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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오 Sep 08. 2023

편의점 도시락 - 무관심의 호혜자

여학생은 150cm 남짓쯤으로 보였다. 가방은 토막 낸 자신도 다 들어갈 법했다. 책이었을 것이다. 책 무게 때문에 학생의 걸음은 아장아장했다. 학생은 그 무게를 지탱해야 다음이 있었을 것이다. 2011년, 혹은 2012년 12월 어느 일요일 아침, 수성구 학원가였다.


좋겠다, 너는 1년 남아서. 버스에서 내린 자리에서 나는 가만히 학생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예상대로 학생은 대형 재수 종합 학원으로 들어갔다. 유독 그날 풍경이 잊히지 않는 것은, 내 다음이 불확실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일요일이 박탈되어야만 안도할 수 있는 현실이 무참했다. 박탈감이 영속되지 않으면 나는 살 길이 막막했다. 잘리면 갈 데가 없었다. 내가 아는 한 지방 입시 논술 시장에서 강사는 서울에서 수급해 왔다. 내실과 무관하게 ‘서울’이 벼슬이었다. 학생의 가방에 토막 난 나도 들어갈 것 같다고 생각하며 편의점으로 향했다. 출근길이었다.


일종의 자기 위로였다. 삼각김밥이 아니라 도시락을 먹었다. 둘 사이의 가격 격차는 부담스런 정도는 아니었다. 학원 일을 시작할 즘, 편의점 도시락은 공급자 경쟁이 소비자에게 혜자롭게 자본논리에 면역력을 길러주는 접종원임을 증명했다. 자본주의의 꽃을 먹으면 노동자에게 불리한 자본논리가 그럭저럭 버텨졌다. 꽃향기를 맡으면 힘이 솟는 꼬마 자동차라도 되고 싶었다. 꼬마차는 희망도, 사랑도 있고 아하, 신나게 달릴 수 있으니까. 집에 가고 싶었다.


끔찍한 11월이었다. 입시 논술 시장은 수능 이후 열흘 간 연매출 1/4 안팎을 올리는 듯했다. 막내 첨삭 강사 시절, 그 기간은 오전 7시에 집을 나서서 오후 11시쯤 귀가했다. 점심/저녁 식사 시간을 다 합쳐도 30분이 안 되었다. 말하고, 또 하고, 또 해야 했다. 나는 강사랍시고 첨삭 대기실에 앉아 있지만, 넥타이 맨 학생에 지나지 않았다. 미숙함을 티내지 않으려고 잔뜩 긴장했다. 집에서 다음 날 논제를 다시 확인하면 2시를 넘겼다. 진 빠진 채로 진 빠졌다. 나를 토막 내면 피가 나올까 싶었다.


기본급 150만 원에서 그 달은 100만 원을 더 받았다. 그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원장 입장도 이해되었다. 12월이 되자 나는 강사라기보다는 학원을 지키는 경비원에 가까워졌다. 내 노동을 팔지 못했지만 내 시간이 헐값에 처분되는 사태에 속수무책이었다. 원장은 노는 인력을 어떻게든 활용하려고 애썼지만, 나는 일이 없기를 바랐으니 인과응보였다. 서른 살이 넘은 나와 편의점 도시락은 가치가 엇비슷했다. 필요하지만 없어도 그만이었기에 있자니 벅찼다.


그 후 10년도 넘게 지나자 강산은 몰라도 밥상은 변했다. 집에서 밥 먹을 때, 편의점 도시락 반찬을 아껴 뒀다가 다음 끼니에 먹지는 않았다. 편의점 도시락 몸값보다 내 몸값이 더 비싸졌다. 시간이 없어 샌드위치나 김밥으로 요기할지언정 끼니 때, 편의점 도시락은 내 선택지에 없었다. 두 배쯤 되는 돈을 써도 부담스럽지 않은 격세지감은 확실한 내 자신감이었다.


