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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현 Feb 20. 2019

새 서비스를 준비하는 기획자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황선아 PM이 말하는 브런치의 탄생과 성장 스토리

* Update(2019.2.21): 당시 브런치 서비스의 탄생에 참여했던 오성진 기획자(현재 브런치 서비스 파트장)의 회고 글 두 편도 추가했습니다. 글 링크는 이 포스트 제일 아래에 있습니다.


** 지난 2019년 1월 24일, 광화문 북바이북에서 브런치 서비스의 탄생과 성장 과정에 대한 강연이 있었습니다. 아래 내용은 브런치 서비스를 총괄한 황선아 PM의 발표 전문을 정리한 글입니다. 브런치에 관한 단순한 소개보다는 기획자로서 황선아 PM이 어떻게 이 서비스를 성장시키고 문제를 해결했는지 잘 엿볼 수 있습니다. 이 글이 ‘카카오에서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방법’, ‘서비스 개발 과정과 문제 해결’ 등을 궁금해하는 사람들, 또는 새로운 일을 기획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브런치의 탄생

(황선아 PM, 이하 생략) ‘브런치’ 프로젝트의 시작은 2014년부터에요. 그해 한국에서는 인스타그램이 꽤 유명해지기 시작했고요, 모든 마케터들이 어떻게 하면 카드 뉴스를 잘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글에 관한 프로젝트를 하고 싶다고 제안했을 때 모두 “지금은 이미지의 시대인데, 글에 관련된 뭔가를 한다고?”라는 반응이었어요. 그런데 가끔 일을 하다 보면 직감에 의존하거나 내가 믿는 가치를 추구하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글에 관해 우리 멤버들이 가진 생각은 이랬어요.


시대를 막론하고 좋은 글이 갖는 힘이 있는데, 온라인에서 글을 어떻게 쓰고 봐야 할지 고민하는 서비스는 왜 없을까? 우리가 이 문제를 해결해보자.


그때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 또는 공격이 있어요. 이미 한국은 블로그라는 서비스가 그 어떤 나라보다 잘 되어 있고, 10년 넘게 블로그를 써온 사람들이 있고 이제는 블로그가 싫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 단문 서비스로 넘어간 사람들도 있는데 누가 새로운 글쓰기 플랫폼을 사용하겠냐는 질문이었죠. 스스로 이 의문을 검증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글을 잘 쓰지만 아직도 블로그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주변을 수소문해 글 잘 쓰는 사람, 잡지 등 외부 매체에 기고하는 사람 중 블로그나 홈페이지가 없는 사람들을 무작정 찾아갔습니다. 당시 우리 사무실은 제주에 있었어요. 그래서 팀을 나누어 하루 동안 육지로 올라와 각각 3~4명씩 인터뷰를 하고 사용자를 관찰했죠. 그들이 글을 쓸 때 어떻게 하는지 직접 보여주거나,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겠지만 일련의 과정을 묘사해달라고 요청했어요. 그런데 서로 약속이라도 하듯이 어떤 패턴이 보이는 거예요.


우선 카페에 가요. 랩탑을 열죠. 온라인이 안되게 한 다음, ‘한글’ 워드 프로세서를 여는 거예요. 저는 회사(카카오)에서 한글을 쓸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너무 생소했어요. 모두가 마치 이걸 안 쓰면 안 되는 것처럼 한글 파일을 연 다음 처음부터 끊김 없이 글을 죽 쓰더군요. 브런치팀은 좋은 글쓰기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새롭고 차별화된 기능을 고민했는데, 이 접근법이 틀렸다는 걸 느꼈어요.


첫 번째, 나는 글쓰기에만 집중하고 싶다. 두 번째, 온라인 서비스를 이용하면 하얀 종이에 글을 쓰는 그 느낌이 들지 않는다. 이렇게 그들의 패턴을 두 가지 이유로 정리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다시 물어봤어요. “당신이 글을 기고한 사이트가 사라질 수도 있고, 여태껏 쓴 글을 보려면 일일이 문서 파일을 열어봐야 하는데, 왜 홈페이지나 블로그를 만들지 않으세요?”


