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일찍 잠든 틈을 타 러닝을 나왔습니다. 역대급으로 더운 날입니다. 밤 9시가 넘었는데 30도가 넘네요. 열대야입니다. 더 이상 못 뛸 것 같아 중간에 멈춰섰어요.
회사 사정이 좋지 않습니다. 저는 사실 정년까지 다니려고 아이티기업에서 제조업을 선택했는데요, 이제 갓 2년 지났는데 앞이 캄캄합니다. 영업이익이 마이너스인데 언제 턴 어라운드 될 지 예측이 어렵습니다. 월급에 수당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 수당까지 건드리려고 합니다. 사실상 월급 삭감인 셈이죠. 제발 그런 일은 없어야 할 듯 해요.
아이고 내 인생 하면서 이틀간 심란했습니다. 이 회사를 추천하고 런친 동료를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회사의 기술력 그리고 내가 이곳에서 할 수 있는 비전들에 혹했습니다. 추천한 사람은 제가 들어오기 전에 제게 말도 없이 고객사로 이직에 성공했습니다.
근데, 이틀 지나면 됐다 싶어요. 이 정도 답도 없는 고민의 굴레에서 뒹굴었으면 충분합니다. 이제 다시 긍정을 되찾아야죠. 과거의 저는 오래 이 부정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곤 했어요. 미운 건 미운 거고 바보스러운 선택은 이미 지났고 이제 앞으로 뭘 해야 할 지 고민할 타이밍입니다.
사실 회사가 바로 망하지도 않을텐데요, 저는 회사 사정과는 상관없이 편안한 직장 생활 노후를 원했습니다. 회사 경영 상황과는 별개로 내가 신경쓸 필요도 없이, 내 자신의 현재와 미래에 오롯이 집중하길 바랬습니다. 망해가는 회사는 직원들이 경영진보다 더 심하게 회사의 안위에 더 몰입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잘 나가는 회사는 회사 경영 상태나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 뭐 이런 것에 관심이 덜합니다. 규모가 작을수록 임원들의 비리는 더 쉽게 귀에 들립니다. 저는 그런 노이즈에 귀를 막고 싶었어요. 지금까지는 그렇게 자기 관리를 잘했는데 회사 망한다는 소문에 불현듯 잘 지키던 마음에 고삐가 풀렸습니다. 화가 났고 후회스럽고 걱정이 생겼어요
2년간은 평안했습니다. 사실 지금 2년 전과 바뀐 건 없습니다. 연봉도 직급도 다 그대롭니다. 근데 전 왜 벌써 다음 스텝을 고민하며 에너지를 쓰는 걸까요? 미리 고민하며 잠을 못드는 걸까요? 다 떠도는 소문일 뿐이죠. 다시 회생할 수도 아니면 이대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습니다.
미래를 위해서 미리 준비하고 걱정할 필요는 있어요. 하지만 저는 그걸 핑계삼아, 회사가 곧 어려워질거라는 걸 미리 예측하여 준비한다는 명분하에 회사를 옮기곤 했습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습니다. 회사가 없어지고 합병되어 오히려 잘된 케이스도 있고, 서버 엔지니어 근무지를 옮긴다더라고 했는데 실제로 절반이 이동한 케이스도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대한민국 제조산업이 현재 하락세이긴 합니다. 미국 관세에 대한 압박과 경쟁우위를 점하는 중국의 기술력, 각 나라들의 높아진 무역 허들. 우리 회사 뿐 아니라 다른 회사라고 상황이 좋은 건 아닙니다.
걱정이 머릿속을 더 지배하기 전에, 이틀 고민하면 됐다는 충분한 다짐을 담아, 이 더위에 러닝을 나왔습니다.
어제 주간회의 때는 머릿속에 떠도는 그 고민이 실제로 발언과 태도에 드러났습니다. 팀장님이 서버 데이터 백업에 대해 문의하는데 너무 세세하게 묻습니다. 너무 마이크로 매니징인 듯 해요. 질문의 뎁스는 세단계면 충분한데 그 이상 물었습니다. 그건 캐묻는 거죠.
- 아니 왜 이렇게 마이너한 것에 집착하세요? 다른 중요한 것 두고 이것만 파는 이유가 있어요?
아이티 시스템 관리를 하다 보면 누구나 컴퓨터를 다루기 때문에 다들 어느 정도의 컴퓨터 인프라에 대한 지식이 있습니다. 그런 지식이 있으면 괜히 더 캐묻게 됩니다. 중요하지 않은 것까지 묻는 경향이 있어요. 왜 컴퓨터 공학과 전공하면 다른 친구들이 컴퓨터 조립하려는데 견적 좀 맞춰줘 하는 것과 비슷할까요?
그리고 제가 이 회사 왔을때 전략팀으로 입사했는데 어느새 다른 팀으로 이동했습니다. 제 의지도 아니고 팀장 간 정치싸움에 휘말려 제가 하려던 업무와 다른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선 팀장님과 팀원이 짬짜미를 맞추고 저를 프로세스 업무에 투입시켰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요? 회사 후배에게 왜 이렇게 일을 하냐는 타박을 받았습니다.
이게 제가 하던 업무도 아닌데, 팀이 필요하단 이유로 접고 들어갔더니 오히려 주객이 전도되어 제가 지시를 받고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고 있는 겁니다. 어제 회의 때는 그 안건 말고도 다른 것들도 꼬치꼬치 묻길래 결국엔 폭발했어요.
시스템은 기획하고 셋업 하고 운영까지가 한 사이클입니다. 그 중에 운영이 제일 짜칩니다. 사용자 voc를 실시간으로 듣고 대응해야하거든요. 이게 자칫 스탠스를 잘못 취하면 다른 업무의 서브 성격으로 전락할 수 있어요. 시스템 하나의 유지보수를 비용 절감 차원에서 업체가 아닌 제게 부가하려는 움직임이 있길래 발끈했습니다.
사실 어제는 아침부터 혼란스러웠어요. 여러 일들이 있었는데 하나걑이 신경을 건드리더라구요. 그런 마음들이 태도에 드러나지 않게 하려고 했는데 저는 아직 수양이 부족해서 금방 얼굴에 티가 났어요. 태도도 거칠었구요. 반성합니다.
그 행동의 기저에는 내가 선택한 이 회사에 대한 실망감과 내 결정에 대한 후회가 있다는 걸 압니다. 지금, 제가 이 글을 쓰는 걸 끝으로 그에 대한 고민을 멈출께요. 이 회사 추천하고 런친 동료에 대한 미움도 멈춥니다. 그래봤자 달라질 건 없어요. 그리고 주위 사람들과의 비교도 멈출께요.
자, 이제 다시 집에 돌아가겠습니다.
집 앞에 편의점에서 포카리 한 캔 마시면 스트레스 다 풀립니다.
같은 실수는 하지 않겠습니다. 약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