그런데 일요일 아침, 다시 편의점 도시락이었다. 토요일 아침도 편의점 도시락이었었다. 그 사이 편의점 도시락을 전혀 안 먹은 것은 아니었지만, 주말 아침 편의점 도시락은, 그것도 이틀 연속은, 10여 년 전 그 여학생의 뒷모습 때문에 의미가 각별했다. 당분간 이 루틴이 이어질 것 같다. 나는 아직도 그 여학생의 뒷모습 속에 갇혀 있는 것 같았다. 이름도 얼굴도 모를 너는 무엇이 되어 있으며, 나는 지금 어디쯤 와 있는 것일까?


토요일은 지하철 두 정거장 더 가서 콩나물국밥으로 아침을 먹고 1.8km를 되걸어 출근하는 것이 루틴이었다. 수업과 수업 사이 점심을 가볍게 먹어야 하기에 아침은 든든하게 먹어야 했다. 좀 더워진다 싶을 때까지도 루틴을 유지하다가 하루는 문득, 땀 흘리기 싫어 함바에서 아침을 먹으려고 계획을 틀었다. 그러나 정작 함바에서는 외부인(?)에게 아침을 팔지 않았다. 주말 오전 8시도 안 된 시간, 아침을 먹을 수 있는 곳은 편의점뿐이었다. 토요일 루틴이 편의점으로 고착되는 사이 일요일 오전에도 수업이 생겼다. 돈은 더 버는데, 아침이 부실해지는 역설에 실소했다. 불만이 아니라, 아침 차려 먹는 귀찮음을 기꺼이 실천하고 돈 들여 도착한 곳이 편의점이라는 사실이 어처구니없었다.


편의점 도시락은 가격부터 내용까지 여전히 친절했다. 최소한 내가 차려 먹는 집밥보다 맛있었다. 무려 ‘조리된 육류’가 있었다. 집에는 유통기한 2019년 7월 17일인 식용류가 남아 있었다. 집밥에는 제육볶음, 불고기, 돈가스는커녕 계란 프라이조차 없었다. 게다가 편의점 도시락 제작 환경이 더 위생적일 듯했다. 내 설거지는 월중 행사였다. 보통은 물에 담가 놓은 밥그릇과 수저를 흐르는 물에 휘휘 저어 재사용했다.


존재가 고마운 것과 별개로 편의점 도시락 구성은 내 식문화와 맞지 않았다. 압도적으로 짰다. 밥은 필요보다 적었고, 반찬은 필요보다 많았다. 편의점 도시락 반찬을 두 끼 나눠 먹는 것은 궁색한 게 아니라 건강을 위한 합리이자 당위였다. 공부방에 냉장고가 없어 나눠 먹지 못할 뿐이었다. 밥 서너 숟가락이 아쉬웠다. 컵라면이나 소시지를 추가 구매시키려는 편의점 전략에 맨몸으로 맞섰다. 구성된 반찬을 다 먹고 나면 망가질 내 콜레스테롤 수치를 생각해서 물을 많이 마셨다.


아마도 10대, 20대를 겨냥한 상품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더 많이 먹을 수 있기에 허기를 관용할 수 없어 뭐든 하나 더 사 먹었을 것이고, 아직은 콜레스테롤 따위 무시해도 좋을 때였다. 무엇보다도 ‘고기’가 중요할 때였다. 육류 메인에 사이드조차 계란말이 같은 단백질이 절반 이상이었다. 볶은 김치를 제외하면 채소류는 두세 젓가락이면 끝날 콩나물이나 브로콜리뿐이었다. 40대 아저씨는 채소가 필요했지만 별 수 없었다.


일요일 아침 8시, 편의점, 혼자, 도시락, 40대 사내, 여러 모로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남의 집에서 남의 밥을 몰래 먹는 것 같았다. 콜레스테롤과 내 인생 중에서 더 망가진 건 무엇일까? 알 바인가, 하면서 알바가 나를 신경 쓰지 않는 것이 고마웠다. 나도, 알바도 각자의 스마트폰을 봤다. 편의점이 발명한 최고의 상품, 무관심의 호의와 함께 아침 잘 먹었다. 나쁘지는 않았다. 출근이다. 키는 180cm에서 조금 모자랐고, 가방에 든 건 점심으로 먹을 당근 두 개였다. 무언가 토막 난 것 같다면, 그건 기분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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