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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통해 보이는 투명한 삶

by 이용현

올해 내게는 비켜갔지만 타인에게는 비켜가지 못한 좋지 않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문창과를 나와 글을 잘 쓴다는 친구를 소개받고는 친해지고 싶었던 친구가 직장 동료의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자살로 세상을 떠났고, 건너 알던 회사 동료의 어머니가 7월, 광명 아파트 주차창에서 발생한 화재로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렇듯 타인의 죽음을 목도하면 역시나 나의 죽음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니체인가요. 쇼펜하우어인가요. 기억이 흐릿한데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이 장례식장에 다녀오면 그에 대한 슬픔의 대한 애도보다 문 밖을 걸어 나오며 아직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게 된다고.

타인의 죽음을 통해 나의 삶을 투영하게 된다는 말이 맞았습니다. 아, 나는 아직 살아 있구나 하는 안도. 그러면서 다행이라고 하면서도, 며칠 뒤 그 감사함을 망각한 채 영원을 살 것처럼 욕심과 투정으로 사는 어리석은 우리의 모습에 입술을 깨물어봅니다.


오래전부터 저는 죽음을 생각해 왔습니다. 너는 어린애가 무슨 죽음을 생각하냐고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내가 영원히 살 것 같지 않았습니다. 내게 사랑을 주던 이웃집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느닷없이 동생이 세상을 떠나고, 이렇게 죽음은 늘 가까이 있었기에 죽음은 제가 그리 거북하고 부정적인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삶의 하나. 살아 있는 것의 반대말인 죽어가는 것. 단순하게 생각했습니다.


죽음을 생각하고 사는 것과 죽음을 망각하고 있는 것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종교로 풀면 이야기가 복잡해지니 현생에 있는 관점으로만 이야기를 하면 그렇습니다. 죽음을 어느 순간 생각했더니 생(삶)은 더욱 또렷하게 보이고 제가 건강하게 숨 쉬고 걷고 있는 사실에 감사의 기도를 올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하루하루 잘 살아가는 것은, 하루하루 잘 죽어가는 일과 같다."

아 오늘도 잘 살았다.라고 하면 아 오늘 하루도 잘 죽었다. 와 같았죠. 사실 우리가 나이 들면서 좋아지는 것이은 없는 것 같습니다. 아프고. 질병이 찾아오고 노화가 찾아오며 육체는 퇴화됩니다. 이 역시나 우리가 영민하게 태어나 참참한 죽음으로 가는 일일 것입니다. 나이 들어서 좋은 거요? 그건 아마도 삶에 대한 관조. 받아들임. 여유, 지혜와 같은 것이 있을 텐데 그것 외에 더 좋은 일은 무엇인지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모두가 때와 상관없이 죽음을 맞이하고 언젠가 세상을 떠난다면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오래도록 이 질문을 해왔는데 이 질문 앞에서는 나 자신과 내 주변의 사람을 사랑하는 일. 살아가는 일 밖에는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죽음을 생각하면 어찌나 내 삶이 이렇게나 또렷하게 보이던지. 하루하루 우리는 미래로 가고 있지만 삶을 살아내며 죽음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두운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적이고 희망적인 이야기. 우리가 그래서 오늘 주어진 하루를 더 의미 있게, 더 가치 있게 살아갈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는 이야기.


매일매일 행복하자는 말입니다. 불행한 일들도 많이 닥칠 테지만 그 일과 맞서 싸우고 물리치면 기뻐하고 나아가면서 내 자신의 승리에 기뻐하고 더 많은 사랑과 기쁜 일로 채우면서 살아가자는 이야기였습니다.


오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오늘 하루도 잘 보냈다면 잘 살아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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