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를 해야 비로소 발견되는 것이 있다. 엄마, 집에서 당연해야 하는 것들이 당연해지지 않은 모든 지점이다. 깔끔한 화장실, 잘 개켜진 양말, 먼지 없는 방바닥 등 사소해서 미루던 것들이야말로 엄마의 보이지 않는 손이었다. 일상은 엄마가 없어도 별 탈 없이 유지되지만, 잔잔하고 야무진 생기를 잃는다.
밥상은 가장 빠르게 시든다. 삼시세끼의 반복이 이토록 귀찮을지는 몰랐다. 똑같은 걸 먹으려니 물리지만 도리가 없다. 밑반찬에 햄이나 계란을 교대로 구워 끼니를 구분하는 정도로 밥상은 단순화 된다. 먹는 일은 허기를 때우는 일에 가까워진다. 숙제처럼 어떻게든 해치워야 하기 때문일까, 계란프라이조차도 엄마가 해준 것보다 맛이 덜하다.
모든 자취생들은 끼니마다 엄마의 시간을 기억할 수밖에 없다. 집에 거주하는 동안의 시간은 끼니와 끼니를 매개로 이어지며 각자의 방들을 하나의 냄새로 묶는다. 엄마의 손끝에서 출발한 시간은 하나의 음식에 배었다가 각자의 뱃속으로 분배되어 살로 차오른다. 끼니마다 닥쳐오는 살의 성분이 다르다. 엄마는 집의 향수(鄕愁)이자 향수(香水)이다.
엄마의 향수는 자취방 냉장고에 그득하다. 엄마는 수시로 밑반찬과 먹거리를 택배로 보내주신다. 엄마가 보내준 스티로폼 박스 안에는 김치는 물론이고, 장조림, 진미, 멸치볶음, 어묵볶음, 두세 끼 먹을 나물, 여기서도 살 수 있는 제철과일이나 견과류에 신선도 유지를 명목으로 넣은 얼린 미역국이나 시래기국으로 빽빽하다. 엄마의 택배 하나면 앉은뱅이 냉장고가 가득 찬다. 엄마는 내 냉장고의 실소유주다.
엄마가 음식을 잘하는 것은 자식의 복이다. 우리 엄마는 최고가 아닐지는 몰라도 여기저기 이사 다닐 때마다 동네에서는 손꼽히는 손맛이셨다. 더군다나 미역국, 시래기국, 북엇국을 파는 식당도 없어서 엄마가 보내줄 때만 먹을 수 있었다. 엄마의 택배 직후 내 밥상은 끼니가 아니라 식사가 된다. 그러나 냉장고는 엄마와 나의 전장이다.
가난한 시절을 살았던 엄마는 냉장고를 채워야 편안해 하셨다. 본가 냉장고는 비만했다. 추석에 넣어둔 포도를 설에 꺼내 먹을 정도로 엄마는 무엇이든 냉장고에 넣어두셨다. 냉동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까만 봉지로 빼곡했다. 간혹, 마늘, 고추, 대파 따위를 싸게 산 다음 다지거나 손질해서 냉동실에 보관 중이라고 자랑하기도 하셨다. 냉장고에 뭔가가 있어야 식(食)을 ‘가능’ 상태로 여기시는 듯했다.
나는 채워진 냉장고가 불편했다. 지금은 개인 냉장고가 편의점과 마트에 지점을 내는 시대다. 편의점과 마트는 내 출퇴근길에 있었고, 내가 필요할 때 그때그때 식재료를 구매할 수 있으니 굳이 내 방 냉장고가 모든 식재료를 감당할 필요 없었다. 채소를 사서 3일 이상 보관하느니, 필요할 때 먹을 만큼만 마트에서 사오는 것이 신선한 채소를 섭취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게다가 냉장고가 차 있으면 내 선택권이 박탈당해서 싫었다. 먹는 일에 무심한 편이지만, 남은 치킨을 보관하거나, 다이어트 때면 양배추를 통째로 보관해야 할 일이 생겼다. 그러나 엄마 택배 한 번이면 음료를 꽂는 곳까지 가득 채운 반찬 통 때문에 내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그래서 나는 냉장고가 어느 정도 비어 있어야 식(食)을 ‘가능’ 상태로 여겼다. 엄마가 택배를 보내준 일주일 정도는 식사가 반짝이지만, 자의식이 강한 탓에 ‘나의 불가능’ 상태를 품고 있어야 하는 일은 답답했다. 더군다나 엄마 반찬이 있으면 다이어트는 지속 불가능했다.
엄마에게 반찬을 부치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씀드렸다. 변해버린 내 식문화를 근거로 설득도 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질긴 소귀에 경 읽기도 없었다. 엄마는 사명처럼 내 냉장고를 채우셨다. 집에서 먹는 끼니가 그렇게 많지도 않아 쉬거나 곰팡이가 생기는 일이 빈번했다. 엄마가 무거운 택배 박스를 들고 마을버스를 타고 시장에 가 거기서 또 우체국까지 들고 옮겼을 여정을 생각하면 속상했다. 그러나 엄마는 그조차도 새 음식을 보낼 기회로 여기셨다. 미련한 분이다.
냉장고 전투에서 이기기를 포기했다. 내 냉장고의 주인은 확실히 엄마다. 결혼을 하더라도 맞벌이를 하면 입맛은 엄마에게서 놓여나지 못할 것이다. 아니, 늙은 자취생에게는 결혼 가능성도 보이지 않으니 내 입맛의 주인은 아주 오래 엄마일 것이다. 늙은 어미가 자식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밥은 먹었니?’의 진심뿐이라면, 열심히 먹는 것은 호사스런 효다.
내가 냉장고를 되찾는 날은 내 생에 가장 슬픈 날일 것이다. 장례를 치르고 온 내 집에서 냉장고가 ‘웅-’하고 돌아갈 때, 그렇게 빈 집에 냉장고만 가득할 때, 나는 또 한바탕 통곡할 것이다. 그 와중에도 허기져 냉장고를 열면 엄마를 잃고 기진한 내게 냉장고는 남은 엄마를 내어줄 것이다. 나는 서둘러 밥을 먹고 남은 반찬을 한 끼 단위로 나누어 포장해 냉동실에 넣을 것이다. 그리고 1년에 한 번, 그때는 아무도 묻지 않을 ‘밥은 먹었니?’를 향해 잘 먹고 있다고 꾸역꾸역 대답할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제사를 지내는 동안 냉장고는 한결같이 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