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종민 Dec 09. 2023

48. 자존감 올리기 프로젝트

며칠간 잠도 못 자고 입맛도 없어 살이 많이 빠졌다. 모든 게 재미없으니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하지만, 나는 누구보다 삶에 대한 의욕이 강했다. 하고 싶은 것도 많았고 이대로 굴복하긴 싫었다. 하루는 어깨가 아파 집 근처 친구가 원장으로 있는 한의원에 갔다. 침을 맞으며 내 이야기를 하니 공황장애 증상과 비슷하다면서 약을 지어졌다. 약을 먹으면 조금 괜찮아질 거라 말했다. 우습게도 약이 있으니 살짝 마음이 편해졌다. 그만큼 그 상황을 돌파하고 싶었다. 약에만 의존하면 안 될 거 같아 일단 집 밖으로 나갔다. 햇볕을 쐬며 걷는 것이 우울증에 좋다는 것을 들은 적 있기 때문이다. 아무 생각하지 않고 그냥 걸었다. 걷다가 힘들면 벤치에 앉아 멍하니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봤다. 효과가 있었다. 그 순간은 울렁대던 가슴이 진정되는 거 같았다.  

   

일전에 읽었던 책에서 마음이 힘들 때 책에서 위안을 얻었다는 내용이 생각났다. 검색해보니 ‘자존감 수업’이라는 책이 있었다. 제목에 끌려 별다른 고민 없이 바로 구매했다. 몇 페이지 읽지도 않았는데 ‘아!’ 소리를 질렀다. 내 증상과 비슷한 내용이 나왔다. 그렇게 된 이유도 나왔다. 갑자기 희망이 보였다. ‘이유가 있으면 고칠 방법도 있겠구나!’ 온종일 그 책에 매달렸다. 간절했다. ‘내가 이상한 게 아니었구나!’라는 생각만으로도 좋아졌다. 이유를 알았다. 쉼 없이 달려온 내 마음이 지쳤던 거다. 나는 아프지 않을 거란 생각이 오히려 나를 아프게 했던 거다. 달라져야 했다. ‘아프다고 말하고 도와달라고 말해야겠다.’ 맘먹었다.      


가장 먼저 나 자신을 바꾸기로 했다. 더러운 책상이 보였다. 버릴 수 있는 것들을 모두 내다 버렸다. 낡아 버린 휴대폰 케이스도 바꿨다. 지저분한 머리도 정리해야겠다 싶었다. 마침 조기 축구회에 미용실을 운영하는 동생이 있어 그의 가게에 갔다. “내가 봄을 타는 것 같아 마음이 힘든데 머리 스타일을 완전히 바꾸고 싶은데. 나에게 어울릴 것 같은 머리 스타일로 바꿔줄 수 있을까?” 동생에게 물었다. 도움을 요청한 대가로 나는 그날 그동안과 다른 멋진 스타일을 얻었다. 스타일 관리하는 방법까지 덤으로 배웠다. 다음은 옷을 사러 갔다. 책 내용 중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지 말고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의 옷을 입어라’라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원하는 것을 살 용기가 없었다. 과감해지고 싶었다. 한 번도 입어본 적 없는 스타일인 카고 조거 팬츠를 샀다. 스스로 코디한 옷을 입고 출근했는데, 직원 중 한 사람이 이전 스타일보다 훨씬 괜찮다고 해서 자존감이 플러스 되는 듯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가족, 친구, 직장 동료, 축구 동호회 감독에게 마음이 힘들다고 도와달라고 했다. “아빠는 부끄럽게 아픈 것을 말하고 다녀?”라고 핀잔을 줬다. “아프니까! 죽을 것 같으니까 살고 싶어서 그런 거라고!” 화내며 말했다. 그들의 도움에 나는 서서히 회복되어 갔다. 친구들은 안부를 물어주고 직장 동료들은 힘내라며 커피 쿠폰을 보내줬다. 축구 동호회 감독은 공격수 포지션을 맡겨 주었다. 골을 넣을 때마다 자존감이 올라가는 것 같았다. 모두 고마웠다.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든든했다. 뭔가를 해주지 않아도 따뜻한 마음이 나를 변하게 했다.      


‘자존감 수업’ 이후 몇 권의 책을 더 읽었고 그 책들에 나온 내용대로 행동했다. 아침에 일어나 나에게 사랑한다 말해줬고, 자기 전에 수고했다고 잘 했다고 위로해줬다. 나에게 전하는 말을 녹음해 운전할 때 들었다. 신기하게도 나에게 말하는 내 목소리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눈물이 났다. 그렇게 서서히 마음의 병이 치료되었다. 그리고 더 단단해졌다. 

매거진의 이전글 47. 나는 아닐 줄 알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