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라고 하루가 멀다 하고 비가 내렸다 개었다를 반복한다. 철이 바뀌려고 몸부림하듯 날씨도 요란하다. 봄비가 내려 수분을 머금은 흙들은 저마다 연둣빛 새싹들을 밖으로 내고, 촉촉한 나무들은 파릇한 잎사귀들로 신록을 준비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봄비를 예찬하고 사랑하고 노래한다.
봄비는 비라는 존재 자체보다는 봄비로 인해 파생되는 수많은 연쇄작용들과 자연현상들에 의해 평가된다. 비라는 존재 자체로 화학적인 성분으로 수소와 산소의 결합으로 가 아닌 내리는 계절, 그로 인한 다양한 자연의 변화, 자연의 변화로부터 오는 인간의 감정의 변화, 결국은 인간에게 보기 좋은 또는 도움이 되는 전혀 다른 존재로 대접받고 사유된다.
그렇다면 가을비는? 겨울비는? 여름 장마는?
공기 중에 수분이 상승하여 구름을 이루고 수분을 흠뻑 보듬어 무거워진 구름은 다시 수분을 공기 중에 방출하고 이것은 비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불려진다. 똑같은 과정과 똑같은 성분과 똑같은 존재로서의 비를 왜 사람들은 그들의 편의대로 나누고 이름 붙이고 노래하거나 원망하거나 칭송하거나 무언가를 위한 수단으로 치부하는 걸까?
세상 모든 것이 그렇듯 비 자체로만 존재할 수 없는 걸까? 비는 비..... 비로 인해 낙엽이 떨어지고, 폭우로 피해가 발생하고, 눈이 녹고, 기분이 우울하고, 생명이 돋고, 쌀쌀하고, 누군가가 생각나고...... 그렇게 비는 자신의 존재 이유와 의도와는 상관없이 누군가 타인에 의해 평가되고 버려지거나 칭송된다.
나도 그렇다.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한 나, 무언가 가치 있는 일을 했을 때의 나, 모두가 행복하기 위해 희생해야 하는 나, 슬픈 나, 기쁜 나, 화가 나는 나, 수많은 알 수 없는 나.......
세상이 보는 관점으로, 당신들이 생각하는 방식으로 평가되고 재생산되고 소모되는 나로 인해 본래의 존재로서의 본연의 자아로서의 나는 없는 것 같다. 나조차 세상의 눈과 사람들의 틀로 나를 바라본다. 내가 그들에게 생명 가득한 봄비인지, 난폭한 폭우인지, 외로운 가을비인지........ 모두가 행복하려면 이렇게 해야 해.... 강요한다...... 내가 행복한지 진정으로 그들은 알까?... 겉모습과 이미지로만 내가 되고 이쯤 하면 행복하잖아?라고 판단하고 있지는 않을까? 나도 그렇다....... 봄비든, 여름 비든, 겨울비든,,,, 그들이 비인 것처럼..... 그들이 생각하는 내가 무엇이고 나의 이미지와 겉모습이 어떻든.... 그들이 생각하는 내 행복이 무엇이든.... 내가 희생하므로 그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이든...... 비는 그냥 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