이런 답이 돌아왔어요. “내가 한글로 쓴 글을 잡지 등의 매체에 보내면 그들이 알아서 글을 배치하고 어울리는 이미지를 넣는 등 강약 조절을 잘해줘서 근사하게 보이는데, 내가 블로그에 올리면 그 느낌이 안 나요.” 아, 글 쓰는 사람이 온라인에 글을 쓰지 않는 건 글 때문이 아니라, 다른 요인 때문이라는 힌트를 얻었어요.



브런치 vs. 블로그

‘브런치’라는 이름은 어떻게 정했을까요? 프로젝트 이름과 컨셉을 정할 때, 우리가 뭘 하고 싶은지 이야기를 나눠봤어요. “글만 쓰면, 나머지는 다 알아서 해주는 거지. 개떡같이 써도 찰떡같이 나오게.” “그럼 우리는 여유 있고 느긋하지만 우아하게 나오는 브런치라고 해보자.” 이런 간단한 이유로 이름이 정해졌어요. 똑같은 달걀이라도 집에서 만드는 달걀 프라이와 브런치 카페에서는 플레이팅부터 비주얼이 다르잖아요. 브런치 카페에서 달걀 요리를 예쁘게 내어놓는 것처럼 글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자는 의도로 이름을 정했어요.


©Cayla1/Unsplash


그럼 도대체 블로그와는 무엇이 다르냐는 질문도 많이 받았어요. 이 질문 하나에 대해서만 기획, 개발, 디자인 멤버 모두가 모여 3시간 넘게 대화를 나눈 끝에 브런치는 블로그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어요. 이를 프로젝트 멤버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이해시키기는 쉽지 않았죠.


마침 카카오에는 T500*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요. 카카오 크루 누구나 와서 듣고 질문할 수 있는 자리예요. 당시 브런치 프로젝트가 하려는 바를, 카카오 크루에게 이해시키고 질문도 받아보면 이게 정말 맞는지 알 수 있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죠. 그래서 그 자리에서 블로그와 브런치의 차이점을 이렇게 설명했어요.
* 카카오 전 사원을 대상으로 열리는 비정기 회의 명칭. 화요일(Tuesday) 또는 목요일(Thursday) 오후 다섯 시(5:00)에 열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전사 직원이 온·오프라인으로 참석할 수 있다.


황선아 PM 발표 자료 재구성 / 그래픽: 손현


“블로그는 집을 분양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여러분, 블로그를 개설하면 무엇을 해야 하나요? 먼저 블로그 이름을 지어야죠. 대문도 설정하고요. 기본 이미지가 싫으면 다른 걸로 바꿔야겠죠? 글은 아직 안 썼지만 어떤 주제로 쓸지 카테고리도 미리 만들죠. 좀 허전하면 음악도 달고, 방문자 위젯도 장식해보고요.


이처럼 내가 받은 집의 틀은 똑같지만 좀 더 나아 보이려고 인테리어 작업을 해야 했어요. 글 하나만 쓰면 블로그가 너무 휑해 보이니, 일주일에 하나 정도씩은 포스팅을 하려고 노력하고요. 이렇게 블로그를 다 채워야 내 글이 더 돋보이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우리가 인터뷰했던 작가들은 블로그를 사용하기 힘든 점을 ‘내가 할 수 있는 건 글 쓰는 일 밖에 없는데 가꿔야 할 게 너무 많아서 골치가 아프다’고 표현했어요. 블로그에는 이웃 개념이 있어서 방명록 등에도 반응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자칫 따뜻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줄 수도 있어 부담이라고 덧붙였고요.


집을 분양하는 게 블로그라면, 브런치는 뭘까요? 내 공간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내 작품 하나로 완결성을 갖는 서비스입니다. 작품이 돋보일 수 있도록 주변에 아무것도 두지 않고 오롯이 조명을 비추는 미술관 같은 느낌을 내고 싶어요.


©Aaina Sharma/Unsplash


브런치에 글 외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굳이 이름을 지을 필요도 없고요. 가입하면 바로 글을 써보라고 글쓰기 화면을 제시하죠. 이게 누구의 공간이고, 어떤 카테고리에 속해 있는지 등이 옆에 뜨는 블로그와는 달라요. 오직 글만 나오는 UI를 만들고자 해요.”


