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경과 완경 사이 어딘가-완경 일지를 시작하며

완경 일지 1.

by 이화정

폐경과 완경 사이 어딘가

<완경 선언>을 읽기 시작했다. 제목만 봐도 지금 나에게 딱 필요한 책이다.

지금 나는 폐경과 완경 사이 어딘가에서 헤매고 있다. 내 몸이 굳어가고 자꾸 아프니 이전에 주워들은 대로 뭔가 끝나고 닫히고 막히는 '폐경'의 씁쓸함을 맛보고 있다. 그러면서도 '아직은 아니야, 끝나긴 뭘 끝나? 그동안 내가 월경 치르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도대체 왜-폐-라는 말을 갖다 붙이는 거야?'라고 구시렁대면서도 내 몸의 변화를 적절하게 표현하지 못했다. 중요한 생애 전환기를 제대로 기념할 언어가 없어 답답하고 아쉬운 차에 제목부터 시원하고 힘이 넘치는 <완경 선언>을 만났다.


완경에 관해서는 끔찍한 이야기만 돌아다닌다. 그러나 사실을 말하자면 완경 경험은 엄청난 규모의 디아스포라다. 경미하거나 중간 정도의 증상만을 겪고 넘어가는 여성들도 많고, 극심한 고통을 받는 여성들도 있다. 증상이 잠시 나타나고 마는 경우가 많지만 간혹 길게 가는 수도 있다. 완경과 함께 몸에 일어나는 생물학적 변화는 심혈관 질환, 골다공증 등 몇몇 의학적 문제를 겪을 확률을 높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여성의 모습 전체를 담은 그림을 그리는 물감이 완경 현상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연령, 다른 건강 상태, 식생활, 운동, 심지어 아동기에 겪었던 역경 등 모두가 그 초상화에 색을 더한다. 따라서 행동 전략을 마련하겠다 마음먹은 여성이라면 한발 뒤로 물러서서 그림 전체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완경기의 몸을 돌보는 일은 몸 전체를 감안한 전인적 의료의 궁극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다. 17

<완경 선언> - 팩트와 페미니즘을 무기로 내 몸과 마음을 지키는 방법
제니퍼 건터 (지은이),김희정,안진희,정승연,염지선 (옮긴이),윤정원 (감수)생각의힘2022-06-30원제 : The Menopause Manifesto: Own Your Health with Facts and Feminism (2021년)


나에게 절실한 것은 정확한 언어다.


포궁(胞宮)『의학』 여성의 정관의 일부가 발달하여 된 것으로 태아가 착상하여 자라는 기관. =자궁.


' 완경'이라는 말이 쓰이며 갱년기와 폐경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는 있지만 뿌리 깊은 가부장제의 흔적이 남아 있는 언어를 발견할 때마다 깊은 한숨이 나온다. '자궁'이 '아들의 집'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글을 처음 읽었을 때처럼 언어가 사고에 미치는 영향을 절감한 적이 없다.


‘완경기’라는 용어는 과학이 호르몬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기 전에 이미 있었다. 이 용어는 결코 ‘일단 멈춤’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이 용어는 여성들이 자신의 팔을 가려야만 하고 볼 화장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한 남성이 발명했다. 완경기에 관한 이 남성의 책은 여성을 영원히 월경에 속박시키는 역할 말고는 이 주제에 대한 지식 체계에 그 어떠한 기여도 하지 않았다. 여성들을 영원히 월경과 연결시키는 하나의 용어를 남긴 것 이외에는 말이다. 그 후 ‘완경기’라는 단어는 제약 업계에 의해 무기로 사용되었고, 생애의 성가신 한 단계를 모든 여성에게 영향을 미치는 평생의 질병으로 둔갑시켰다. 게다가 그것은 보통 질병이 아니라 여성들을 남성들이 원하지 않는 존재로 만들어버리는 최악의 질병이었다. 이 장은 아름다운 어원 이야기가 아니었다. ‘완경기’라는 단어는 업데이트가 필요하다. 60
_ 2장 〈완경의 역사와 언어〉

<랩 걸> <배움의 시작>을 번역한 김희정 선생님이 여성 작가와 페미니즘 관련 도서 번역에 집중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은 이후 이 책이 나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이 책은 산부인과 의사가 정확한 '팩트'를 기반으로 완경기 여성들을 위해 정확한 정보를 주기 위해 쓴 책이다. 무엇보다 페미니즘을 기반으로 여성의 몸을 정확하게 아는 것부터 시작해 가부장제의 지배를 받고 있는 건강 관리 문화의 이면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다양한 자료를 담고 있다. 목차를 보며 흥미로운 주제부터 읽어나가는 중인데 내가 가장 먼저 들춰 본 내용은 '완경기 다이어트'라는 걸 굳이 숨기지 않겠다.


완경 일지를 시작하며


완경 일지의 시작은 운동 기록이었다.

52세가 되는 2022년, 1월부터 병원 순례를 시작했다. 허리가 아프기 시작하더니 목 디스크 증상이 나타났고, 통잠을 자지 못하고 꼭 한 번씩 잠이 깨어 수면 부족에 시달렸다. 평소보다 덜 먹으려 기를 쓰는데도 배가 불룩해지고 체중이 야금야금 늘며 매일 숫자를 갱신하고 있다. 급기야 손가락에 퇴행성 관절염이 생겨 하루 종일 통증에 시달리느라 마음까지 쑤신다.

6월 19일 밤, 운동에 관해서만큼은 늘 패배자가 된 심정이 되는 내가 굳은 결심을 하고 걷기 시작했다. 이제 겨우 10일이 되었지만 '날마다 어떻게든 운동'하겠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내 몸을 챙기고 있다.

<완경 일지>의 추천사를 쓴 작가들은 아직 젊디 젊은 작가들이다. 완경기를 실시간으로 통과하고 있는 나는 궁금했다.

"갱년기 동지들이여, 당신은 지금 어떠신가요?"

그래서 써보련다. 내 몸 상태가 어떤지, 무얼 챙겨 먹고 있는지, 어떤 운동이 할 만한지, 뭐가 속상한지, 언제 내가 자랑스러운지를. 날마다 어떻게 나를 챙기는지 기록해 보겠다.

적절한 시점에, 나만의 방식으로 완경 선언을 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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