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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민 Aug 26. 2024

71. '가슴 뛰는 삶'이 없다?

'가슴이 뛴다'는 표현이 있다. 어떨 때 사용하게 될까? 어릴 땐 부모님과 놀러 갈 때, 새로운 친구들을 사귈 때, 좋아하는 아이를 볼 때일 것이다. 어른이 되어서는 합격 발표를 기다릴 때, 내 아이를 처음으로 만날 때, 첫 출근날,  사랑하는 이를 만나러 갈 때 등일 것이다.

생각해 보면 평상시에도 늘 가슴이 뛰고 있다. 가슴이 뛰지 않으면 사람은 죽는다. 그런데 왜 저런 표현을 사용하는 걸까? '가슴이 뛴다'라는 표현은 숨을 쉬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숨 쉬는 것에 '설렘'이 동반되어야 그 표현이 제 기능을 갖게 된다.


언제 마지막으로 가슴이 크게 뛰어봤는지 생각해 보자. 아이였을 때는 가슴 뛸 일이 참 많았다. 어른이 되면서 일상이 단조로워지고 모든 것이 당연해져 간다. 설렘을 느끼려면 큰 자극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어쩌면 도박, 술, 담배, 성 등도 자극이 필요해서인지도 모른다. 설렘이 없는 삶은 무료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설렘은 꼭 자극적인 상황에 놓여야 느낄 수 있는 걸까? 아니다. 내 일상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널려있다. 단지 내가 그것을 느끼지 못할 뿐이다. 너무 익숙해져서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살뿐이다. 나는 '사우나, 책 읽기, 혼자 카페 가기, 축구하기 등'을 좋아한다. 설렘은 항상 무언가를 하기 전에 찾아온다.


새로운 책을 읽을 때면 오늘은 어떤 '신기한, 재미있는, 아하 할 만한' 내용들이 있을까? 축구하러 가기 전엔 '오늘 골을 넣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상만으로도 벌써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나는 40대 중반임에도 아직 '가슴 뛰는 일'이 많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내 글을 읽어줄 사람들 때문에 설레는 중이다.   


100세 시대에 들어섰고, 평균 80세까지는 산다고 한다. 그 긴 인생의 4분의 1 지점에서 우린 어른이 되어야 한다. 어쩌면 이런 사회의 기대가 우리의 설렘을 앗아 갔는지도 모른다. 아직 우리 맘속엔 아이의 마음이 남아있다. 그러니 좋아하는 것을 눈치 보지 말고 맘껏 좋아하고 내 마음의 소리에 관심을 기울여보자. '가슴 뛰는 삶'은 늘 나와 함께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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