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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네요 Oct 29. 2020

<오봉골 인스타> #2. 오봉골 II

1인용 시점 태그 소설






 오봉골을 가로지르는 갈곡천은 염색공장과 만두공장의 폐수가 흐른다. 그리고 그 폐수와 함께 임진강에서 올라온 참게와 메기가 살아간다. 갈곡천에 나오는 물고기들을 잡는 사람들은 대부분  외지인이다.

 오봉골길 주변엔 넓은 논밭이 펼쳐져 있다. 그리고 띄엄띄엄 소를 키우는 축사들도 있다. 둑방 수풀에는 몰래 버린 생활 쓰레기가 드문드문 있고, 지난 구제역에 생매장한 소들의 무덤도 언저리에 있다. 자갈과 모래가 많았다던 냇가 주변엔, 어느 해부터 갈대가 무성히 자라났다. 나라에서 씨를 뿌렸다나?수풀이 무서워 여름엔 한 발짝도 들이기 힘들다.

#유혈목이(뱀) 천국 #너희라도 행복해서 다행이야



 가난한 사람들의 휴양지였던 냇가 모래사장은 사라지고, 동네에 커다란 공장 너덧만이 냇가를 공유할 뿐이다. 냇가에 폐수를 버리는 하수구와 도랑들이 있다. 멀리서도 하수구와 도랑을 타고 폐수가 흘러온다. 그 중 공장과 연결되어 있는 도랑에서 꿀렁꿀렁한 폐수가 가득 흘러 나올 때가 있다. 이 도랑이 바로 사는 곳 근처에 있다. 

 공장폐수가 너무 많아 시청에 신고 전화를 걸었다. 담당 공무원은 폐수가 꼭 공장에서만 나온다고 볼 수 없다며 잘라 말했다. 주변 주민들이 보내는 폐수도 섞여있어 공장에만 문제를 제기할 수 없다나? 아니 도대체 얼마나 많은 주민들이 동시에 똥을 싸고 빨래를 하고 목욕을 해야 이렇게 많은 폐수가 한꺼번에 흐를까. 

 나는 청정한 주변을 원한 것이 아니다. 환경에 그만큼 관심이 많지도 않다. 그리고 그렇게 깨끗한 곳에서만 살지도 않았다. 결국 언성이 높아지자 시청에서 사람을 보내주었다. 그러나 그들이 다녀가도 달리 변하는 것은 없었다. 물은 여전히 더러웠다. 또 폐수가 넘쳤다. 또다시 사진을 찍어 그들에게 보여주었지만, 그냥 끄덕일 뿐 대꾸가 없었다.

 증거가 남지 않는 신고는 소용이 없는 것일까. 방문한 공무원에게 다음에도 또 이렇게 폐수가 쏟아지면 시청 홈페이지에 신고를 하겠다고 하였다. 그러자 변화가 생겼다. 여전히 개천은 더러웠지만, 낮에 한꺼번에 폐수가 흘러나오는 장면은, 더 이상 목격할 수 없었다.

#낮저밤이 #낮엔 저쪽에 밤엔 이쪽에(염색공장이 잠시 문을 닫았는지 근래 1~2년은 예전처럼 더럽진 않다)

  


 집은 갈곡천 바로 옆에 있다. 이곳에서 아침저녁으로 산책을 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 산책이 아닌, 개 산책. 집에서 개천을 따라 서쪽으로 조금 걸어가면, ‘한국 토지공사 파주지사 오봉골 양수장’이라는 작은 막사가 나온다. 그 옆에, 들판에서 가장 큰 버즘나무가 한 그루 있고, 벤치 세 개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어르신 한 명이, 높은 벤치에 앉아 다리를 구르고 있다. 가끔 보아 눈에 익은 아주머니이지만 인사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이사 온 지 꽤 되었지만, 아직도 사람들이 낯설다. 나는 눈을 마주치지 않고 개 두 마리를 앞세워 지빨리 옆을 지나친다.

#백일 낯가림 #천일 낯가림 #만일 낯가림



‘매일’ 두 번씩 개들을 산책시키다 보니 ‘매일’ 만나는 사람도 생기기 마련. 둑방 옆 개천 국유지에 작은 텃밭을 키우는 아저씨가 그런 경우다. 이럴 땐 차마 인사를 안 하고 지나치기가 어렵다. 모른 채 하는 것은 생각보다 에너지가 필요하다. 결국 참다못해 ‘안녕하세요’라고 간신히 인사를 건넸다. 상대도 이런 인사를 썩 내켜 하진 않았다. 시골 사람들이라고 다들 넉살이 좋을 것이란 생각은 편견이다. 봄이 지나 여름이 접어들 무렵까지 ‘매일’ 만나다 보니, ‘매일’ 인사만 하는 어색한 사이가 되고 말았다. 가끔은 다니기 어려운, 다른 길로 돌아갈 때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저씨가 용기를 조금 낸 것인지, 아니면 이런 어색한 ‘안녕하세요’가 숨 막혔던 것인지, 매번 눈도 안 마주치고 인사를 하던 사람이, 허리에 손을 두르고 삽을 땅에 꽂으며 나를 향해 말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매일 같이 개 산책을 하시는 건가?

 네…

 어이구 대단하구먼.

 아… 아니에요…

 그런데 개는 있는데, 애는 없는 가베?

 ......

#애도 없고 남편도 없고 돈도 없고 변명도 없고





출처 요츠바랑



출처 요츠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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