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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다시 만날까요?

by 이용현

"다시 만날까요?"


인생 영화로 꼽는, 가을이면 매번 보고 마는 영화 '만추'에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대사입니다.

72시간. 시애틀의 늦가을, 두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것뿐이었습니다. 가을의 끝자락에서 함께 보냈던 짧은 시간.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진심이었습니다.


"인생에서 좋은 시절은 후딱 갑니다. 즐기세요. 마음을 열고 지금 사랑하자고요."


영화 속 관광 안내사가 사람들에게 전하는 이 말처럼, 그들에게 주어진 좋은 시절은 72시간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간절했는지도 모릅니다. 기간이 정해진 짧은 시간 속에서 보낸 사람과의 만남은 애틋할 수밖에요.


헤어지는 순간, 그들은 묻습니다.

약속이 아닌, 확신도, 보장도 없는 그저 간절한 물음표 하나.

다시 만날까요?



영화의 마지막. 애나는 그 약속의 장소에 나왔지만, 훈은 오지 않았습니다. 카페 창가에 앉아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는 그 긴 침묵. 대사 하나 없이 흐르는 그 몇 분이, 어쩌면 영화 전체보다 더 길게 느껴졌습니다.


다시 만날까요?

그 물음에 대한 답은 예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영화는 주인공 탕웨이(애나)의 간절한 노래를 끝으로 막을 내립니다.


<지난 일들이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다녀요. 눈앞의 세상에 무감각해져 가네요. 실망하진 않아요. 기대도 하지 않았으니까. 사랑은 두 사람의 기억 속에 남겠지만 외로움은 오직 나만의 몫이에요. 고마워요. 내 곁을 스쳐 지나가줘서. 낯선 당신은 마치 익숙한 햇살처럼 내가 아직 살아 있음을 깨닫게 해 주었어요.>


우리 삶의 많은 만남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또 봐요"라고 인사하지만 정말 다시 만날지 모르는 사람들. "연락할게"라고 말하지만 결국 다음 연락이 언제 또 닿을지 모르는 인연들. 그렇기에 우리가 만나는 지금의 순간이 어쩌면 가장 소중하다는 것. 일상에서 너무 당연시되는 만남을 아무렇지 않게 잊고 사는 건 아니었는지 반추해 봅니다.


만추는 늦가을입니다. 무언가 끝나가는 계절이죠.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습니다. 모든 게 다 끝나가는 마지막 순간마다 잇는 "다시 만날까요? "

이보다 애틋한 말이 또 있을까요.


나는 이 물음을 들을 때마다 생각합니다. 어쩌면 중요한 건 다시 만나느냐가 아니라, 그렇게라도 물어볼 수 있었다는 것. 그 짧은 시간이 진심이었다는 것.


우리는 늘 다시 보고 싶은 사람에게 "또 보자"는 말을 하고 헤어집니다. 그 한마디가 그토록 따뜻하게 들리는 이유는, 우리가 보낸 시간이 너무나도 좋아서 또 한번 기다림을 갖자는 약속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비록 쉽게 만나지 못하더라도, 누군가를 기다리는 그 마음. 함께 했던 기억이 좋아서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간절로 우리는 상대에게 이야기합니다.


우리, 다시 만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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