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 그리고...

by 김준식

아직은 아무도 오지 않는 커피숍에 홀로 앉아있다.


방학이 아니면 즐겨볼 수 없는 이 낯선 기분은 삶에 가벼운 즐거움일 수 있다.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 그리고 일상에 매몰된 삶에서 잠시 벗어난 스스로 발견하게 된다.


이른 아침 커피숍에는 아무도 없다. 아직은 아침이라 덜 지친 아르바이트 점원의 목소리가 밝고 상쾌하다. 녹차를 주문했다. 나이 든 사람의 일상적 메뉴일까? 아르바이트 점원의 엷은 미소에는 몇 가지 감정이 교차하고 있었다. 녹차라는 것으로부터 유추되는 여러 가지 것들…… 이를테면 아주 짧은 순간, 나이, 습관, 태도, 취향, 어쩌면 삶의 태도까지도 읽었을지도 모른다.


최근 며칠은 너무 덥다. 아니 정상은 아니다. 모든 것이 휘발될 것 같은 더위다.


온도가 올라가면 스스로 고급스럽다고 느꼈던 모든 감정들이 일순 무가치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러고 보면 우리의 감정이란 온도와 습도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함을 알 수 있다. 사계절의 느낌이란 따지고 보면 그 계절의 온도와 습도에 의해 자극되어는 인간의 동물적 반응의 정도 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계절에 대한 느낌의 정도를 대단한 인간의 고급 감정으로 착각하게 된 것은 오래된 우리의 문명과 교육, 그리고 습관 때문일 것이다. 하기야 모든 감각적인 예술이 실상은 인간의 얕은 착각의 산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늘 하기도 한다.


아주 얇고 투명한 막처럼 우리 삶에 덮여 있는 착각이라는 것을 문득 걷어 내보면 우리 삶에서 진실이나 진리라고 믿었던 여러 개의 확신들이 뜨거운 여름날 얼음이 녹아내리듯 흔적조차 사라지고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편견이나 오만, 아집과 독선 그런 종류들이 미량의 찌꺼기로 남아있음을 발견한다. 더위와 추위는 이 착각의 막을 녹이거나 혹은 동결시켜 나의 진면목을 보게 하는데 가끔은 매우 유용한 도구이기도 하다.


아침 시간이 느리게 지나가고 있다.


강력한 에어컨 덕분에 너무나 쾌적한 커피숍에서 바라보는 바깥 뜨거운 열기 속에 있는 움직이는 사람들(밖에서는 안을 자세히 볼 수 없는 유리 탓에)을 바라보는 것은 일종의 권력이기도 하다.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 없는 매우 무력하고 미량의 권력이지만 커피숍 유리 저쪽 사람들을 관찰하고 그들을 가볍게 평가하는(상대방은 전혀 눈치 채지 못하는) 이 권력의 맛이 어쩌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들의 그것과 총량만 다를 뿐,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 본다.


커피숍 이름은 모자이크처리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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