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브런치팀 Aug 19. 2019

좋아하는 것으로부터 좋은 것을 골라내는 사람

손현 (매거진 《B》 에디터, 『JOBS - EDITOR』 단행본 편집)


이야기에 끌리는 사람


"사실 실패 이력서를 쓰기 전까지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는 것에 대해, 편집자의 직업 정신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다. 무엇이 좋은 에디터십인지 여전히 답을 구하는 중이다."
- 2017년 2월 브런치에 쓴 글 ‘살고 싶은 대로 살아’


2018년 10월, 매거진 《B》(이하 '《B》')에 정식으로 합류했고, 그즈음 난 박은성 편집장과 새로운 단행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편집장은 ‘인물’을 브랜드 관점으로 바라보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고, 나 역시 합류 전부터 개인적인 작업으로 단단한 이야깃거리를 가진 보통 사람 100명을 취재하여 한 명을 한 권에 담아 전집을 만들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내 주변에는 아직 미디어의 유명세를 타지 않았을 뿐, 방송국의 엔지니어로 일하다가 은퇴하여 자동차 수리나 진공관 앰프 제작으로 소일거리를 하시는 친구 아버님부터, 금융에서 콘텐츠로 업을 확 바꾼 동갑내기 친구 등 자신의 길을 끊임없이 재발견하는 성실한 사람들이 많았다.


한편 당장 한 권에 한 명만 다루는 기획은 선정 기준부터 그 인물의 과거, 현재, 미래에 변수가 많기 때문에 리스크가 더 크다고 판단했다. 우리가 현재 진행형인 타인의 인생을 잘 담을 수 있을까? 다른 접근법이 필요했다.



『잡스(JOBS)』 시리즈의 시작


2019년 1월, 내부 보고 자료를 만들었다. 스스로 납득이 갈 만한 논리를 세우는 것도 중요했다. 초기 기획을 다듬을 때는 브런치팀의 이지현 매니저, 김혜민 매니저도 틈틈이 도움을 줬다. 특히 1월 24일에 들은 브런치 서비스의 탄생과 성장 과정에 대한 강연이 새로운 일을 기획할 때 떠오르는 두서없는 생각을 정리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보고 자료의 대략적인 내용은 이렇다.  


현상:
《B》에 나오는 인터뷰이의 커리어 패스를 추적해보니, 불과 몇 년 사이 많은 사람들이 포지션을 바꿨다.  

거시적인 배경:
지금까지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일의 성격 자체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주요 원인은 업무의 성격 변화와 유연한 근무, 모바일 인터넷과 클라우드 기술의 발전)  

거시적인 솔루션:
재교육(reskilling)에 대한 투자(65%) ← 세계경제포럼(WEF)의 2018년 보고서 '일자리의 미래(The Future of Jobs)'에서 첫 번째로 꼽은 미래 노동력 전략  

문제 도출:
자신의 업을 찾으려는 개인이 늘고 있으나,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직무교육 시장은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 이제는 사람들의 질문이 바뀌고 있다. “어떻게 하면 나의 업을 찾을 수(또는 만들 수) 있을까?” (How to get a job → How to create my job?)

제안:
자신의 분야에서 무언가를 이룬 사람들, 나만의 콘텐츠를 만들어가는 사람들, 스스로를 리브랜딩한 사람들을 ‘직업(job)’ 단위로 묶어서 인터뷰와 에세이 형식으로 소개하면 어떨까?  


관련 트윗 2건(김동조, 엘리) ©Twitter


시리즈 제목은 간결하게 『잡스(JOBS)』로 정했다. 일종의 직업 총서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그리고 시리즈에서 다룰 첫 직업을 ‘에디터’로 선택하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현재 《B》 편집부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직군이 에디터이고, 에디터 중심의 조직 문화를 스스로 살피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타 업종에서 넘어온 나로서는 에디터로 오래 일한 사람들은 어떤 철학과 원칙이 있는지 궁금했다. 내가 몸담고 있는 업의 지평은 어떤 모습일까?



