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위직’이라는 표현이 있다. 조직 안에서 직책을 구분하기 위해 만들어진 말이지만, 가볍게 넘기기엔 꽤 무서운 단어다. 이 단어를 스스로 받아들이는 순간, 사람은 그 범주 안에 자신을 가두게 된다. 문제는 그때부터다. 한 번 정해진 인식은 생각보다 쉽게 깨지지 않는다.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은 의식이다. 자신을 ‘하위직’으로 인식하기 시작하면, 일보다 대우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나는 더 대접받아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자리 잡는다. 그 순간부터 위에 있는 사람들은 동료나 선배가 아니라, 나를 억누르는 존재로 보이기 시작한다. 분노는 그렇게 자라난다.
이들은 조직 내 모든 상사를 적으로 규정한다. 함께 성장해야 할 관계임에도, 상사는 자신을 부품처럼 취급한다고 믿는다. 반발심은 커지고,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뭉친다. 동지가 생기면 사고는 더 단단해지고, 동시에 더 좁아진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들은 동료들과도 쉽게 어울리지 못한다. 자신이 곧 정의라고 믿기 때문이다. 동조하지 않는 사람은 모두 적이 된다. 스스로를 불의에 맞서는 투사로 여기기에, 적이 많아질수록 투쟁의 의지는 오히려 더 불타오른다.
조직에 생긴 변화조차 “우리가 싸워서 얻어낸 결과”라고 해석한다. 그렇게 전쟁은 계속된다. 그러나 그 싸움의 소음 속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사람들은 늘 가까이에 있는 평범한 동료들이다. 정작 당사자들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반면, 대부분의 직원들은 자신을 ‘하위직’이라는 틀에 가두지 않는다. 그들은 스스로를 조직의 한 구성원으로 인식하고, 자신의 역할에 자부심을 가진다. 누가 무엇을 해주지 않는다고 불평하기보다, 지금 이 자리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을 찾는다. 배울 것을 배우고, 익힐 것을 익히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그렇게 성장한다.
결국 조직의 부품이 되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직급이 아니라 선택의 문제다. 누군가가 먼저 나를 인정해줘야 한다고 믿는 순간, 우리는 이미 ‘하위직’이라는 길 위에 서 있다. 반대로, 내가 나를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그 길은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
‘하위직’이라는 단어가 무서운 이유는, 그 말이 우리를 낮추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그 말에 스스로를 가두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