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버거 vs. 치킨샌드위치
몇 해 전, 2년쯤 살아볼 작정으로 캐나다로 이주했을 때 많은 것들이 나를 설레게 했다. 끝없이 펼쳐진 푸른 하늘에 답답했던 눈이 시원해졌고, 사방에서 들려오는 갖은 외국어가 달콤하게 귀를 간질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습기도 하지만, 그 시절 나를 들뜨게 했던 것 중 하나는 맥도날드였다. 그때도 지금도 세종에는 없는 그것. 세종 사람들의 간절한 바람 같은 건 가뿐하게 외면한 채 결코 틈을 내어주지 않는 그것. 인구 규모가 비슷한 아산이나 원주에는 있는데 세종에는 여전히 생기지 않는 그것.
바로 그 맥도날드가 어디에나 있었다.
캐나다에서 2년을 살면서 맥도날드를 드나든 횟수가 그 2년을 제외한 나머지 평생 맥도날드를 방문한 총횟수보다 많다. 그야말로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참새처럼 오며 가며 툭하면 맥도날드를 찾았다.
맥도날드의 장점이자 단점은 전 세계 어디를 가든 대체로 매장 생김새나 메뉴가 비슷하다는 것이다. 끝없이 밀려드는 낯선 선택지 앞에서 마음이 피곤할 때 맥도날드는 ‘늘 먹던 걸로 주세요’라는 드라마 대사를 내뱉어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은 단골 식당의 바이브를 뿜어낸다.
그러던 어느 날, 늘 가던 맥도날드에서 ‘늘 먹던 거’ 대신 뭔가 새로운 걸 찾아 헤매던 내 눈에 상상하지 못했던 메뉴가 훅 들어왔다.
‘치킨 샌드위치(Chicken Sandwich).’
‘샌드위치라니? 맥도날드에서 샌드위치를 판다고? 햄버거 가게에서 샌드위치를?’
캐나다와 미국의 맥도날드에서는 치킨샌드위치를 판다. 샌드위치라고 해서 딱히 다를 건 없다. 두 개의 번 사이에 지글지글 굽거나 튀긴 닭고기를 채소와 함께 집어넣은 모양새는 영락없는 한국의 치킨버거다.
그렇다면, 한국에서는 치킨버거인 것이 왜 북미에서는 치킨샌드위치일까?
샌드위치(sandwich)의 어원은 18세기 영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샌드위치는 원래 잉글랜드 켄트주에 있는 소도시의 이름이다. 이 지역에서 유래한 작위를 받은 백작, 즉 제4대 샌드위치 백작 존 몬태규(John Montague) 덕에 지금의 샌드위치가 생겨났다. 우리가 빵 사이에 갖은 재료를 집어넣은 음식을 ‘빵과 채소, 그리고 치즈’라거나 ‘빵과 달걀, 그리고 소스’ 같은 번거로운 이름 대신 ‘샌드위치’라는 하나의 규격화된 이름으로 부를 수 있게 된 건 결국 샌드위치 백작의 활약 덕이다.
카드 게임을 즐겼던 샌드위치 백작이 식사 시간이 아까워 갖은 재료를 빵 사이에 넣어 먹었고, 그 덕에 샌드위치라는 이름이 생겨났다는 일화는 제법 유명하다. 그러나 샌드위치 백작은 별 볼 일 없는 도박꾼이 아니라 제임스 쿡의 항해를 지원할 정도로 재력도 있고 저명한 정치인이었다. 그의 이름을 따 ‘샌드위치 제도(지금의 하와이)’, ‘사우스조지아 사우스샌드위치 제도’ 등이 생겨나기도 했다.