마지막으로 예시를 하나 더 들었어요. 만약 연말에 우수 사용자 시상을 한다면 누구에게 해야 할까요? 블로그는 얼마나 꾸준히 글을 썼는지, 방문자 수는 많은지 등 여러 운영 요소를 종합해 선정하고 있죠. 하지만 브런치는 그렇지 않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1년 동안 단 한 편의 글을 썼더라도, 그 글이 대한민국 모두에게 좋은 글로 읽혔다면 그분에게 상을 드리고 싶어요. 우리가 브런치 서비스를 만들면, 오로지 콘텐츠에 집중하는 서비스를 만들 겁니다.”


그제야 프로젝트 팀이 만들고자 하는 브런치 서비스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었어요. 한편 팀원들은 두 달 여의 과정을 매우 힘들어했어요. 내부적으로는 이미 기능적으로 준비를 마친 상황인데 외부에 이 서비스가 블로그인지 아닌지 설명하느라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고 여겼거든요. 다들 ‘이 서비스가 매우 잘될 것 같은데, 왜 이해를 못하지?’라고 생각했던 때였어요. 물론 이제는 그때 여러 질문들을 끝까지 해준 사람들이 가장 고마워요. 카카오에 이렇게 다양하게 토론하는 문화가 없었더라면 브런치는 지금과는 조금 다른 모습일 수도 있어요.



본질에 충실한 디자인과 마케팅

설득 과정을 거치는 두 달 동안 개발자와 디자이너가 놀고만 있을 순 없겠죠? 우리 나름대로 프로토타입(prototype, 시스템의 초기 모형)을 만들어봤어요.


하루는 프로필 페이지를 만들던 중이었어요. 내 프로필 화면에 원하는 요소를 배치하고 이미지도 넣을 수 있는 기능을 넣다 보니 ‘우리가 블로그와 달리 글쓰기에만 신경 쓰면 된다고 말해놓고 꾸며야 하는 메뉴를 제공하면 작가에게 부담을 주지 않을까? 다시 없애자’는 의견이 나왔어요. 그리고 디자이너와 프로필 시안 회의를 잡은 날, 이런 이야기도 한 적이 있어요. “이렇게 글과 이미지가 꽉 찬 시안 말고, 이미지가 하나도 없는 경우를 놓고 최종안을 결정하면 어떨까요? 우리가 글쓰기에만 집중하기로 했으니, 정말 글만 주룩 쓰는 작가라도 괜찮아 보이는 프로필이어야 할 테니까요.” 그때 모두가 동의했어요.


에디터 기능도 많이 뺐어요. 글꼴 옵션을 많이 줄이고 본문형, 제목형 정도로 설정해도 충분하도록 설정했어요. 대신 브런치에서는 무엇을 선택해도 글이 아름답게 보이도록 디자인했어요. 작가가 글을 쓰는 데 신경 쓰이는 건 모두 없애야 한다는 기조 덕분에 의사 결정을 할 때 같은 공감대를 가지고 있어서 좋았어요. 디자인이나 기능 구성 등을 훨씬 수월히 정할 수 있었고, 브런치의 슬로건과 마케팅 메시지를 정할 때에도 별로 고민할 필요가 없었고요.


글이 작품이 되는 공간, 브런치
브런치에 담긴 아름다운 작품을
감상해 보세요.
그리고 다시 꺼내 보세요.
서랍 속 간직하고 있는 글과 감성을.


이처럼 애써 만든 기능을 다 빼는 건 저에게 꽤 놀라운 경험이었어요.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면 아이디어가 많이 떠오르잖아요. 그래서 이 사람, 저 사람 만족시키고자 여러 기능을 덧대다 보면 오히려 서비스의 본질이 무엇인지 아무도 모를 때가 있죠. 처음에는 우리도 사람들이 브런치 서비스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했어요. 틀린 생각이었죠. 거꾸로 플랫폼 서비스를 너무나 잘 아는 회사 사람조차 이해시키지 못하면 일반 사용자도 설득할 수 없다는 걸 느꼈어요. 누군가 서비스의 본질을 물었을 때, 이렇게 전체를 설명하는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기획이 더 뾰족해지고 불필요한 작업을 하지 않아 시간도 절약할 수 있었어요.



