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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런치스토리팀 Aug 19. 2019

마시면, 씁니다 #마시즘, 음료 덕후의 에디팅

김신철 (마시즘 에디터)

인파가 가득한 거리를 홀로 걷는다. 누구를 만나지도, 인사를 나누지도 않는다. 그가 원하는 것은 오직 하나. 편의점에 새로 나온 음료뿐이다. 오늘도 음료 코너에서 신상 음료를 장바구니에 검거한다. 편돌이는 외친다. 그는 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음료 신상털이 마시즘이다.



그런데, 마시즘이 뭐야?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 대한민국 최고의 음료 미디어 '마시즘'에서 음료 덕후이자 에디터로 일하는 방식을 공개하라니. 분명 새로 나온 음료를 마시고 희희낙락하며 키보드를 두드리는 모습을 상상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방금도 제대로 된 복숭아 음료의 맛을 표현하기 위해 여러 복숭아 음료들을 마셨는데, 저녁으로 먹은 갈비탕에서 복숭아 향을 느껴버렸다. 이런 게 바로 직업의 무게가 아닐까(양치를 하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나의 일은 주위 사람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되곤 한다. 주된 반응은 '근무 시간인데 술 마시고 있다며', '하루 종일 커피만 마시다 왔다며', '콜라 무한 리필이 가능하다며', '그렇다면 한량과 다를 바 없다며' 정도로 압축할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이 빠졌다. 마시즘의 에디터라는 일은 무언가를 마시면 써야 한다. 들숨과 날숨 같은 거랄까?



생활 밀착형 덕질을 추구합니다


스파이와 마시즘 에디터의 공통점. 그것은 보통 사람들 눈에는 할 일 없는 백수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출근 시간이나 업무 시간에 동네 편의점을 돌아다니면서 음료 코너에 우두커니 서 있는 사람을 보면 부처님도 혀를 끌끌 찰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알지 못하겠지. 나는 지금 마트와 편의점들의 음료 재고와 종류, 신상 리스트 그리고 할인 정보를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을. 


마치 ‘포켓몬고’를 할 때의 느낌이랄까? 마셔본 적 없는 음료를 찾기 위해 음료를 팔만한 곳들을 돌아다닌다. 편의점마다 점장의 발주 혹은 PB상품으로 가지고 있는 음료가 다르고, 마트는 오히려 주요 유통망에서 벗어난 제품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시골 동네의 구멍가게, 할머니의 장롱 같은 곳은 사라진 전설의 음료를 만날 수 있어 기대가 된다. 물론 마셔도 되는지는 모르겠다.


이런 생활을 2년 동안 하다 보니 600여 개의 음료를 만났고, 수집욕은 해외로 뻗어나갔다. 해외 직구 서비스를 이용기도 하고, 택배를 기다리기 힘들 때는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신상 음료를 사 오기도 했다. 이제는 해외에 거주하는 많은 팬(이라고 쓰고 요원이라고 부른다)들이 그곳의 음료를 보내주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1985년 미국에서 79일 동안만 판매되었던 ‘뉴 코크’가 바다를 건너 손에 들어와서 소리를 질렀다. 엄마 보고 있나요. 허구한 날 콜라만 마신다고 걱정하셨는데, 뉴 코크가 왔어요!


누가 마감 소리를 내었는가


하지만 ‘마시면 써야 한다’. 이 간단한 규칙이 마시즘에 콘텐츠를 만들어주고 나를 덕후에서 에디터로 진화시키고 있다. 콘텐츠를 만드는 과정은 즐거우면서 동시에 고통스럽다. 마감은 다가오는데 막상 이야기를 하려고 보면 어떤 것을 설명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그럴 때마다 어렸을 때 보았던 <태조 왕건>의 궁예를 떠올리곤 한다. 그렇다. 관심법이다.


음료에는 각각 ‘인상’이 있다. 그것은 그저 맛 때문일 수도 있고, 가격이나 디자인 때문일 수도 있다. 혹은 음료와의 추억 내지는 역사적인 사건일 가능성도 있다. 호기심을 가지고 음료의 면면을 보다 보면 캐릭터 즉 ‘인상’이 만들어진다. ‘이 음료는 목욕탕 죽돌이야’, ‘얘는 작년에 나왔는데 아직도 신상 음료 칸이네 유급인가?’, ‘커피로 위장한 보리차다’ 같은 이야기들이 떠오른다. 궁예 선생님 보고 계신가요?


그 뒤로는 그냥 쓰는 거다. 기술적인 완성도도 중요하지만, 방금 알게 된 음료의 감동을 식기 전에 전달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정보성이나 때깔도 중요하지만 ‘마시즘’ 같은 덕력 기반 미디어는 덕후의 즐거움을 더 담아야 한다랄까? 때문에 다른 에디터분들이 단련된 보디빌더라면, 마시즘은 군살이 가득한 일반인 같다. 그런데 그 군살이 매력적인 아이러니한 콘텐츠 톤을 가졌다. 글도 사진도 영상도 … 최선을 다 해 대충 쓴 거 같은 느낌이다.



덕질과 직업은 공존할 수 있을까


덕업일치. 많은 이들이 부러워하면서도, 두려워하는 길이다. 인생에서 유일한 재미를 주는 취미가 직업이 되는 순간 가장 많은 압박과 스트레스를 주기 때문이다. 한 여름밤에 휴양지에서 꾸는 군입대의 꿈처럼 좋자고 시작한 일이 고통으로 다가온다.


나 또한 일에 있어서는 줄넘기하듯 슬럼프도 찾아온다. 그럴 때는 좋아했던 음료를 기억하는 편이다. 또는 음료가 일처럼 느껴질 때를 대비해 다른 취미를 고르기도 했다. 음료 브랜드 콜라보 옷을 사는 것이다. ‘일단 쇼핑은 즐겁다. 돈이 없어지면 굶는다. 일을 해야 한다. 아 음료가 일도 취미도 아닌 생명줄이었구나.’ 식으로 슬럼프를 극복한다.


애초에 에디터란 직업은 자신이 만들어가는 콘텐츠에 덕력을 담을 수밖에 없다. 주름 빨대의 탄생이 키가 작아 빨대에 입이 닿지 않는 딸을 위해 만든 선물이란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처럼. 별 것 아니어 보이는 사물과 일상도 자세히 알아보면 좋아할 수밖에 없다. 취미가 일로 변한 게 아니라 일 안에서도 취미의 영역과 일의 영역이 좋은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 음료가 취미이자 직업이자 일상이 되어버린 자아실현의 영역에 도달한 것이다.


이렇게 마시다간 뭔가 될 것 같아


오직 나의 취미를 위해서 시작한 일이 이제는 너무 커져 버렸다. 각자 취향이 다르지만 음료를 좋아하는 동료들이 있고, 음료에 관한 콘텐츠를 기다리고 제보하는 독자들도 생겼다. 동시에 해야 할 일도 늘고 있다. 음료 도감을 만든다거나, 아예 새로운 음료를 만들어 보자는 그림들도 나온다. 나는 힘든 일을 시키면 어쩌지 걱정하면서도 일단 열심히 마시고 있다.


열심히 마시고 썼지만, 이제야 ‘마시즘(마시다+ism)’이라는 이름의 의미를 돌아본다. 만약 우리가 일상에서 가장 많이 하는 행동인 ‘무언가를 마시는 일’이 즐거워진다면, 인생은 얼마나 행복해질까? 이제는 그런 일을 꿈꾸며 마시고, 또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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