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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오 May 01. 2023

[하드]량 보존의 법칙

“엄마, 하드 하나만.”

일부러 ‘하드’라고 말했다. 발음하고 보니 외국어 같았다. 아니, 본래 외래어니 외계어가 적당하겠다. 내 입을 포탈 삼아 차원 이동한 듯하지만 사실은 내 안에 잠복해 있던 우주였다. 내게 가장 가까운 우주가 하드라니 세계가 600원만큼 저렴해진 것 같았다. 그런 세계라면, 만만했다. 세상은 본래 만만했었다는 것을 떠올리고 보니 궁금해졌다. ‘하드’는 ‘아이스크림’보다 3음절 짧고 거센소리와 받침이 없어 발음하기 수월한데도 왜 기표를 지키지 못했을까?


‘엄마 100원만.’의 시절, 쭈쭈바도, 폴라포도, 돼지바도, 브라보콘도, 빵빠레도 하드로 불렀다. 300원짜리 빵빠레가 최고 존엄이긴 했지만, 달달한 얼음과자의 ‘맛있다’는 위계 구분에 큰 의미는 없었다. 모든 ‘하드’는 꿈과 희망의 벽돌이었다. 헨젤과 그레텔의 과자로 만든 집은 아이스크림을 모르던 시대적 한계를 반영할 따름이었다. ‘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 민족의 어린이들은 한겨울에도 하드로 만든 집을 원했다. 하드는 폭주하는 기초 대사량을 식히기 위해 필요한 생리학적으로 타당한 판타지였는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며 판타지가 깨지듯 하드가 녹아내렸다. 사전적 의미 대로 ‘얼음과자를 부드러운 아이스크림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에 맞게 하드를 지칭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하드를 먹지 않게 되었다. 차갑고 달달한 것이 먹고 싶을 때는 콘이나 빵으로 포장되어 조금 더 비싼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빵빠레를 동경하던 어른의 소소한 권력 행사였다. 그렇다고 엄마를 외계인으로 둔 서른한 가지 아이스크림 가게를 드나들지는 않았다. 판타지와 별개로 가격에 엄마가 없었다. 혹은 그 가격에 닿지 못해 세상이 만만하지 않았다.


“엄마 것도 챙겨요?”

“어.”

마트를 한 바퀴 돌고 계산하기 직전이었다. 언제 마지막으로 엄마와 장을 보러 왔는지 기억도 안 났다. 엄마와 내 살림이 분리된 지 15년에 육박했고, 내가 본가에 내려 올 때는 보통 엄마가 장을 봐 둔 상태였기에 같이 장 볼 일이 없었다.


마트는 도보 15분 거리에 있었다. 인근에 브랜드 아파트 단지들이 생기면서 논 한 가운데 어지간한 하나로 마트보다 넓은 대형 마트가 생겼다. 나는 카트를 밀며 어슬렁어슬렁 엄마를 쫓았다. 내가 주인 따라 산책 나온 노견 같기도 했고, 엄마가 주인 끌고 신난 강아지 같기도 했다. 엄마는 목줄 신경 쓰지 않고 날뛰는 강아지처럼 거침없었다. 돼지고기 목살을 들었다가 놓았고, 무도 들었다가 놓았다. 결국 염색약 외에 산 것이라고는 신선도가 떨어지기 시작한 신선 식품을 할인하는 매대에 전시된 500원짜리 느타리버섯 열일곱 팩이 전부였다. 말려서 내게 먹일 것이었다.


코흘리개 시절, 시장에 끌려 다니곤 했다. 어린이는 장난감 아닌 생필품에 흥미가 없었다. 엄마 손 꼭 쥐고 열심히 쫓아다녔지만, 그저 말 잘 듣는 강아지처럼 보상을 기다릴 뿐이었다. 버스 타고 큰 시장에 가면 높은 확률로 칼국수나 김밥을 먹었고, 걸어서 동네 시장에 가면 낮은 확률로 하드를 먹었다. 내게 시장은 오직 하드의 기회였다.


하드는 배탈과 감기를 명분으로 쉽게 기각되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는 하드를 못 사준 것인 듯했다. 월세인지 전세인지 몰라도 단칸방 네 식구 생계에 100원은 아쉬웠을 것이다. 당시는 그런 사정을 몰랐기에 하드를 먹지 못한 날이면 세상이 조금 무너졌다. 그러다 가끔 한 손에 엄마, 한 손에 하드를 쥐면 세상은 완벽해졌다. 내 세상이 완벽해졌을 때, 엄마는 하드를 먹지 않았다. 100원은 그랬다.


