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사는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형 시
식탁이 침묵했다. 아니 잠들었다. 더 이상 말을 섞지 않겠다는 심보다. 사물과 말을 섞다니….
나는 시골집을 지을 때 부엌과 마주한 아일랜드식 식탁을 만들었다. 부엌에서 요리한 음식을 바로 옆 식탁으로 옮기면 먹을 수 있게 말이다. 그 식탁 한 모퉁이에 메모가 있다.
첫째, 집에서 자주 요리해서 먹기
둘째, 텃밭에서 기른 유기농 채소로 요리하기
셋째, 건강한 당뇨 밥상으로 먹기
순창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기 전, 나는 한 때 혈당이 500(평균 140)까지 치솟고, 소갈증에 거의 한 시간마다 소변이 마려웠다. 신장이 망가질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혈당이 안정되었지만 여전히 당뇨약은 끊지 못하고 있다.
여기서도 농사 외의 일로 밥벌이를 하다 보니 귀가가 늦어지고, 식사는 거의 외식으로 일관되었다. 결국 메모는 종이 위에 쓰인 글씨로 남았다. 식탁은 침묵으로 빈정거렸고, 나는 쑥스러워 침묵했다. 생활터전까지 바꿔가며 건강한 식탁을 꿈꾸었는데, 습관적으로 맵고 짜고, 화학조미료가 듬뿍 들어간 외식 음식들로 내 소화기관을 채웠다.
나는 식탁을 어루만졌다. 외면하던 식탁이 눈길을 주었다.
‘무엇을 먹느냐가 나를 만든다.’
식탁 위에 내 몸을 투영하듯 소화기간을 보여주었다. 맵고 짠 음식으로 헐어버린 위벽, 육고기 등이 장에서 소화되지 못해 찌꺼기처럼 붙어 있는 장벽, 에너지로 바뀌지 못한 당이 콩팥에서 걸러지지 못한 채 그냥 오줌으로 흘러나갔다. 장은 점점 꿈틀거림이 둔해지고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장(腸)이 몸과 마음을 만들어.’
인류를 포함한 생물의 기원은 소화기간인 장으로만 된 원시생물에서 시작되었다. 지금은 뇌가 중시되면서 장의 역할을 소홀히 취급받지만, 제1의 뇌는 장이라고 할 수 있다. 장을 통해 건강한 에너지가 만들어져야 건강한 생각을 할 수 있다. 현대인의 불안, 초조, 스트레스와 같은 발신인 불명의 심리상태는 음식에서 기인한다는 설도 있다.
경자(庚子)년 새해를 맞으며 나는 하나의 결심을 했다. 효소단식을 통해 건강한 장을 먼저 만드는 것이다. 현재 일주일째 흰 쌀밥과 고기반찬을 끊고 효소음료만 마시며 먼저 장을 깨끗하게 비우고 있다. 머리에서 반응이 온다.
‘괴로워, 현기증 나, 너 죽으려고 그러니?’
그럴수록 내 몸의 세포들은 오히려 죽을힘을 다해 나를 살리려고 독소를 밖으로 내보내고, 지방을 태우고, 장의 찌꺼기를 깨끗이 치울 테다. 건강식에 대해 지식만 가득 차있는 머리로는 절대 건강해지지 않는다. 장이 꿈틀꿈틀 대는 배에서 느껴야 한다. 내 삶이 건강해 지는 소리를….
식탁이 오히려 나를 깨웠다. 내가 되레 그동안 잠자고 있었던 것이다. 단지 환경만 바뀐다고, 머리로만 배운다고, 건강한 삶이 저절로 찾아오지 않는다는 걸 알려주었다.
오늘날, 한국사회도 분열과 갈등으로 건강하지 못한 단면을 보여준다. 나는 그 원인의 하나가 농촌 홀대에 있다고 생각한다. 인구감소로 인한 소멸위기와 관행적인 화학농법으로 농촌은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다. 농촌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젊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들어와야 한다. 그들이 건강한 먹거리를 만들지 못하면 스마트한 머리를 가진 도시도 생명력을 잃을 것이다. 농촌은 국민의 건강한 삶을 책임지는 장과도 같다. 그리고 농촌이 장이라면 도시는 뇌다. 건강한 장에서 건강한 뇌가 형성되고, 더불어 분열과 갈등의 사회도 건강해 질 것이다.
by 김재석
식탁은 침묵을 지켰다
잠들었는지도 모른다
한동안 식탁에 밥상을 차리지 못했다
대화도 없었고 그럴수록 어수선한 침묵만 널브러졌다
퇴화된 꼬리뼈에서 신호가 잡히고
입과 똥꼬가 마치 하나였던 오래된 이야기이다
‘장이 몸과 마음을 만들어’
나는 불면하고, 불안한 발신인불명의 감정이 만드는
나선형 소용돌이를 따라 내려가다
내 속에서 잠자는 식탁을 만났다
식탁은 원시모계의 모습을 닮았다
먹고 잘 싸는 일만 하던
식탁에서 손 발 머리가 차례로 나와
진화의 계보를 그리며 내가 걸어 나왔다
‘무엇을 먹느냐가 나를 만들어’
(꼬리뼈의 진동음은
처음처럼, 나를 깨우는
식탁이 꿈틀꿈틀 하는 원시음이다)
꿈틀꿈틀하는 식탁을 어루만지며
되레 잠들었던 내가 깨어났다
지금이야, 식탁이 깨어날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