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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오 Dec 28. 2022

지긋지긋한 날들을 끝내는 방법

써도, 써도, 잔고에 돈이 쌓였다. 줄어드는가 싶다가도 월초만 되면 짠, 돈이 부풀어 있었다. 잘 안 써서 그랬다. 2022년 11월까지 어머니께 드리는 용돈 제외하면 월 평균 856,550원을 썼다. 건보료는 제외했지만 월세는 반영된 금액이다. 노트북과 스마트폰을 바꾼 것도 포함되었다. (12월에는 27일까지 72만 원 남짓 썼다. 병원비만 10만 원 넘는데.) 사람을 만나지 않은 6, 7, 8월은 평균 616,120원을 썼고, 7월에는 연최저 금액인 591,950원을 썼다. 그 돈으로 어떻게 살아지냐고? 그러게 말이다. 나는 글이 아니라 돈을 써야 했다.


대구에도 눈이 쌓인 2022년 12월 21일, 올 한 해도 별일 없이 끝났다고 선고 받았다. 브런치 출판 프로젝트에서 떨어졌다. 또, 있으나 마나 한 한 해를 산 셈이었다. 수 백 번 겪은 낙선이 뭐 대수일까 싶지만 매년 별 일 없이 무능하기도 지쳤다. 한숨은 마음속에 뱉었다. 소복한 한숨 아래 나이테처럼 빙판이 층져 있을 것이고, 이 날의 한숨은 새로운 테를 더할 것을 알았다. 차가운 응어리가 나를 856,550원의 세계에 가두고 있는 것도 알았다. - 네가 무슨 자격으로.


눈이 그치지 않았다. 카페 2층 창가였다. 카페에 가기 시작한 것은 856,550원에서 탈출하기 위해 두어 달 전부터 시작한 나름의 ‘꿈틀’이었다. 마음속 옹골진 냉기를 생각하며 그란데 사이즈의 커피 잔의 단단한 온기를 더듬었다. 창밖 사거리에는 노인 한 분이 눈삽으로 눈을 퍼서 쓰레기를 모아두는 전봇대 아래에 쌓고 있었다. 사거리를 끼고 있는 해장국집 주인인 듯했다. 자기 가게 앞이 아니라 굳이 사거리 중앙을 퍼내는 그의 삽질이 따져지지 않듯, 글을 쓰겠다고 노트와 펜을 들고 개점 시간에 맞춰 카페에 온 것이 자아실현을 위한 노력인지, 취미 활동인지, 무급 노동인지, 자해인지도 따져지지 않았다. 그래서 확실히 삽질이었다. 인과는 오랜 시간 동안 뒤섞여 한 덩어리가 되어버려 나는 나의 가해자이자 피해자였다.



노동은 천하다. ‘노동의 신성성’은 늙은 창녀의 교태처럼 애처롭다. 주6일, 주5일, 주4일, 인류는 노동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노력해 왔고, 지금도 노력 중이다. 다만 수면 시간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인간은 노동 형식으로 존재하므로 자기 합리화가 필요했을 것이다. 금요일 저녁을 기다리면서 노동의 신성성이라니, 입 바른 윤리는 뻔뻔하고 민망하다. 노동자는 짓밟힌 벌레의 날갯짓 같은 안간힘을 쓰다 부서질 뿐이다. 날갯짓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나는 더 천했다.


내 삶에 내가 없다, 당신들처럼. - 이렇게 규정하고 나니 옹졸하게도 마음 편했다. 나는 성공한 노동자였다. 노동이든 글쓰기든 행위 하는 동안 인생이 휘발되기는 매한가지였으나, 나는 눈치 보지 않고 내 할 말 다 하며 살았다. 임금 노동자들이 가슴에 사표를 품고 출근하듯, 나는 이렇게 또, 새로운 낙선을 향해 또박또박 글자를 찍어냈다. 이것은 자아실현을 위한 노력이기도 하고, 취미이기도 하고, 자해이기도 한 무급 노동이다. 그런데도 돈은 쌓였으니, 되었다. 되었다, 그런데, 그란데가 미지근해지도록 몇 문장 쓰지 못했다.


내 무급 노동과 창밖의 노인 사이에서 15년 전 주인집 영감님이 떠올랐다. 살아는 있을까. 완전히 잊고 있던 사람이 별안간 이해되어버렸다. 그는 남의 집에서 똥을 눠서 물을 아꼈다며 자랑하던 위인이었다.


그가 안방을 쓰고 내가 바깥방을 쓰며 화장실과 부엌을 공유했지만 하숙은 아니었다. 내 방 출입문은 따로 있어서 화장실을 가지 않는 한 거실에 나갈 일은 없었다. 물 내리는 소리를 계산할 거라는 생각에 가능하면 볼 일을 보고 들어갔다. 그는 한겨울에도 보일러를 틀지 않고 침낭 생활을 했다. 안방에서 보일러를 조작할 수 있기에 보일러를 돌릴 때는 그에게 일일이 부탁해야 했다. 보일러를 틀어도 냉골이어서 다시 부탁하며 확인해 보니 17도에 맞춰져 있었다. 그는 돈을 쓰지 않는 것이 숨 쉬듯 당연했다.