‘삼강 돼지바 꿀꿀’을 입에 달고 살 정도로 돼지바에 집착하던 때도 있었다. 돼지바야말로 천국의 집을 지을 때 써야 할 벽돌이었다. 그러다 초등학교 고학년 이후로는 취향을 타지 않고 다 좋아했다. 죠스바는 혓바닥이 변색되어 재밌고, 스크류바는 입 안에서 바람개비처럼 돌릴 수 있어 재밌고, 폴라포는 내용물을 뒤집어 꽂아 광선 검처럼 만들어 재밌었다. 녹차 맛, 호두 맛이 유행할 때 다시 잠깐 하드와 가까워졌다가 곧 콘으로 이주했고, 그 즘 하드는 ‘아이스크림’으로 완전히 대체되었다가 어느 순간부터 콘도 잘 먹지 않게 되었다. 아이스크림은 애들이나 먹는, 맛으로 된 동화였다. 그 사이 돼지바는 속에 딸기 잼 같은 것이 더해졌지만 ‘돼지’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비쩍 말라버렸다. 어른에게 동화는 시시했다.


모든 하드가 작아졌다. 같은 시기 같은 가격의 과자들이 1,000원을 넘긴 지 오래인데, 하드는 아직도 600원이었다. 냉동으로 유통/보관해야 하는 특성을 감안하면 필사적으로 몸집을 줄여야 했을 것이다. 거의 한 입거리 수준으로 오그라든 몸집으로 자기 이름을 지켜야 했을 (    ), 속에 알맞은 말을 고르시오. - 고단함, 고집, 민망함, 분노, 우울, 자기연민, 자부심, 자신감, 자존감, 초라함, 허망함. 보기 중 무엇을 넣어도 이현령비현령 가능했다. 그것을 압축하면 ‘인생 hard하다.’는 정도였다. 어쩌면 하드가 이현령비현령을 잘 압축해 놓았는데, 그래서 메가바이트 시대에도 별일 없이 살았는데, 하드를 먹지 않은 시점부터 압축이 풀려버린 것 같다. 삶이 테라바이트 단위로 뒤죽박죽으로 hard하다.


“아줌마들하고 오면 붕어싸만코 먹는다.”

‘붕어싸만코’ 사오지 뭐 이런 걸 사왔느냐는 엄마식 핀잔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100원의 시절을 생각하면 붕어싸만코는 1,200원이었기에 듣기 좋았다. 노년으로 익어가는 아줌마가 앞서고 청년이라고 하기에 민망해진 아저씨가 시장바구니를 끌며 논길을 걸었다. ‘까마쿤’을 나란히 베어 물면서. 우리 엄마는 외계인이 아니어도 600원짜리 길은 맛있었다. 하드는 그랬다.


인생은 싸운 것 같은데 싸운 적 없고, 싸운 적 없는데 진 것 같은, 답 없이 hard한 시간이었다. 하드가 hard로 대체되어 [하드]량이 보존되어 왔다. 내가 먹지 않는 하드는 사실 내 아이에게 바톤 터치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내가 100원짜리를 물고 빨 때 엄마가 맛 봤을 단맛으로 패배의 쓴 맛을 중화시켰을 것이다. 중년 노총각에게 그럴 일은 없으므로 다음에는 엄마를 데리고 엄마를 외계인으로 만든 하드를 먹을 것이다. 아이스크림은 없고 하드만 존재하던 외계에서 나는 제법 뿌리 내리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엄마도 노년의 판타지를 세웠으면 좋겠다. 초코나무 숲에서 hard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길.


한 주를 마무리하는 퇴근길, 하드를 사먹는 빈도가 늘었다. 딱 하나만 사서 걸어가며 먹는다. 이제는 돼지바로 집을 지을 수도 있고, 엄마가 원한다면 붕어싸만코로 집을 지을 수도 있다. 그만큼은 벌어먹고 사는데, 나는 매일 불 꺼진 빈방으로 걸어갈 뿐이다. 내가 방에 들면 천국이 아닌 모든 것이 완성된다. 낼름낼름, 600원짜리 하드에서, ‘엄마 100원만’의 나를 돌보던 나보다 어린 엄마와 홀씨만 남은 민들레처럼 머리가 센 논길의 엄마가 겹쳐진다. 바톤 터치했다. 한 주 열심히 살았으니 쉬어도 된다는 허락의 기초 대사량을 충전한다. 곧바로 바톤을 돌려받겠지만, 슈룹슈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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