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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민 Oct 31. 2023

41. 경남 인재개발원 강의의뢰

강의 의뢰 방식은 여러 가지다. 페이스북 같은 SNS를 보고 의뢰하거나, 강의를 들었던 사람 또는 불러줬던 사람이 연결해 주기도 한다. 아는 이들이 불러주기도 하고, 이래저래 인연으로 얽혀있는 것이 강의다. SNS를 통해 학교폭력 강의를 가기도 했고, 진주시 SNS 서포터즈 대상 강의도 했다.      


2016년 1월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모르는 번호는 잘 받지 않는 편인데 강의를 시작하고 나서는 혹시나 하는 맘에 받기도 한다. 전화한 사람은 진주시 SNS서포터즈 강의 때 수강한 사람 중 하나였다. 창원시청 공무원이었는데 내 강의가 인상 깊었다고 다른 강의 의뢰를 위해서 전화했다고 했다. 이렇게도 연결이 되는구나 싶었고 어떤 강의인지 궁금했다. 그는 내게 혹시 사이버 범죄에 관한 강의도 하냐고 물었다. 3월에 경남 인재개발원에서 강의해 줬으면 한다고 했다. 인재개발원은 경남 내 공무원들을 교육하는 곳이다. 구미가 당겼다. 3월이면 기간이 좀 남았기에 공부해서라도 해보고 싶었다. 이런 기회가 흔치 않았기에 더 그랬다. 잠시 생각하다가 의뢰를 수락했다.      


전화를 끊고 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모르는 것은 하지 않는다’라는 강의에 대한 철칙이 있었기 때문이다. 강의 중 질문이 들어왔을 때 답변하지 못하게 되면 그동안 쌓아온 강사로서 이미지가 날아갈 수도 있는 일이었다. 담당자에게도 민폐 끼칠지도 몰랐다. 죄송하지만 강의를 거절하기 위해 전화 버튼을 누르려 했다. 너무 하고 싶은 마음과 하면 안 된다는 마음이 충돌했다. 갈등 끝에 결국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두 달 남았으니 ‘공부 한번 해 보자.’ 맘먹었다. 사이버 범죄 관련 책을 사고 경찰 내부 사이버 강의를 들었다. 무엇을 알려주는 게 좋을지 여기저기 관련 자료들을 수집했다. 생각한 것보다 훨씬 유익한 내용이 될 것 같았다. 나도 모르는 것들이 많았고 알면 도움 되는 것들이 무궁무진했다. 내가 수강생이 되었을 때 ‘무엇이 궁금할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봤다. 질문자 입장이 되어보니 물어볼 것들이 보였다. 그렇게 답변자료를 찾아가며 하나하나 만들어갔다. 경찰이다 보니 풍부한 사례를 찾을 수 있는 점은 좋았다.      


준비가 끝났다. 2시간 분량의 자료를 만들었다. 3시간짜리 강의도 충분할 듯했다. PPT를 돌려가며 몇 번을 연습했다. 내 것으로 만들려면 화면을 보지 않고도 순서를 외울 정도가 되어야 했다. 프린트물을 뽑아 출퇴근 기차에서 계속 암기했다. 그리고 약속한 3월이 되었다. 경남 인재개발원은 진주에 있다. 진주로 향하는 길은 봄기운이 가득했지만, 내 맘은 걱정과 긴장으로 가득 찼다. 그래서 그런지 예정 시간보다 1시간 일찍 도착했다.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강의장은 한산했다. 컴퓨터에 자료를 띄워놓고 놓친 것은 없는지 다시 한번 점검했다.      

사람들이 하나둘 들어왔다. 대상 인원은 24명이었다. 딱 적절한 인원이라 생각했다. 그들의 얼굴엔 기대감이라곤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당연한 것이 제목부터가 사이버 범죄 예방이고 강사가 경찰이다. 지루할 것이 뻔해 보이는 강의라 생각하는 듯했다. 그 생각을 깨기 위해 준비한 것들을 꺼냈다. 재미있는 자기소개, 아이스 브레이킹 기법, 사이버 안전도 테스트 등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 수 있었다. 그 후는 순탄하게 이어졌다. 지루한 구간도 있었지만 풍부한 사례로 다시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었다. 적절한 긴장과 재미로 2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질문이 몇 개 있었지만 공부한 내용 안에서 충분히 답변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렇게 두 달여간 공들인 강의가 무사히 끝났다. 포기하지 않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강의 평가도 괜찮아서 8년째 연을 맺고 있다.


 이제는 진주 가는 길에 여유도 느낄 수 있다. 만약 그때 전화기 버튼을 눌렸더라면 마음은 편했을지 몰라도 지금 같은 발전은 없었을 것이다. 그 후 사이버 범죄 예방 글도 쓰고 유튜브도 찍고 있다. 또다시 선택의 길이 온다면 불가능할 것 같더라도 우선 가능한 방법을 먼저 찾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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