서비스 소개는 어떻게 해야 할까

2015년 봄이 되었어요. 이제는 브런치를 세상에 어떤 얼굴로 알려야 할지 고민해야 했어요. 참고로 그 전에는 국내 블로그 또는 해외의 미디엄(Medium) 등의 장문 서비스 중에서 PC에서 쓴 글을 모바일에서도 수정할 수 있는 에디터가 전 세계에 없었어요. 개발자에게는 이 문제 해결이 큰 과제였고, 그걸 해냈어요. 매우 뿌듯했죠. 그럼 서비스를 어떻게 소개하면 좋을까요?


전 세계 최초로 PC에서 쓴 글을 모바일에서도 수정할 수 있는 기능

아름다운 디자인

우수한 SNS 연계성


셋 모두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문득 ‘브런치를 세상에 알릴 때 이런 기능을 이야기하는 게 과연 적합할까’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팀원들에게 물었어요.


만약 브런치가 정말 잘되면 어떤 모습일까? 어떤 모습이면 뿌듯할 거 같아?


각각의 취향은 달랐지만 공통적으로 브런치에 ‘이런 사람’이 와서 글을 쓰면, ‘이런 글’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대답이 나왔어요. 대화를 나누다 보니 모두 브런치가 어떻게 채워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이게 브런치 서비스의 본질이라고 느꼈어요. 글이 가치 있다고 생각해서 시작한 일이니 가치 있는 글을 담을 수 있는 서비스가 되어야 했어요.


우리는 브런치에 담기면 좋을 글을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봤어요. 물론 이 과정이 쉽지는 않았어요. 이미 나온 콘텐츠를 모으는 게 아니라 앞으로 채워질 콘텐츠를 상상해야 했기 때문이죠. 눈에 보이고 읽을 수 있는 글이 있으면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에 조금씩 분야를 정해 또 무작정 100명을 섭외했어요. 그들에게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우리는 글이 갖는 가치를 믿고, 좋은 글이 계속 나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어서 ‘브런치’라는 서비스를 준비 중인데요. 이 서비스가 있다면 쓰고 싶은 글을 한 번 써주시겠어요?


의외로 많은 분들이 동의했어요. 그때 원고료를 준비해서 찾아갔는데, “정말 그런 서비스를 잘 만들어만 준다면, 원고료는 받지 않을게요.”라고 말하는 작가도 많았어요. 100명이 한 달 동안 글을 쓰고, 브런치에 접속하면 오로지 글만 보이게 했어요. 그리고 SNS에 공유할 수 있는 기능까지만 만들어 배포했어요.


마침 우리 팀의 전략이 통했어요. 먼저 제한된 사용자층에게 테스트(CBT, Closed Beta Test) 페이지를 한 달 동안 열어놨어요. 브런치에서 글을 먼저 읽은 사람들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소문을 많이 내고, 작가들도 서비스 취지에 동의해 “제가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라고 소개도 했어요. 그리고 ‘작가 지원하기’ 페이지를 통해 딱 1,000명만 받겠다고 공지했어요. 많은 사람들이 일단 그 안에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예상보다 많은 분들이 응모해주셨고, 작가를 뽑았습니다.


당시 CBT 페이지 (이미지 제공: 브런치팀)


그동안 여러 서비스를 런칭하며 느낀 점이 있어요. 이제는 아무리 서비스가 좋아도 누군가 알아줄 거라는 마음으로 세상에 그냥 내놓는 것만으로는 통하지 않는 시대예요. 누구나 좋은 서비스를 만들 수 있고, 이미 너무나 많은 서비스가 나와있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시작할지에 관한 계획이 꼭 필요해요.



작가 심사 제도를 도입한 이유

오늘 이 자리에 계신 분들, 특히 기획자와 공유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앞서 작가 심사 제도를 말했는데요. 작가 심사 제도는 서비스 런칭을 한 달 앞두고 결정했어요. 미리 계획했다기보다는 꼭 해결해야 하는 문제 앞에 내린 결정이었어요.


