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10일째.
병원에 입원하고 내가 가장 먼저 처리해야 할 일 가운데 하나가 부동산에 전화를 하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사무실을 옮기게 되어 오피스텔들을 알아보고 있었는데, 마침 조건에 맞는 곳이 있어 가계약금을 걸어두고 계약을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계약일을 삼일 앞두고 입원을 하게 된 것이다.
안녕하세요. 저 계약을 좀 미뤘으면 하는데요.
아니, 갑자기 왜...
제가 교통사고가 나서 입원을 하게 되어서요.
아. 그럼 제가 집주인분께 사정 말씀드리고 미뤄볼게요.
네, 한 주만 미루면 될 것 같습니다.
여기서 또 나의 근거 없는 자신감이 드러났다. 나는 한 주만 지나면 혼자서 외출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병원에서의 한 주는 순식간에 지나갔고, 내 몸은 그대로. 아니 더 아픈 것만 같았다.
의사 선생님, 저 무릎 아래가 왜 계속 아플까요.
며칠 전에도 그러시더니, 언제부터 그랬어요?
처음부터 그랬는데 차차 괜찮아질 줄 알았어요. 여기 와서 스플린트 갈고 나서 안 아프기도 했고...
이상한데... 엑스레이 한 번 찍어봅시다.
아니. 여기 무릎 아래 비골도 부러지셨네. 금 간 게 아니라 똑 부러졌어요. 많이 아팠을 텐데.
아니 저는 괜찮아질 줄 알고...
근데 이거 그때 알았어도 수술할 필요는 없는 부분이에요.
실밥 뽑고 깁스할 때 조금만 더 길게 하면 되니까 걱정하실 필요는 없어요. 근데... 많이 아팠을 텐데...
제가 원래 좀 잘 참는 편이라서요. 라며 웃는 나에게 의사 선생님은 황당한 웃음을 지어주었다.
친구 마노에게 이야기하자 그는 화를 내며 원래 교통사고 환자가 들어오면 손으로 짚어가며 다른 부상 부위가 있는지를 살펴야 하는데 어떻게 바로 위에 있는 골절을 찾아내지 못할 수가 있냐며 항의를 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저 내가 아팠던 것이 엄살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진 것만으로도 너무 좋을 뿐이었고
또다시 새로 맞춰주신 스플린트를 하니 고통이 사라졌다는 것으로 행복감을 느낄 정도였다.
그리고 다음 날, 나는 부동산 계약을 하러 가야 했다. 병원에서는 가계약금을 날릴 수는 없으니 외출을 하되 꼭 보호자와 동반해야 한다고 했다.
작은 단체의 책임을 맡고 있는 나의 아내는 나의 사고로 열흘 동안 휴가와 연차를 모두 소진했고 단체의 일이 밀려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직장에 빠질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우주임에게 도움을 청했다.
우주임은 보험 청구가 되는 여러 이동 수단을 제안했지만 나는 택시를 타는 것을 선택했다.
아직 움직이면 통증이 있어 힘겹게 참아가며 목발을 짚고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병원에서 OO동 까지 가는 길에는 나의 집을 지나가게 된다. 그리고 그 길에는 벚꽃이 흐드러지고 있었다.
괜스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갑자기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인지. 나는 예전처럼 걸을 수 있을 것인지.나는 언제까지 병원에 있어야 하는 것인지.
갑작스런 서러움이 벚꽃잎이 흩날리는 나의 집을 바라보며 밀려왔다.