첫 책 『잡스 - 에디터: 좋아하는 것으로부터 좋은 것을 골라내는 사람』의 기획과 섭외


한편 《B》는 어느덧 9년 차 잡지다. 그래서 첫 단행본 시리즈의 첫 발을 떼는 데에 훨씬 신중했다. (이 조직은 겉보기보다 무척 신중하다.) 무엇보다 ‘《B》가 내는 단행본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에 관해 편집장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매달 잡지를 만드는 곳에서 또 다른 결과물을 새로 내기에는 단행본 제작에 참여할 수 있는 인원이 매우 적었다. “창의력은 제한된 상황에서 나온다.” 참 낭만적인 문장인데, 실무자로서는 난감할 때가 있다. 파일럿 프로젝트인 만큼 우리는 RBV* 모델을 적용하기로 했다. 사내 스타트업을 꾸리듯 소수 인원으로 최대한의 협조를 받고자 했고, 다행히 《B》가 가지고 있는 유무형의 자산이 적지 않았다. 특히 통신원의 네트워크가 좋았고, 덕분에 섭외가 수월한 편이었다.

* resource-based view, 자원 기반 관점.


그럼 누구를 섭외하는 게 좋을까? 여기서는 다양성을 고려했다. 이커머스의 최전선에 있는 에디터부터 전통적인 단행본이나 잡지를 만드는 사람까지 두루 다루고 싶었다. 틈틈이 콘텐츠 업계의 지인을 찾아가 에디터 추천을 받았고, (한 번이라도 이름을 들어본 에디터의 목록을 만들어) 내가 염두에 둔 사람이 괜찮을지 물어도 봤다. 편집장도 본인의 취재 경험을 떠올리며 한 명을 추천했다. 《B》에서 51번째로 다룬 ‘미스터포터’ 이슈 때 이미 인터뷰한 적이 있는 미스터포터의 브랜드&콘텐츠 디렉터 제러미 랭미드(Jeremy Langmead)이다.


“하나의 브랜드를 선정해 한 권의 잡지로 펴내면서 뿌듯함을 느끼는 순간도 있지만 아쉬움을 느낄 때도 많습니다. 브랜드라는 하나의 우산 아래 여러 맥락의 내용을 정리하다 보니 매력적인 취재 대상을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눔에도 지면에 모두 싣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고는 하죠. 한편 많은 에디터들이 ‘저 사람과 브랜드 이상의 이야기를 나눠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 박은성 편집장의 글 Opener, 『JOBS - EDITOR』, 2019


아마도 ‘매력적인 취재 대상’ 중에 제러미 랭미드가 꽤 높은 순위에 있었던 것 같다. 편집장은 당시 그에게 번외로 들은 이야기가 흥미로웠다고 덧붙였고, 출간을 앞둔 이제야 돌이켜보면 랭미드의 말은 정말 훌륭하다. 편집장이 마음에 들어할 법하다.



3~5월: 섭외, 인터뷰 진행 및 에세이 원고 요청


제러미 랭미드를 비롯하여 디지털과 인쇄매체를 넘나드는 라인업을 짰고, 각각 런던과 도쿄 통신원으로 활동 중인 서유석(aka Alex Seo), 남미혜를 통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서울에서의 인터뷰는 내가 맡았다. 《브로드컬리》의 조퇴계 편집장과 이지현 디자이너, 그리고 워크룸 프레스에서 일하며 문학 총서 ‘제안들’을 기획한 김뉘연 편집자에게 연락을 드렸고, 고맙게도 친절히 섭외에 응해주셨다. 참고로 조퇴계 편집장과는 2018년 서울국제도서전 때 간단히 인사 나눈 게 전부였고, 김뉘연 편집자는 만난 적이 없으나 그를 궁금해하는 콘텐츠 업계의 지인들이 많았다. 그리고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를 쓴 황선우 작가와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으로 베스트셀러 작가로 이름을 알린 정문정 작가에게도 에세이를 한 편씩 부탁드렸다.