샌드위치가 샌드위치 백작의 발명품이라는 주장은 많은 사람의 호기심을 끌지만, 서양에서는 오랫동안 빵이 주식이었다. 그런 만큼, 18세기가 될 때까지 빵에 채소나 치즈를 얹어 먹는 음식이 전혀 없었을 거라고 믿기는 어렵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샌드위치 백작이 지중해를 여행하던 중 그리스와 터키 사람들이 피타빵으로 고기와 각종 채소를 감싸 먹는 모습을 보고 따라 만들어 먹은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샌드위치의 기원이 무엇이든, 20세기에 접어들어 산업화와 현대화로 식빵이 널리 퍼진 덕에 샌드위치가 많은 사랑을 받게 됐다.
햄버거의 역사는 좀 더 다채롭다. 현대인들이 즐겨 먹는 지금의 햄버거(hamburger)는 독일 지명 함부르크(Hamburg)에서 유래했다. 독일 사람들은 생고기를 다져서 패티 형태로 만든 ‘함부르크 스테이크’를 즐겨 먹었다. 19세기 초, 독일 이민자들이 커다란 항구가 있는 함부르크에서 배를 타고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이들이 즐겨 먹었던 ‘함부르크 스테이크’도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러나 독일에 앞서 비슷한 형태의 음식을 즐겼던 민족이 있다. 바로 아시아 초원을 누볐던 타타르족이었다. 타타르족은 말안장 밑에 고기 조각을 넣어 다니며 고기를 연하게 다진 다음 소금이나 후추 같은 양념으로 맛있게 버무려 배를 채웠다.
결국 타타르족이 즐겨 먹던 ‘타타르 스테이크’가 14세기경 유럽으로 건너간 다음 19세기에는 대서양을 건너 미대륙에 상륙한 것이다. 타타르족에 앞서 고대 이집트인들이 다진 고기를 먹은 것이 햄버거의 기원이라는 설도 있고, 18세기 영국에서 출판된 요리책에 실린 ‘함부르크 소시지’라는 요리가 햄버거의 시작이라는 설도 있다. 무엇이 진짜 시작인지 명확하게 밝힐 수는 없겠지만 세계 각지에서 햄버거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지구를 한 바퀴 돌아 전 세계로 전파된 햄버거가 많은 사람의 입맛을 사로잡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처럼 느껴진다.
이 질문에는 정답이 없다.
샌드위치와 버거를 구분하는 방법은 제각각이다.
‘네모난 식빵으로 만들면 샌드위치, 둥그런 번으로 만들면 버거’
‘차갑게 먹는 건 샌드위치, 따뜻하게 먹으면 버거’
라는 식의 다양한 공식이 있지만 항상 맞는 건 아니다.
둥근 빵으로 만들어진 샌드위치도 있고, 뜨겁게 구워 먹는 파니니도 버거가 아닌 샌드위치로 분류되니 말이다.
햄버거(hamburger)에서 ‘햄’이 떨어져 나가 ‘버거(burger)’라는 좀 더 짧은 단어가 널리 쓰이게 됐지만, 햄버거는 원래 다진 소고기 패티가 들어가는 음식이다.
미국 백과사전 브리태니커(Britannica)는
햄버거가
‘다진 소고기’ 혹은
‘다진 소고기로 만든 패티’, 혹은
‘다진 소고기 패티에 다양한 재료를 함께 곁들여 빵 사이에 집어넣은 음식’
이라고 정의한다.
미국의 초대형 소셜미디어 플랫폼 레딧(Reddit)에 올라온 의견을 종합해 봐도 대체로 ‘다진 소고기로 만든 패티’가 샌드위치와 버거를 가르는 핵심 재료 역할을 한다. 그러나 소고기 패티가 들어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북미 사람들이 ‘치킨샌드위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 음식을 호주나 뉴질랜드 사람들은 ‘버거’의 범주에 끼워주는 눈치다.
나라마다 다른 ‘닭고기가 들어간 그 음식’의 이름.
정답이 없는 문화의 문제지만
북미에서는 치킨샌드위치
호주에서는 치킨버거.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이름으로 제대로 불러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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