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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을이 좋다.

가을, 사랑의 끝에서 : 연작 (2)

by 헬리오스


나는 가을이 좋다.

가을, 사랑의 끝에서 : 연작 (2)



나는 가을이 좋다.

그리운 이에 대한 그리움이

가을 하늘처럼 투명하게 드러나서.

여름의 뜨거운 사랑이

서서히 곰삭아

가을 하늘처럼 깊은 향기로 번지는,

나는 이 계절 가을이 좋다.


여름의 사랑은 불길처럼 타올라

숨이 막히도록 뜨겁고,

그 뜨거움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불태우며

긴 긴 밤을 건넜다.

그러나 가을이 오면

그 불길은 잿빛 연기 속에 스며들어

조용히, 그러나 더욱 진하게

내 마음의 중심에 남는다.


나는 가을이 좋다.

가을바람은 스치고 가기에 좋다.

겨울의 바람처럼

살을 에고 깊이 파고들지 않는다.

그저 어깨를 살짝 스치며

내 마음의 가장자리만 흔들어 놓는다.

그러나 그 바람 속에는

보이지 않는 그대의 온기가 숨어 있다.

서늘하지만 따스하고,

쓸쓸하지만 포근하다.


그래서 나는 가을을 사랑한다.

이 계절의 바람이 있어

그리움이 깊어도 아프지 않고,

사랑이 멀어져도 외롭지 않다.

서로의 마음을 향해

조심스레 다가설 수 있는 계절,

불타는 여름과 얼어붙은 겨울 사이

그 짧은 틈에서만 피어나는

가을의 황금빛 향기 속에서

나는 오늘도 그대를 그린다.


겨울이 오면,

나는 봄을 준비하리라.

눈 속에 묻힌 씨앗처럼

차가운 땅 아래에서

새로운 사랑의 싹을 틔우리라.

그리고 그 꽃은

봄날의 햇살처럼 환하게 피어나

서로의 두 손을 다시 덮어주리라.


나는 가을이 좋다,

그리움이 슬픔이 되지 않고

사랑이 무너지지 않기에.

그리고 언젠가

이 바람이 지나간 자리 위에

사랑의 꽃이 피어날

조그만 씨앗이 묻혀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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