문제: 브런치라는 서비스를 세상에 잘 알리지 않으면 아무도 모르고 없어질 텐데 어떻게 소문이 나야 할까?

조건 1: 나는 스팸성 글과 싸울 시간이 없다.

조건 2: 브런치가 3개월 안에 글 좀 쓴다는 사람들도 아는 서비스가 되는 데 집중하고 싶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내린 작가 심사 제도라는 결정이 지금까지 브런치 서비스의 색깔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어요. 우리는 이 서비스가 잘될 거라는 걸 증명하고 싶었어요. 한편 팀의 자원은 한정되어 있었죠. 그동안 다른 사용자 참여 서비스(UGC, User-Generated Contents)를 기획하며 얻은 경험을 통해 모두가 글을 쓸 수 있도록 플랫폼을 열어 놓았을 때 어떤 문제(스팸, 품질에 문제가 있는 글 등)가 벌어질지 예상할 수 있었어요. 브런치가 사용자의 반응을 보며 계속 진화하는 것도 맞지만, 무엇보다 서비스가 제대로 자리 잡는 게 먼저라는 판단을 했어요. 그래서 문제가 없게끔 설계하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했어요. 매우 현실적인 결정이었죠.


한편 이 제도를 통해 작가 풀이 관리되고, 어느 수준 이상의 글이 나오다 보니 독자로부터 “내 취향에 맞지 않는 글은 있지만 적어도 보기 싫거나 안 좋은 글은 없어요. 브런치에 대한 믿음이 생겼어요.”라는 피드백을 받았어요. 글을 좋아하는 사람끼리 모여서 쓸 수 있으니 작가 역시 매우 좋다고 했고요. 나중에는 오히려 이 제도를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전략을 바꾸기도 했어요. 원래 바이럴 마케팅 차원에서 초반 3개월 정도만 유지하고 없애려던 제도가 이제는 브런치를 대표하는 하나의 특징이 되었죠. (웃음) 물론 내부에서 직접 심사하지 않고도, 추천 또는 기존 독자들의 판단 등을 통해 이 문제를 플랫폼으로 해결하려는 고민도 하고 있습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이제야 결과를 가지고 포장해보니 아름답게 보일 수 있지만 당시의 결정 하나하나는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일관된 생각과 철학으로 결정하는 것이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이런 결정 하나하나가 쌓여 서비스가 되더라고요. 즉흥적 결정보다는 서비스에 대한 꼿꼿한 철학을 가지고 대응하다 보면, 비록 임기응변일지라도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었어요.



브런치북 공모전: 작가를 위한 서비스 1

2015년 6월, 드디어 서비스를 정식으로 런칭했어요. 미리 모은 100명의 작가와 더불어 1,000명이 더 모여 1,100명이 6월부터 글을 썼어요. 그 후로 작가 신청을 받았어요. 시작은 잘했는데, 브런치를 본격적으로 알릴 프로모션이 필요했어요. 여러 아이템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지금의 ‘브런치북’이었죠. ‘브런치북’이라는 아이템은 내부에서 가장 처음 나온 아이템인 동시에 가장 먼저 탈락시켰던 아이템이에요.


아니, 글 쓰는 서비스에서 책 공모전? 너무 뻔하지 않아?


브런치북을 제외한 다른 아이디어들을 모아 또 작가들을 찾았어요. 그런데 작가들의 생각은 우리와 달랐어요.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책을 내는 일’의 의미는 누구나 한 번쯤은 넘고 싶은 산과 같더라고요. 그래서 이 문제를 우리답게 풀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첫 번째 브런치북 프로젝트 페이지 (이미지 제공: 브런치팀)


이번 크리스마스에
당신의 글이
책으로 출간됩니다.


돌이켜보면 이렇게 호언장담하는 건 정말 미친 짓이었어요. 물론 저는 그때 이 아이디어를 낸 기획자에게 매우 훌륭한 카피라고 칭찬했었어요. 브런치 제휴 담당자가 제주에서 서울로 올라와 여러 출판사를 만나러 다니면서 정말 많이 거절을 당하기 전까지는요. (웃음) 출판사 입장에서는 누가 어떤 글을 쓸지도 모르는데, 그것도 9월 30일까지 쓴 글을 연말에 책으로 내는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았겠죠. 다행히 몇몇 출판사의 협조 덕분에 이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었어요.


