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살짜리 자취생’은 사전적으로 타당하지 않다. 자취생의 사전적 의미는 ‘손수 밥을 지어 먹으며 통학하는 학생’이고, 마흔 살짜리 학생은 없다. 있다면 본업과 겸업 중이거나 부모 잘 만나 공부만 해도 되거나 나처럼 한심한 인간이다. 마흔 살은 가정을 꾸린 책임감으로 듬직해야 할 나이다.
혼자 사는 마흔 살은 자취한다기보다는 독신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내 생활은 자취생의 생활사로 적확하게 설명된다. 나는 이 나이 먹도록 자취생이 함의하는 ‘가난한~’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부모님 등골 빨아 먹다가 이제는 내가 용돈을 드리고 살지만 내 ‘먹고사니즘’은 큰 변화가 없다. 지름신에 조금 더 관대해졌고, 조금 더 비싼 옷을 입고, 월 10만 원쯤 식비가 더 들었지만, 어디까지나 고시원 시절과 비교해서일 뿐, 나는 가정을 꾸린 친구들에 비해 궁상맞다. 14년째 한 원룸에 거기 그 방에 기거하며 방처럼 낡아간다.
나는 통계적으로 ‘가난한’ 자취생은 아니다. 다만 학창시절 고시원에 살 때 학습된 아비투스를 벗어나지 못할 뿐이다. 그 시절은 PTSD까지는 아니지만, 그에 준하는 불안감을 남겼다. 여기에 무소유, 청교도적 삶으로의 지향성이 복합되어 미니멀 라이프 비슷한 삶의 형식을 획득했다. 실용성만이 합리적 소비였다. 과장 좀 보태면, 실용성의 세계에서 식문화는 얼큰, 시원, 단짠, 달맵에서 벗어나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로 구성된 기계 작업으로 전락한다. 허기와 포만이 이진수처럼 반복된다. 내 사전에 진수성찬은 없다.
이런 식문화에 스타벅스가 개입할 수 없다. 4,500원짜리 아메리카노를 마시느니 2,500원 더 보태서 짬뽕이나 국밥을 사 먹는 것이 합리적이다. 중국집이나 국밥집은 입가심할 커피나 요구르트까지 줬다. 테이크아웃 한 스타벅스 커피를 들고 있는 학생을 보면, 부모 잘 만나 내 밥벌이 내가 하는 나보다 더 많은 용돈을 누리고 있어서 부러웠고, 저러다 만약 취업이 안 되면 1500원짜리 저가 커피로 입맛을 바꾸거나 커피를 끊어야 할 테니 측은했고, 그들이 평범하게 부모 등골 빨아 먹는 자취생이라면 한심했다. 내 먹고사니즘의 뾰족한 정서를 구닥다리라고 욕해도 할 말은 없다.
시대는 먹방과 맛집을 호명했다. 먹방(Mukbang)은 글로벌 표준어가 되었고, 코로나 시대에도 맛집은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TV에 셰프들이 등장하며 요리 관련 프로그램들이 다양한 형태로 범람했다. 반짝할 줄 알았던 셰프들의 인기는 유튜브로 이어졌고 유튜에서 유명해진 먹방러들이 TV로 진출했다. 누가 무엇을 얼마나 먹었다는 사실과 누가 어디서 무엇을 먹었다는 사실과 누가 무엇을 어떻게 만들었다는 사실은 식문화로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주류 문화로 부상했다. 먹는 일만이 쾌락의 유일한 보물창고인 것처럼 다들 진심을 다했다.
‘식(食)’사의 문화에서 식‘사(事)’를 하는 사람은 소외되었다. 시대의 ‘식’은 화려하고 비대해졌지만 나는 한결같이 ‘사’ 근처에 머물렀다. 때로는 참치캔에 김치 하나로 한 끼 뚝딱이었다. 3분 카레를 비벼 먹든, 계란에 간장을 비벼 먹든, 한 끼는 5분이면 끝났다. 자취생들은 엄마들이 보면 안타까워할 식단에 익숙해져 가는데, 시대는 자취생이 사라진 척했다. 하긴 궁상맞은 풍경은 시청하는 이의 밥맛을 떨어뜨릴 뿐이다. SNS 속에서 보정된 식문화가 자취생의 평균 식문화로 왜곡되었다. 미디어 속에 나와 내 동류는 없었다.
고전적 의미의 자취생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각자의 방에서 바퀴벌레처럼 조용히 끼니를 갉아먹을 뿐이다. 마흔이 되고 보니 그렇게 인생도 갉아 먹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먹든 똥이 될 테니 아무 거나 먹어도 된다는 논리는 죽음 앞에서 소용없다. 내가 먹은 것들의 자취가 가련하다. 자취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학생 딱지를 떼도, 취업이 힘들어지고 연봉이 짠 만큼 1인 가구의 다수가 자취생에 수렴해 갈 것이다. 때로는 SNS용 식사를 하겠지만 일상은 ‘자취생’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결식아동이나 독거노인처럼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는 것이 아니라서 주목 받지도 못한다. 그래서 기록되어야 한다. 먹방으로 기록될 시대에, 먹는 것이 차하위로 제한된 일상을 살아가는 꾸역꾸역들이 있다고,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