인이 조심스레 물었다.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저는, 뭘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식탁 위의 공기가 살짝 움직였다. 어른은 잔을 들이켠 뒤, 조용히 말을 이었다.
“무엇보다도, 그 마음을 낯설어하지 않는 게 중요해.”
그러고는 우리를 돌아보며 천천히 덧붙였다.
“누군가가 자기 마음을 그렇게 세세히 보여준다는 건 너를 신뢰한다는 뜻이야. 그걸 피로하게 여기지 말고, 너 자신을 먼저 살펴봐. 너도 너를 모르는데 한 사람의 마음을 일단 받아들이겠다고 마음먹기보단, 지금 네 마음이 얼마나 열려 있는지를 아는 게 우선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의 말은 어떤 사람을 고르라는 조언이 아니라, 그 사람을 어떻게 마주 할지를 묻는 말에 가까웠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누군가의 마음을 ‘받아주는 일’에만 집중했던 나를 돌아보았다. 애써 맞추고, 애써 이해하려고만 했던 지난 시간들을. 어쩌면 그보다 먼저 필요한 건, ‘내가 관계 안에서 어디까지 진심으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인지’를 인식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어른은 화제를 돌리려는 듯, 서서히 마무리하는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네가 그 사람을 통해 성장하겠다는 다짐이 있어야 한다는 거야. 그런 마음을 품고 관계를 이어가다 보면, 감정이 흐트러질 때마다 내 안의 어떤 부분을 먼저 살피게 돼. 그러면 다투는 방식도, 기다리는 시간도, 훨씬 달라질 거야.”
식사 자리는 조용히 마무리되었다. 창밖의 자동차들은 여전히 일정한 속도로 지나갔고, 식탁 위의 그릇들은 적당히 비워져 있었다. 배는 불렀지만, 마음은 가볍게 비워진 느낌. 조금 덜 복잡한 감정, 조금 더 가라앉은 생각. 마음 한켠이 오랜만에 정돈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사연을 안고 그 자리에 있었다. 누구에게는 그 어른이 오래된 스승이었고, 누구에게는 처음 만나는 낯선 이였으며, 또 다른 누구에게는 오래전부터 동경하던 대상이었다. 제각각의 이유로 모인 우리 앞에서 그분은, 조용하고 단단한 하나의 태도를 골라내어 건넸다. 우리 상황을 다 알 수는 없었을 테지만, 어떤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는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가 선택한 건, 관계의 형태나 시기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든 닿을 수 있는 이야기. 오랜 시간 관계를 살아낸 이가 건넬 수 있는, 자신이 직접 살아보며 얻은, 말보다 깊은 기준 같은 것.
그가 건넨 말은, 단순한 충고가 아니었다. 삶의 굴곡 속에서 충돌과 침묵을 지나 끝내 품게 된 시선, 그리고 오래도록 관계를 지켜본 이만이 건넬 수 있는 조심스럽고 단단한 확신. 어른이 꺼낸 이야기는, 누굴 만나야 할지보다 어떻게 곁에 남아 있어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었다. 삶을 오래 통과해 온 사람만이 전할 수 있는 하나의 함의처럼 느껴졌다.
시간이 흐르며, 그 말의 의미가 점점 또렷하게 다가왔다. 왜 하필 그날, ‘세밀하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을 이야기했는지. 그건, 이제 막 누군가의 곁에 머물 준비를 하고 있는 우리를 보며, 자신도 지나온 어떤 시기를 떠올렸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가 우리와 같은 나이였을 때 품었던 질문들, 마주했던 관계들, 그리고 세월을 관통해 오며 알아낸 관계의 기술. 그 말은, 그 시절의 자신에게도 건네고 싶었을 말 같았다.
자신의 마음을 펼쳐 보일 줄 아는 사람, 서툴더라도 감정을 언어로 나누려 애쓰는 사람. 그런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야 비로소 우리는, 설명할 수 없던 감정을 마주하고, 내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알아차리게 된다.
그날 이후 나는, 상대의 마음의 결을 단정하지 않고 그 사람의 깊이를 끝까지 알아보는 일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되었다. 설명이 길어질수록 더 조심스럽게 귀를 기울여주고, 쉽게 꺼내지 못했던 마음일수록 그 무게를 가늠하며 소중히 다뤄주는 것. 바꾸려 하기보다는 다름을 곁에 두는 힘, 다르다는 이유로 멀어지지 않는 태도. 그런 태도들 사이에 머물 줄 아는 사람만이, 관계를 서두르지 않고 끝까지 이어갈 수 있다는 걸 조금씩 배워가는 중이다. 말이 아니라 태도로, 이해를 넘어 존중으로.
어느 순간, 마음속에 자리 잡은 하나의 감정이 있다. 누군가의 곁에 머물고 싶다는 마음. 함께한다는 건 결국, 서로의 마음을 어떻게 다룰지 천천히 배워가는 일이다. 오랜 시간 함께 하기 위해선 감정만으로는 부족하고, 삶 안에서 길러진 섬세한 태도가 필요하다.
예상치 못한 말이 놓인 그 자리는, 그런 태도가 어떻게 시작되는지를 조용히 보여주었다. 누군가의 곁에 오래 있고 싶어질 때, 아마도 가장 먼저 떠오를 장면.
소리가 아닌 마음이 흐르던 공간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작은 움직임이 시작된 듯했다. 나만이 감지한 떨림이었을까. 말은 없었지만, 어쩌면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같은 쪽으로 마음을 옮기고 있었을지도···.
이 조용한 움직임은 결국, 누군가의 곁에 남겠다고 마음먹는 사람만이 시작할 수 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