단순히 상금만 주는 공모전을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글에 대한 진정한 지원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거든요. 서점에 갔는데, 내 책이 팔리고 있는 것이 로망이라면 실제로 책을 매대에 놓는 것까지가 우리 목표였어요. 그래서 출판사와 협약을 할 때 몇 가지 조건을 걸었어요. 언제까지는 꼭 출간해야 하고, 신인 작가라도 인세율도 어느 정도 보장되도록 말이죠. 어찌 보면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배짱이었죠.


한편 첫 번째 브런치북 응모가 끝나기도 전에 화제작이 나왔어요. 티거 Jang이라는 작가는 삼성을 다니다가 박차고 나온 이야기를 브런치에 연재했는데, 글마다 SNS에서 꽤 많이 공유되면서 인기를 끌었어요. 티거 Jang을 비롯해 첫 회 수상자 분들의 출간까지 잘 진행되면서 브런치북 2회부터는 파트너 출판사를 구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죠.



브런치 위클리 매거진: 작가를 위한 서비스 2

“글은 어떤 그릇에 담기는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단순한 일기라도 브런치에 글 한편 한편이 쌓이고, 주제로 묶이면 하나의 의미 있는 에세이로 완성된다.”


카카오의 조수용 공동대표도 지난 2018년 11월 27일, 카카오 크리에이터스 데이(Kakao Creators Day 2018)를 통해 일관된 형식(format)이 가진 힘을 강조한 바 있는데요. 저 역시 브런치 서비스를 계속 운영하면서 실제로 형식이 가진 힘이 엄청나다는 생각을 했어요. 글을 글답게 보여주는 형식이 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받고, 더 열심히 쓰게 하는 동기 부여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우리가 브런치북 다음으로 생각한 코너가 브런치 위클리 매거진이에요. 작가들 인터뷰를 하다 보니 말의 앞뒤가 다른 모순이 있더군요. (웃음)


(작가) 나는 마감이 너무 싫어요. 그런데 마감이 없으면 글을 못 쓰겠어요.
(브런치팀) 그럼 브런치가 마감을 드릴까요?
(작가) 그건 잘 모르겠어요.


작가들을 유심히 관찰해보니, 강제적이지 않은 마감이라면 충분히 동기 요인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위클리 매거진은 같은 요일마다 연재하는 컨셉인데요. 비록 연재 자체는 힘든 일이지만, ‘나중에 책을 낼 거라고 생각하면 큰 도움이 된다’는 의견이 있었어요.


브런치의 화면은 다른 미디어와 비슷해 보일 수 있지만, 본질은 플랫폼이자 창작자 지원 시스템이에요. 그래서 위클리 매거진에 꾸준히 글을 쓰면, 브런치팀이 그 카테고리에 어울리는 출판사에 출간을 제안하거나, 출판사가 먼저 글을 보고 판단할 수 있어요. 또는 우리가 12~20회 정도 완성된 원고의 반응 등을 분석해 제공하기도 하고요. 출판사 입장에서는 효과적인 상시 투고 시스템인 거죠. 브런치북이 한꺼번에 응모해 출간작을 선정하는 공모전 시스템이라면, 위클리 매거진은 수시로 글을 쓰면서 출판사와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연결해줘요.



글 쓰는 사람에게만 집중하면 될까?

이런 질문도 받아요. “그럼 브런치가 출판하는 서비스예요?” 그렇진 않고요, 브런치의 타깃은 작가예요. 작가가 하고 싶은 것에 철저하게 맞추다 보니 출판에 관계된 서비스가 많아졌어요. 좋은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 원하는 방향에 맞춰야 독자들이 원하는 좋은 글이 앞으로도 많이 나오잖아요. 이렇게 브런치만의 특징을 단단히 만들어 나갈 예정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많은 책이 나왔어요.


1회~5회 브런치북 수상 목록 (자료 제공: 브런치팀)


브런치북에서 수상한 작품 외에도 작가의 글이 매우 좋아서 출판사가 따로 연락한 경우도 많아요.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을 쓴 정문정 작가의 경우, 브런치에 쓴 글이 여기저기 퍼지면서 출간 전부터 화제였어요. 결국 출간 이틀 만에 1쇄가 다 팔릴 정도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작가와의 만남도 진행했어요.