원고 작성은 각자 편한 도구를 택했다. 구글 문서(Google Docs), 페이지스(Pages), 워드(MS Word), 한글(HWP) 등의 파일이 오고 갔고, 나는 이 복잡함을 정리한답시고 프로젝트 초반부터 트렐로(Trello)와 구글 드라이브를 적극 활용하며 이를 관리하려 했으나 내가 간과한 점이 있었다. 아, 나의 편집장이 아직 구경제(Old Economy)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결국 편집장에게는 워드로 변환해 공유했다. 모든 원고를 나눔고딕, 11pt, 줄 간격 1.25, 워드 문서로 변환하며 어쩌면 원고 검토에 최적화된 공식이 존재하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잡스 시리즈 관련 트렐로 화면 ©손현/Trello


“출근길 정체가 시작되기 전에 간신히 퇴근해서 집에 돌아와 안대를 하고 잠을 청할 때면 오랫동안 피해온 질문이 떠오르곤 했다. 과연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있을까? 내가 떠나고 싶던 건 에디터의 일도, 존경하는 편집장과 동료들도, 매체도 아니었다. 단지 14일 새벽의 그 공기였다.”
- 황선우 작가의 에세이, 『JOBS - EDITOR』, 2019


프로젝트 중반부에 잠시 지쳐 있을 4월 무렵, 든든한 지원군이 합류했다. 안그라픽스, 제이오에이치를 거쳐 나와 같은 팀에서 디자인을 담당하는 최유원이다. 그와 맥주를 마시며 ‘우리가 이 프로젝트를 무사히 마감할 수 있을까요’라고 던졌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무엇이든 그 시작에 참여할 수 있는 건 좋은 기회예요. 창간하는 경우가 그리 흔하지는 않거든요.”


그의 말은 스스로 동기를 부여하는 데 효과가 있었다. 그런데 무조건 좋은 점만 있을까? 고충도 따랐다. 모든 게 처음이라 여러 시행착오를 겪었다. 특히 총서의 기준을 만드는데, ‘이게 틀리면 어떡하지?’란 두려움도 뒤따랐다. 다행히 답은 이미 책 안에 있었다. 이 모든 과정을 먼저 겪은 김뉘연의 말이다.


“‘제안들’을 처음 펴낼 때와 지금의 마음가짐이 조금 달라졌어요. 처음에는 때로 불필요할 정도로 집착했던 것 같은데, 요즘에는 생각을 더 열어두려고 노력해요. 돌이켜 보니 스스로 법칙 아닌 법칙을 만들어서 그에 어긋나면 틀렸다고 여긴 지점들이 있었어요. (…) 지금은 애초 정한 기준에서 오류가 발견되거나 더 나은 기준을 발견하면 지금 보기에 더 나은 쪽을 택해요. 그래서 증쇄할 때마다 편집 기준을 다르게 적용하기도 해요. 전반적으로 지금 내리는 선택에 더 중점을 두며 바꾸어나가고 있어요.”
- 김뉘연 편집자의 인터뷰, 『JOBS - EDITOR』, 2019


또한 (잡지가 아닌 단행본 시장에서) 실체를 알 수 없는 독자층에게 어느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 다듬는 게 쉽지 않았다. 요즘은 많은 콘텐츠 비즈니스가 소비자의 입맛을 고려해 기획을 시작한다. 지난 몇 년 새 고객 또는 소비자를 최우선으로 하는 방향으로 시장 상황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고객이 원하는 건 대체 뭘까? 한편 그동안 내가 관찰해온 《B》는 독자보다 내부 의견을 더 중시하는 조직이다. 그럼 《B》가 원하는 건 뭘까? 실무자 입장에서는 누구를 우선해야 하는지 종종 헷갈렸다. 독자, 《B》, 초기 기획을 함께 한 브런치팀, 또는 이 책에 등장하는 인터뷰이나 에세이 필자의 틈새에서 길을 헤매는 동안 어느새 책을 내기로 약속한 여름이 성큼 다가왔다.


전직 매거진 에디터인 브런치팀 김진호의 말을 인용해 올린 트윗 ©Twitter



5~8월: 편집부터 출간까지


그사이 시간이 매우 빠르게 흘러간 걸 보니, 내가 잠시 정신줄을 놓친 게 틀림없다. 다행히 그 줄을 항해출판사의 박지석 대표가 교정 교열을 맡으며 다시 잡아줬다. 편집부터 본문 조판, 표지 디자인, 출간까지 남은 시간이 촉박한 가운데 박지석 대표가 여러 편집 기준(괄호나 숫자 표기 원칙 등)을 함께 세우는 데 많은 도움을 주셨다.