부동산 계약은 잘 끝났다. 우주임은 병원 밥 지겨울 테니 근처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들어가자고 했지만 나는 외출시간을 엄수해야 한다, 저녁을 취소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빨리 들어갈 것을 요구했다. 우주임은 괜찮다고 말했지만 나는 절대로 그럴 수 없었다. 외출 시간은 꼭 지켜야 하고, 식사 취소를 하지 않았으면 꼭 먹으러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외출. 신학교에 다니던 시절 주말에만 허락되던 외출은 정말 귀중한 시간이었다. 주말 아침 기도와 미사 후, 아침 식사가 끝나고 나면 우리는 식당 앞 칠판에 있는 점심, 저녁 외식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교문을 빠져나갔다. 외출해서 하는 일이라고는 기껏해야 동기들과 함께 극장에 가 최신 영화를 보고 서점에 가서 필요한 책을 사고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저녁이 되면 다른 무리들과 어울려 학교 앞 중국집에서 저녁을 먹고 한 잔 하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평일에는 신학교 문 밖을 나갈 수 없는 우리에게 주말 외출은 빠뜨릴 수 없는 것이었다. 사실 주말에도 학교에 남아 공부하고 기도하는 친구들이 있었지만 아쉽게도 나는 그렇지 못했다. 외출을 하지 않았던 주말은 아마 손에 꼽힐 것이다.
외출 시간은 저녁 9시까지. 성당에서 시작되는 끝기도에 모두 참석해야 했다. 끝기도에 참석하지 않으면 외출 복귀 시간을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벌을 받아야 했다.
지각만큼 위중한 벌이 주어지는 것이 식사를 지키지 않는 것이다. 점심, 저녁 외식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으면 외출을 할 수 없다. 사실 이것은 식사를 준비해 주시는 분들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의 문제이기도 하거니와 신자분들의 후원금으로 생활을 꾸려나가는 신학교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 중에 하나이다. 음식에 대한 감사와 음식을 남기는 것에 대한 강박이 존재하는 곳이다. 신학생 100여 명이 식사를 한 후에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가 작은 국그릇 하나도 되지 않는 것을 보면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깜짝 놀랄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우주임에게 늘어놓고 나서야 우주임은 병원으로 가는 택시를 불렀다.
기사님의 운전이 조금 거친 편이었다. 조수석에 타고 있는 나는 차가 다른 차와 접근할 때마다 몸이 움츠러들었다. 오토바이가 도로 위에 있는 것이 보이면 전혀 위험한 상황이 아닌데도 꼭 사고가 날 것만 같았다.
병원으로 돌아온 나는 마노에게 전화해 이런 상황에 대해 이야기했다. 집 앞을 지나는데 눈물이 날 것 같더라, 도로에서 조금만 위험해도 몸이 움츠러드는 것 같아 힘들었다.
힘들게 털어놓은 이야기에 그는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사고가 난 이후에 당연한 반응임을, 6개월이 지나고 나서도 계속 그런 상황이 지속되면 다시 이야기해 달라고 했다. 그리고 병원에 있으면서 명상을 좀 하라고 했다. 정신과 전문의가 명상 같은 비과학적인 이야기나 해서 되겠냐는 나의 핀잔에 그는 명상이 현대 정신건강의학에서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그것이 어떤 효과가 있는지에 대해 일장 연설을 시작했다.
아. 지겨운 놈. 30년 가까이 친구로 지내고 있지만 이 친구는 자신의 지식을 타인에게 설명하는 데에는 정말 재주가 없다. 내가 그 긴 설명을 듣고 나서 이해한 것은 그저 명상이 정신건강의학적으로도 도움이 되는구나. 이것뿐이었는데 이걸 30분이나 설명하다니.
그날부터 나는 다시 명상을 시작했다. 신학교 시절, 매일 아침 묵상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지만 세상으로 나오고 나서는 거의 해 본 적이 없었다. 호흡에 집중하고 나의 감각에 집중하는 것이 처음에는 쉽지 않았지만 명상을 시작하니 걱정과 잡생각 같은 것들이 사라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 이걸 잡생각으로 갈 에너지를 감각으로 보내고 집중시키는 것이라고 설명하다니.
마노의 설명이 문제가 아니라 명상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것 자체가 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다. 병원에 있는 동안 계속해서 명상을 해서일까. 나의 걱정도, 위험에 대한 공포도 점점 사라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