사실 정문정 작가는 출간하기까지 꽤 힘든 과정을 겪었어요. (잡지 기자, <대학내일> 디지털 미디어 편집장 등을 거치면서) 이미 트렌드를 알고 있고, 그 트렌드에 맞게 글을 쓸 수도 있는데 출판사로부터 다 거절당했거든요. ‘김연아급이 아니면 누가 에세이를 사겠어요? 안돼요’, ‘인스타그램 팔로워 몇 명 이상이면 책을 내줄게요’ 등 너무 거절을 많이 당해 속상했다고 해요.


한편 온라인에서는 자신이 쓴 글의 반응을 바로 알 수 있고 소문이 나잖아요. 스스로 증명한 거죠. 브런치라는 플랫폼을 통해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다는 걸요. 정문정 작가가 쓴 ‘저를 발견해주셔서 고맙습니다’라는 글도 함께 추천합니다.


정문정 작가처럼 새롭게 발견되고, 기회로 연결되는 사례가 많아요. 티거 Jang장은 아예 업을 바꿔 ‘퇴사학교’를 차렸죠. 브런치에 가장 많이 들어오는 문의가 있어요. “우리는 OOO한 일을 하는 곳인데요. OOO한 일을 하거나 경험이 있는 작가를 연결·추천해주세요.” 그러면 정말 기쁜 마음으로 연결해드려요.

여기까지가 브런치의 첫 번째 단계입니다. 브런치는 글이 작품이 되고, 작가는 글을 쓰는 데에만 집중하면 되는 플랫폼을 구축했어요.



브런치, 지속 가능할 수 있을까

두 번째 단계의 고민은 지속 가능성입니다. 2015년부터 유지한 슬로건이 ‘글이 작품이 되는 공간’이었다면, 2018년 키워드는 ‘기회의 연결’이었어요. 정문정 작가가 쓴 글의 제목(저를 발견해주셔서 고맙습니다)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작가들이 더 많은 사람에게 발견되고, 적합한 사람에게 연결될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 그러면 작가들이 계속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할 일을 다하려면, 발견이 특정 작가에게만 일어나는 기쁜 일이 아니라 브런치에서는 항상 일어나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누군가를 책을 내고 강연을 하고, 누군가는 기고를 하고, 누군가는 직업을 바꿀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브런치 작가 프로필 페이지를 작가들의 링크드인(LinkedIn)처럼 개편했습니다. 디자이너에게는 비핸스(Behance)가 있는 것처럼 말이죠.


아래 사진의 왼쪽은 기존 프로필이에요. 처음에 이야기했던 내용 기억나시나요? 이미지가 전혀 없는 사람의 프로필이어도 문제가 없도록 심플했어요. 그런데 두 번째 단계에서는 마음을 바꿨어요. 개선된 프로필은 좀 더 포트폴리오처럼 보여요. 이제는 작가를 외부와 연결해주고, 기회도 만들어야 좋은 글을 지속적으로 쓸 수 있으니까요. 물론 여기서도 처음에 가진 기조는 유지했어요. 작가가 별 고민을 안 하도록 브런치팀이 알아서 데이터를 넣고, 작가는 자신의 프로필 또는 글의 주제와 연관된 키워드를 고르기만 하면 되는 식으로요. 요즘은 대부분의 작가들이 가운데와 같은 프로필을 가지고 있어요.


왼쪽: 개편 전 프로필 / 중앙: 개편 후 프로필 / 오른쪽: 개편 후 제안하기 화면 (이미지 제공: 브런치팀)


제안과 검색 기능도 강화했어요. 이제 메일 버튼을 누르면, 작가에게 무언가를 제안할 수 있어요. 기왕이면 작가에게 직접 말을 건네는 것처럼 ‘연결’이 매끄럽도록 했어요. 가령 제안 화면에서 작가의 사진이 좀 더 크게 보이도록 하는 식으로요. 그리고 요리나 에세이 태그를 누르면 해당 태그의 작가들을 한 번에 찾을 수 있도록 했어요.


