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에 누워있었다. 주방에서 딸그락 거리는 아내가 모처럼 나에게 명을 내렸다.
"여보~ 여보~ 장에 가서 귤 좀 사 와요."
"나 허리 아픈디..."
"어휴... 이만 원짜리 반절만 사 와요."
"허리 아프당게..."
"들지 말고 안고와요. 허리 아픈 게. 거기 내 지갑에서 카드 가져가요."
말로는 아내를 이길 수 없어 짱구 돌리기를 포기했다. 두툼한 아내 지갑을 여니 카드가 좌우로 정렬되어 있었다.
"여보. 뭔 카드 가져가?"
"신협카드요."
"두 장인디."
"맨 위에 거 가져가요."
"응."
난 아내의 카드를 맨 위에서 꺼내 길을 재촉했다. 저녁 무렵 아파트장은 거의 파장 분위기였다. 과일아주머니에게 카드를 주고 계산을 했다. 성공적으로 임무 수행을 마치고 싱크대 앞 아내에게 귤을 인계했다.
"여보. 수고했어요. 카드 주세요."
"응. 여기."
카드를 넘겨받으며 아내는 지갑을 열어젖혔다. 딱 거기까지 좋았다.
"내가 미쳐!!! 맨 위에 카드라고 했잖아요."
"헐. 당근 맨 위에서 뺐지."
"어떻게 이게 맨 위야. 맨 밑이지."
아내와 나의 콧구멍 평수가 슬슬 넓어지기 시작했다. 드디어 아내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
"어휴... 내가 미쳐. 동민이도 맨 위라고 하면 착착 빼가는데... 어휴... 내가 미쳐."
"......."
그나저나 나는 지금 솔찬히 억울하다. 친구들 생각은 어떤가? 내가 틀렸나. 방금 하은이한테 전화가 왔다. 억울하다고 하소연을 했다. 딸아이가 하는 말이,
"아빠가 잘 못했네. 엄마가 잘못했을 리는 없고..."
아내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역시 내 딸이라면서 아내가 껄껄껄 웃는다. 억울해도 너무 억울하다. 내 편은 없다. 참고로 나는 첫 번째 사진 맨 왼쪽 카드를 꺼냈다. 그 카드가 맨 위 카드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