출간 목표일은 몇 차례 뒤로 밀렸다. 7월 1일 → 7월 중순 → 7월 말 → 8월 초 → 그리고 8월 13일!


드디어 첫 책이 나왔다. 그리고 책이 이처럼 근사한 꼴을 갖춘 건 막판 디자인 작업에 애쓴 최유원 디자이너 덕분이다.


“(JOBS/EDITOR 타이틀을 표지에 크게 쓰는) 첫 시안이 디자인 콘셉트를 강조하는 방향이었다면, 최종적으로 결정된 지금 디자인은 내용에 더 집중하게 만드는 것에 가깝다고 볼 수 있어요. 사진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B》와 달리 잡스 시리즈는 이야기가 중심이라서 읽기 편하도록 물성(제본, 판형)과 활자에 더 신경을 썼고요. 《B》와 마찬가지로 잡스 시리즈도 앞으로 각각의 책이 저마다 매력을 갖고 오래도록 읽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최유원 디자이너


『JOBS - EDITOR (잡스 - 에디터)』 부제는 '에디터: 좋아하는 것으로부터 좋은 것을 골라내는 사람' 120×170mm, 272쪽, 사철제본, 19,000원


좋은 에디터십이란 무엇일까


초반에 가진 질문을 다시 던져본다. ‘좋은 에디터십이란 무엇일까?’ 나는 이 책을 준비하면서 해답을 엿본 느낌이다. 내게도 맞는 답안이라고 섣불리 정할 수는 없지만, 조퇴계 편집장의 말을 통해 꼭 한 가지 답만 내려야 할 필요는 없음을 배웠다.


“대개 7명 내외의 인터뷰이를 만나는데, 각자의 배경과 상황에 따라 의사 결정을 내리는 과정이 다르거든요. (…) 가령 내가 퇴사를 결심한다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고민해야 하는지 잘 모를 수 있잖아요. 막상 닥치면 월급뿐 아니라 주요하게 다가오는 요소들이 많을 텐데요. 다양한 고려 요소를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본인 스스로 답을 구하는 데 큰 도움이 되겠죠. 답을 주는 책이 아니라 판단의 근거가 되는 정보를 담은 책이면 좋겠습니다.”
- 조퇴계 편집장의 인터뷰, 『JOBS - EDITOR』, 2019


이 책에는 다양한 이력과 산업에서 활동 중인 에디터의 이야기가 밀도 높게 담겨 있다. 읽다 보면 서로가 하는 말과 철학이 상충되기도 한다. 리더(편집장)의 위치에서 팀을 운영하는 방식, 개인(편집자)으로서 일하는 방식도 각양각색이다. 그럴싸한 답을 멋지게 내놓으면 좋겠지만, 나는 아직도 갈 길이 먼 에디터이고, 요즘 시대에 무언가를 일반화하는 것만큼 위험한 일도 없다. 다만 세상에는 상상 못 할 정도로 많은 직업이 있고, 같은 직업일지라도 다양한 방식으로 일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전하고 싶다. 물론 일을 너무 포장하거나 신성시하고 싶지는 않다. 일과 삶을 하나의 통합된 개념으로 볼 때 결국 나답게 살고자 다들 일하는 게 아닐까? 어떻게 일하느냐가 곧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와 연결된 것처럼.


마지막으로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이 책이 진로 선택을 앞둔 청소년이나 대학생에게 더 많이 닿았으면 한다. 내가 나에게 어울리는 직업을 찾기까지 10년이 걸렸다고 썼듯이, 이 진로가 내가 가야 할 길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데는 의외로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잡스 시리즈를 통해 나에게 어떤 욕망이 있는지, 무엇이 결핍되어 있는지, 나는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그리고 그 일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대해야 하는지 스스로에 대한 질문이 많아지면 좋겠다. 그 질문에서 당신만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전 08화 마시면, 씁니다 #마시즘, 음료 덕후의 에디팅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잡스 - 에디터: 브런치북 에디션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