작가를 찾는다

이 작가가 누구인지 알 수 있다

기회를 제안할 수 있다


2018년에는 이렇게 진행되도록 신경을 많이 썼고, 연계한 프로모션도 기획했습니다. 그리고 2019년 1월 13일, 브런치북 6회 응모가 끝났어요. 지난 5회까지 브런치가 출판사와 파트너십을 유지하며 출판을 보장했다면, 이번에는 10명의 에디터를 섭외해 같이 진행하고 있어요. 왜 이걸 했을까요?


앞서 두 번째 단계의 고민이 지속 가능성이라고 했죠. 브런치북 공모전의 의의가 단순히 ‘출간’에 그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가와 독자들의 많은 사랑 덕에 첫 3년을 잘 넘겼으니 이제는 출간된 책이 더 많은 사람에게 읽히는 것까지도 신경을 써보자고 목표를 정했어요.


여섯 번째 브런치북의 프로젝트 페이지를 보시면 알겠지만, 이번에는 에디터 10명이 각각 브런치북 수상 작가를 한 명씩 선정해요. 그리고 에디터가 선정한 작가와 함께 책을 기획하고 편집하는 과정 전부를 책임지는 시스템을 처음 도입해봤어요. 이게 얼마나 성공적일지 올해 상반기까지 봐야 하겠죠? 전문가와의 협업을 통해 브런치 작가들의 책이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읽히기를 바랍니다.



세상에 감동과 영감을 줄 수 있도록

브런치팀이 쓰는 사내 게시판이 있는데요. 거기에는 2016년 팀원 모두가 모여 도출한 서비스 미션이 적혀 있어요.


작가가 지속적으로 창작 활동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세상에 감동과 영감을 줄 수 있도록 한다


그동안 브런치가 지속적인 창작을 위한 환경을 만드는 데 신경 썼다면, 아직 세상에 감동과 영감까지 주지는 못한 것 같아요. 그래서 2019년에는 브런치를 더 널리 알리고 퍼뜨리는 일에 집중하고자 합니다. 단순히 브런치를 광고(advertising)하겠다는 의미는 아니에요. 그보다는 브런치라는 브랜드와 사람들의 관계를 향상하는 홍보(PR) 또는 브랜딩에 가깝겠죠.


작가들이 “브런치에서 글을 씁니다. 저는 브런치 작가예요.”라고 했을 때, ‘브런치’ 자체의 후광 효과가 있으려면 더 많은 사람들이 브런치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하면 브런치의 글을 입맛에 맞게 잘 읽을 수 있을까, 라는 고민도 있고요. 올해 가장 집중하려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광화문 북바이북 ©손현


2019년에는 아마 오프라인 곳곳에서도 브런치를 만나보실 수 있을 겁니다. 이곳 북바이북에도 브런치 작가들의 책이 꽤 많은데요, 책을 자세히 보셔야 (브런치 작가라는 걸) 알 수 있었죠. 앞으로는 ‘브런치 작가’라는 걸 더 잘 느낄 수 있도록 브랜딩 작업에 더 신경 쓰려고 합니다.


브런치북과 같은 연 1~2회 공모전, 위클리 매거진을 비롯한 상시 프로그램 등 더욱 다양한 프로그램과 혜택, 기회를 더 많은 사람들이 언제나 접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더 정교히 다듬는 중이에요. 올해에도 브런치를 많이 지지하고 응원해주세요.


제가 오늘 준비한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감사합니다. (끝)



구체적인 기획 과정이 궁금한 사람을 위한 부록

당시 브런치 서비스의 탄생에 참여했던 실무자의 회고록 두 편을 첨부합니다. 첫 글은 '누구'의 '어떤 문제'를 정의하고 있으며, 다음 글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풀이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이 글 역시 분량이 만만치 않습니다. 적당한 당분을 섭취하신 후 읽으시는 것을 권합니다. 오성진 기획자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 글이 작품이 되는 공간, 브런치. 탄생과 성장 스토리 by 카카오 브런치 기획자 황선아 총괄 PM (2019.1.24 / 광화문 북바이북)

강연: 황선아

정리: 손현, 김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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