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이 참 어수선하다

by 눈부신꽝


봄이 오면, 감정도 덩달아 어수선해진다. 누군가는 시작의 계절이라 하고, 누군가는 설레어할 때라고 한다. 하지만 지난 연애사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3월은 사랑을 시작하는 계절이 아니라 끝내는 계절에 가까웠다.


겨울과 여름 사이, 이 계절은 어딘가 비어 있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공기. 벚꽃이 피려면 아직 몇 주가 남았고, 거리에는 두꺼운 코트를 벗어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애매한 공기가 오래 머문다. 그러다 보면 생각이 많아진다. 특히 이별에 대해.



겨울엔 좀처럼 헤어지기 어려웠다. 추운 날씨가 사람을 옆에 붙잡아 두었다. 따뜻한 손길이 필요했다. 연말 분위기와 새해 인사가 이어지면, 이상하게도 "새롭게 시작해 보자." 같은 다짐이 관계를 붙들어 매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겨울을 지나오면, 적어도 한 번은 더 노력해봐야 할 것 같았다.


여름엔 덥고 번잡했다. 모든 것이 빠르게 지나갔다. 관계의 끝을 천천히 들여다볼 여유가 없었다. 가을은 또 애매했다. 센치해지기 쉬웠고, 외로움에 휩싸이기 딱 좋은 날씨였다. 이별을 고민하다가도 '그래도 지금 혼자가 되는 건 너무 쓸쓸한가?' 싶었다. 하지만 봄은 다른 계절과는 뭔가 달랐다.




어느 해의 봄, 문득 깨달았다. 더 이상 관계가 예전 같지 않다는 걸. 손을 잡아도 설레지 않았고, 그의 말을 듣는 것이 지루해졌다. 무엇보다, 노력해야겠다는 마음이 줄었다. '조금 더 해볼까?' 같은 생각도 더 이상 들지 않았다.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마지막 데이트는 평범했다. 염원하던 <봄날은 간다>가 재개봉했고, 우리는 극장에서 함께 영화를 보았다. 스크린 속에서는 상우와 은수가 멀어졌다. 익숙한 장면이었지만, 이번엔 다르게 보였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극장 안에선 누군가 코를 훌쩍였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슬프지 않았다. 사랑은 변한다. 그게 특별히 이상할 것도 없었다. 영화가 끝나고, 우리는 별말 없이 길을 걸었다. 벚꽃이 피기 시작했지만, 딱히 감흥이 없었다.


"밥 먹을까?"


"그럴까."


그날 나눈 대화는 그게 다였다. 이별을 대단한 사건처럼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냥, 변한 감정이 거기까지라는 걸 서로 알고 있었다.


그 무렵부터였나. 나는 봄에 연애를 시작하지 않았다. 계절의 흐름을 생각하면, 어쩐지 오래가지 않을 것 같아서. 차라리 이 시기에 연애를 끝내는 게 나쁘지 않았다.


따뜻한 바람이 스치고, 묵혀둔 감정이 떠오르고, 더 이상 예전 같지 않은 관계를 들여다보는 일이 잦은 계절. ‘어차피 끝낼 관계라면 꽃이 피기 전, 멈추는 게 맞지 않을까?', '그럼 오늘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그리고 결국, 그 고민은 하나의 결론으로 이어졌다.





봄날이 참 어수선하다. 이런 날엔 결론을 내리는 게 맞다. 이별을 하든, 남아 있든. 애매한 건 계절 하나로도 충분하니까. 날씨가 풀리면 기분도 덩달아 가벼워지는 것 같고, 거리도 환해 보인다. 괜히 새로운 일이 생길 것 같고, 또 어쩌면 새로운 사랑도 가능할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바람이 바뀌고, 온도가 흔들리고, 봄은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따뜻했던 날이 지나고 다시 쌀쌀한 바람이 불면, 지금의 선택이 결국 옳았다는 생각이 든다.


계절이 변하면 감정도 변한다. 같은 풍경을 보면서도, 같은 감정을 계속 가질 수는 없다. 그래서 그냥 계절 탓을 한다. 계절을 거스를 수 없듯, 마음도 그런 거니까.





혼자가 되어보기에 좋은 날씨. 무작정 걸어도 덥지 않다. 괜히 주저앉고 싶은 벤치가 눈에 자주 띄고, 손에 들린 커피는 금방 식지 않는다. 지나온 시간을 되새기기에 더없이 상쾌한 시기, 봄.


누군가 “어떻게 계절이 바뀌었다고 사랑을 정리하니?"라고 묻는다면, 난 여전히 어깨 한번 으쓱하며 답할 것이다.


“미안한데, 난 그래."


그렇게 계절에 기대어, 남은 감정을 조용히 접어두고 나면···.


어느새, 완연한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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