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ing into the SELF
“그런데 요가를 가르칠 마음은 없으세요?”
“네?”
“수련도 꾸준히 하시고 지도자 과정을 마친지도 꽤 되시잖아요.”
“언젠가는 요가를 가르치는 사람으로 살고 싶기는 한데...”
“그러니까 마음은 있으시다는 거네요. 그런데 뭐가 문제예요?”
“선생님들 안내를 따라 수련하는 건 너무 좋은데 막상 제가 안내를 해야한다고 생각하면 머리가 하얘지고 온 몸이 얼어붙는 느낌이 들더라구요. 제가 방향치에 길눈이 많이 어두운 편이라 다른 사람에게 길을 설명하는 것이 힘들거든요. 그래서인지 몸이 움직이는 길을 안내하는 것도 유난히 어렵게 느끼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그건 아닐 거예요. 움직임을 안내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훈련이 필요한 영역이예요. 일반수련자와는 달리 지도자에게 주어지는 특별수련같은 거죠. 그런데 이게 현장이 없이는 훈련하기가 쉽지가 않아요. 완벽해진 다음에 현장에 나가겠다는 건 헛된 욕심인거죠. 그러니까 새로운 아사나를 연습한다고 생각하고 작은 수업이라도 일단 시작해보면 어때요?”
“정말로 제가 할 수 있을까요?”
“당연하죠. 지금이 제일 두려울 때예요. 하지만 막상 몇 번만 해보면 언제 두려워했냐는 듯 잘 하실 수 있을 거예요.”
그녀는 지도자 과정을 포함해 3년을 함께한 요가 스승이었다. 그녀와 함께 수련하며 요가강사가 단지 동작을 지도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몸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매트 위에서 아사나를 안내하는 도중 그녀가 툭 던진 한마디에 휘청거리던 몸과 마음의 중심을 찾은 날이 셀 수 없이 많았기 때문이다.
동네마다 요가원들이 몇 개씩은 되는 요즘 먼 길 마다않고 곳곳에서 찾아오는 회원들이 많은 것을 보면 이건 비단 나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닌 것도 분명했다. 그렇게 그녀와 함께 하는 시간들이 쌓여가며 자연스럽게 ‘그녀처럼 살 수 있으면 참 좋겠다’ 하는 소망을 품게 되었지만 차마 입 밖에 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바깥일에 욕심내지 않고 아이들에게 집중하기로 스스로 약속한 10년을 마치고 새로운 일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한번도 ‘요가강사’를 언급하지 않은 것도 어쩌면 내가 되고 싶은 것이 그냥 요가강사가 아니라 그녀처럼 훌륭한 요가선생님이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괜히 말을 꺼냈다가 그녀가 너는 나랑 너무나 다르다고 하면 그 좌절감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고나 할까. 그런 그녀가 내게 요가를 가르쳐보면 어떠냐고 물으셨던 거다. 그러니까 내게 가능성이 아주 없지는 않는다는 얘기?
그날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오랜 망설임 끝에 드디어 ‘머리서기’를 완성하던 그 순간이 떠올랐다. 하고 싶은 열망에 이끌려 계속 시도하면서도 막상 결정적 순간이 되면 괜한 욕심내서 허리를 무리하게 제끼다가 넘어져버리면 어쩌나, 자세를 만드는 과정도 이렇게 힘든데 머리로 완전히 서서 어떻게 견디나 하는 두려움에 압도되어 마지막 한 스푼의 용기를 내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을 때였다.
“바로 이 단계가 제일 힘들 때에요. 자세가 완성되면 오히려 훨씬 편안하고 평화로워져요. 그러니까 지금은 이런저런 생각을 딱 멈추고 ‘에라 모르겠다’ 과감하게 허리를 펴내는 시도를 하는 게 중요해요. 저 옆에 있는 거 보이죠? 넘어지면 꽉 잡아줄테니까 저만 믿고 용기를 내보세요!”
진짜였다. 마지막 한 스푼의 용기와 함께 갑자기 온 몸이 세로로 누운 듯 편안해졌다. 그 순간 바로 이 순간을 위해 매트 위에서 씨름하던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아! 이거구나!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그런데 이 놀라운 ‘용기 한 스푼’의 기적이 매트 위에서만 일어나라는 법이 있을까? 어쩌면 매트 밖에서도 같은 원리가 적용되는 거 아닐까? 그래! 한번 해보는 거야. 스승이 곁에 계실 때 여러 생각 말고 과감하게 허리를 쭉 펴내는 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