말이 통하지 않을 사람이라 생각하고 전기 매트를 샀다. 이불 안은 따뜻했지만 공기가 차가워 입김이 났다. 비니로 머리통은 수습되었지만 코끝은 어찌할 수 없었다. 아침 일찍 도서관으로 가서 몸을 데우며 겨울을 났다.

그때는 그가 2층 집을 가진 ‘무려’ 집주인이었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조그마하고 낡은 방 세 개의 월세 소득밖에 없는 실질 소득 빈곤자였다. 더군다나 집도, 육신도 감가상각 됨에 따라 언젠가 소득과 소비가 역전될 것은 예정된 미래여서 고정된 불안이었을 것이다.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 사실 관계를 확인할 수 없지만, 그는 미혼에 친인척도 없었다. 완벽한, 내 노년이었다.


그가 지금까지 살아 있다면, 그에게 지난 15년은 무엇이었을까? 아끼고, 아껴서 다다른 죽음에서 자아실현은 고물 값은 받을까? 물음을 입 안에 묻고 입을 굳게 다물었다. 답을 상상하기 위해 필요한 원료는 이미 풍부했다. 나의 15년도 돈을 벌지 못할 어느 날에 좇기는 시간이었다. 다소 늦은 나이에 88만원 세대의 막내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자아실현이고 지랄이고 당장 먹고 살아야 해서 사교육 판에 발을 담갔다. 소설가 김애란의 ‘먹물 막장’이라는 말은 내 자존감에 찍힌 낙인이었다. 별 볼 일 없는 인간으로 인생이 처분되는 와중에 ‘난 꿈이 있어요!’라고 말하는 한, 연봉 밖에서 내 알량한 자존감을 보호할 수 있었다. 일이 많으면 돈을 버는 거고, 일이 적으면 글을 버는 거라는 합리화가 완성되었다. 글을 버는 일에 돈을 쓸 일은 없었다.


글을 써도 효용이 없기에 올 한 해는 돈을 쓰는 일로 눈을 돌려 봤지만, 이미 내 취향은 가성비 그 자체로 고정되어 있었다. 내가 이런 방에 사는 것을 엄마도, 친구들도 이해 못했지만, 내겐 그의 한겨울 보일러처럼 당연했다. 만족감 10을 올리기 위해 100을 더 투자하는 것이 불만족스러우므로 내 취향은 돌봐지지 않을 것이 자명했다. 굳이 ‘자명하다’를 쓰는 것은 일말의 여지를 주지 않겠다는 선언이기도 했다. 지긋지긋하게 무모한 취향이다.


도로 글이었다. 성능의 우열을 떠나 나름의 취향을 갖춘 영역이었다. 글은 노트북, 혹은 펜과 노트만 있으면 시간을 소비할 수 있는 최강 가성비를 자랑했으니 완벽한 내 취향이었다. 12월 21일, 그 해가 말짱 도루묵이었음을 증명 받았지만 별 수 없었다. 쓰지 않아 도독이 쌓인 ‘홧김비용’을 어디에, 어떻게 쓸지 몰라 더 헛헛했다. 그런데 눈이 왔던 것이다.


『이방인』의 뫼르소가 햇볕 때문에 총을 쐈다면, 그날 카페에서는 내게 눈이 방아쇠가 되어준 듯했다. 눈 내리는 상권 골목의 한산함은 자포자기의 평화와 잘 어울렸다. 아니, 해장국집 사장님의 삽질이 내 취향의 단단한 경계에 삽을 꽂았는지도 모르겠다. 균열이었다.


문득, 내게 어울리지 않게, 내게 밥 먹자고 해준 사람들에게 커피와 조각케이크 기프티콘을 보냈다. 밥 약속은커녕 일절 먼저 연락하는 법 없는 내게, 몇 년째 늘 먼저 말 걸어주고 밥 먹자고 해주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왜 내게 시간을 쓰는가? 그들의 고맙다는 답장이 고인 돈의 출구인 듯했다. ‘내’ 생의 가성비가 ‘너’에게 있는 역설에 조금 주의를 기울여 본다. 쓸 거리가 생겼는데, 내 취향일까?


아니, 대구에는 쌓일 만큼 눈 내리는 날이 1년에 한 번이 될까 한다. 그래도 그날의 기억 하나 챙겼으면 되었다. 돈을 버는 이유가 돈을 쓰기 위함이고, 24일에 받은 161447의 쿠키는 달달했다. 내가 나의 이방인으로 살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 타인에게 있다고 쓰지만, 내 입에 아직 타인은 다소 쓰다. 대체, 언제까지 지긋지긋하게 편안하려고. (끝)


학생들과 나눠 먹음. 선생 체면에 차마 루돌프 빨간 코를 사수하지는 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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