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종민 Dec 02. 2023

47. 나는 아닐 줄 알았다

'긍정의 끝판왕'. 나는 이 말을 자주 듣는다. 그렇다고 터무니없는 일까지 해낼 수 있다고 달려드는 것은 아니다. 단지 어떤 상황이 주어졌을 때 대체로 긍정적으로 해석할 뿐이다. 예를 들어 운동장 열 바퀴를 돌아야 한다면 두 바퀴 정도 돌았을 때 '아직 여덟 바퀴나 남았네'라고 하기보다 '벌써 두 바퀴나 돌았네'라고 생각한다. 교통사고가 났을 때도 '다치지 않았으면 된 거다. 이번 일로 조심하게 되어 더 큰 사고를 막을 수 있는 거니 너무 걱정하지 말자.'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보니 '우울증'이라는 단어는 먼 나라 언어 정도로 생각했다. 우울한 사람들을 봤을 때 그들은 의지가 약한 거라고 생각했다.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텐데 '왜 노력하지 않을까?'라며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 녀석이 나에게 찾아왔다. 2022년 봄은 이상기온 때문인지 온도가 영하로 내려가는 날이 많았다. 따뜻하고 포근한 봄바람을 기대했는데 찬바람을 계속 맞아서 그런지 이상하게 마음도 시렸다. 그땐 그게 뭔지 몰랐다. 출근 때부터 커다란 돌덩어리가 가슴에 들어가 콱 틀어막힌듯 답답했다. 날숨을 크게 뱉으면 괜찮아지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더 갑갑해졌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경찰서 옆 정자에 앉아 바람을 쐬며 진정시켜보려 했지만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퇴근하면 괜찮아지려나?'싶었지만 오히려 숨이 더 막혔다. 내일이면 괜찮아질 거라 믿었는데 3일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았다. 갈수록 마음도 이상해졌다. 무기력하게 멍 때리는 시간이 잦아졌고 모든 일이 재미없어졌다. 심각함을 느꼈던 건 축구를 하고 나서다. 


나는 축구에 미쳤다는 소릴 들을 정도로 공 차는 걸 좋아한다. 조기 축구회도 두 군데나 가입했고 회사 직원들과도 풋살을 하는 등 일주일에 3번 공을 찰 정도로 축구를 좋아했다. 그라운드를 누비며 공을 차면 속이 뻥 뚫리는 것 같고 하루하루 실력이 늘어가는 것이 매력이다. 일주일 전부터 주말 날씨를 체크할 정도로 축구에 미쳐 있었다. 그런데 그라운드를 뛰고 있는데도 가슴이 여전히 답답했다. 분명 재미있어야 하는데 아무런 감흥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때서야 일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처음엔 단순히 봄 타는 줄 알았다. 아니면 '혹시 갱년기인 건가?'라고도 생각해 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겪고 있는 현상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까지도 우울증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녀석과 어울리는 놈이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원인을 생각해 봤다. 당시 직장협의회장을 하면서 믿었던 측근으로부터 배신을 당해 피가 머리끝까지 솟구친 적이 있었는데 그것이 기폭제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살면서 내가 강하다는 생각에 다른 이들의 아픔까지 짊어진 적이 많았는데 그것 또한 누적이 되어왔던 것 같다. 기폭제가 심지에 불을 댕겼고 내 마음이 그것을 이기지 못하고 폭발해 버린 것이다. 즉 '번 아웃'이 온 것이었다.       


내가 내 마음을 컨트롤할 수 없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었다. 특히 매일 찾아오는 밤이 두려웠다. 새벽에 출근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가족들을 깨울까 봐 방을 혼자 써왔는데 그 혼자인 밤이 고통스러웠다. 잠이 오지 않았고 오만가지 부정적인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공격했다. 생각하지 않으려 머리를 흔들어봐도 소용없었다. 그동안 긍정적이었던 나를 비웃는 듯했다. 잠들지 못하는 밤은 너무 길었다. 잠들지 못한 4일째 되는 날 내 몰골은 사람일까 싶을 정도로 피폐해졌고 살도 4kg이나 빠졌다. 낮엔 피로와 우울한 맘으로 괴로워했고 밤이 찾아오는 것에 대한 두려움까지 미칠 것만 같았다. 순간 이 고통을 없애는 길은 생을 포기하는 방법밖에는 없겠다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아 그들이 왜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 알 것 같았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벗어나고 싶었던 거구나' 순간 깜짝 놀랐다. '그토록 삶을 사랑했던 내가 이런 생각을 한다고?' 믿을 수 없었다. 벗어나고 싶었고, '뭐라도 해야겠다' 싶었다. 


살고 싶었다. 아직 해야 할 것이 많았고 이 세상을 더 누리고 싶었다. 2주째 되던 날부터 살기 위한 몸부림을 시작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46. 전국 경찰 직장협의회 준비위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