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봉골길은 파주리와 부곡리 사이를 가로지른다. 70년대에 멈춰버린 ‘파주 읍내’를 북쪽에 두고, 이끼 낀 ‘갈곡천’을 남쪽에 둔 들판 어디께쯤에, 오봉골이 있다. 어딘가 있는 먼 사격장에서 곧잘 대포소리와 총소리가 텅텅 울리곤 한다. 손때가 많이 탄 시골이지만, 멀리서 흐린 눈으로 보면 그럭저럭 멋있는 곳이다. 농협 달력 풍경화만큼 고상하고, 오래된 금영 노래방 영상처럼 그윽하다. 딱 그만큼 아름다운 곳이다.
#서울보다 개성이 가까워
새삼 사회적 거리두기가 필요하진 않다. 코로나가 아니어도 밖에 나갈 일은 별로 없다. 일하기가 진저리 나게 싫어, 가게문을 닫았다. 이미 내 팔자의 돈벌이 노동은 다 한 기분이다.
만나야 할 사람들도 다 만난 기분인데, 아직도 수명이 남아있는 느낌? 내 DNA 원산지는 어디 먼 몽골 한가운데 초원 같다. 태어나서 만나는 사람이 백 명도 안되는 원시 유목민. 이미 내 유전자에 있는 인간정보는 모두 사용한 것같다.
#몽골주름 #몽골반점#우랄 알타이
아침저녁으로 집 밖은 나간다. 개 산책을 시킨다. 사는 곳은 오봉골, 시골이다. 넓은 들판에 우리집 뿐이다. 나는 집에 박혀 있는 게 아니고, 오봉골에 박혀 있다. 산책을 나가면 개를 만나고 새를 만나고 고양이를 만난다. 집에선 엄마, 아빠, 남동생 남동생 사람을 보고, 일요일 하루만 외부사람들을 만난다. 교회나 절에 가는 것이 아닌 사람들을 보러 편의점에 간다. 알바다. 돈도 벌고 사람 구경도 하고.
종교 활동이 아니어서 코로나로 인한 규제도 없다. 어차피 말이 오고 가는 곳도 아니다. 그냥 인사 정도? 어서 오세요. 안녕히 가세요. 재외동포의 잊어버린 모국어처럼, 사람들을 향해 원 없이 불러 본다. 인사말은 언제나 어색하다. 어색함을 이겨 보려고 열심히 외친다. 그러다 보니, 어떤 날은 ‘어서 오세요’와 ‘안녕히 가세요’가 합쳐진다.
#어서 가세요
시골엔 마흔을 넘은 내 또래 여자들은, 별로 없다. 심지어 결혼 안 한 내 또래 여자는 만난적이 없다. 나처럼 어디 숨어들 사시는지 아니면 이 동네엔 영 없는 건지, 통 보이지 않는다. 매일 다니는 개천 둑방은 주 연령대가 60~90세다. 개천을 다니는 젊은 사람은 거의 보기 힘들다. 그러다 보니 나를 유심히 살펴보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시선이 가끔 면접관시선처럼 보일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